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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역학 후기 - 2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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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쥐 작성일15-03-23 22:29 조회2,7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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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발제에서 내가 맡은 부분은 28수를 알아보기 이전,

동양의 하늘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인트로부분으로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중심으로 정리하였었다.

북극성에서 중의 윤리를 설명하며 삶의 균형을 이야기하면서,

나의 발제는 궤도를 이탈해 버렸다는 안타까운 반전을 보였다는 것. ㅠㅠ

어려운줄은 알았으나 역시...끝까지 늦장부리는 습관이 빛을 발하여 나의 중심은 드러나지 않았다.

다시 후기 정리하면서 중심을 찾아보고,

질문으로 나온 남두육성을 북두칠성과 덧붙여 정리하였다.

북극성,

태양은 황도라고, 달은 백도라고 하며 그들의 길을 지나간다. 태양과 달처럼 별들도 각기 자리가 있는 것이다. 이를 궤도라고 하며, 옛사람들은 이 궤도를 유심히 살펴 제대로 가고 있는지 보았다. 혹 이탈하면 땅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고, 조심하였다. 하늘에 일어나는 일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고 여긴 생각. 이는 반대로 땅에서의 일에 하늘도 움직인다고 여기는, 이를 천인감응이라 하였다. 그래서 하늘을 열심히 살피고, 우리네 삶 또한 살폈다. 하여 덕을 베풀고자 하고, 똑바로 중심을 잡아 살고자 하였다. 

여기서 중심을 가르쳐준 별이 바로 북극성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별 중에서 제자리를 지키는 별이 바로 북극성이란 것을 발견한 것이다. 북극성이 중심이긴 하지만 결코 고정되어 일정한 하늘을 보여준 것이 아니다. 북극성을 중심축으로 변화하는 하늘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중의 윤리가 나왔다. 중심은 있지만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는. 온갖변화가 가능한 것을 말해준다.

소우주인 우리몸도 북극성과 같은 중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고자 하지만 참으로 어렵다. 지구가 23.5도 기울어져 있듯이 태과불급으로 태어난 인간으로서 아주 자아근 습관하나 고치기조차 너무 어려운 것이다. 너무도 쉽게 담음을 만들어내는 신체. 평범한 일상을 지겨워하면서도 변화는 지극히 싫어하는 우리네 모습. 아, 북극성을 중심으로 별들이 자기 궤도를 돌듯이, 먼저 우리도 나의 궤도를 살필 일이다. 내 삶의 순환을 위하여. 중심 잡힌 삶을 위하여. 

탄생의 별 남두육성과 죽음의 별 북두칠성

북방현부의 첫 번째 별은 두수다. 두斗는 곡식을 계량하는 도구인 ‘말’을 뜻하는 한자다. 여기서 알 수 있듯 두수란, 곡식의 양을 재는 바가지를 닮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넓적한 바가지에 긴 손잡이가 달린 모습, 우리에게 익숙한 북두칠성과 닮은꼴이다. 그런데 별의 개수는 여섯 개다. 이를 북두칠성과 구분하기 위해 남두육성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른다.

두성의 바가지로는 은하수의 강물을 퍼 올린다. 두성이 떠오르면 한여름, 하지의 시작을 알려준다. “하지가 지나면 구름장마다 비가 내린다”는 속담처럼, 두성이 찾아드는 시점에 장마가 시작된다. 이는 벼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 논을 채우는 귀한 생명수가 되었다. 동양의 점성학에서는 두수를 천기(天機)라고 부른다. ‘하늘의 기틀’이라는 이름. 이는 두수의 여섯 별 사이로 해와 달과 오성이 지나기 때문에 붙었다. 그래서 이 별로 정치의 안정과 병란까지, 국운의 총체적인 부분을 살펴보았다.

북쪽은 수에 해당하며 만물이 죽어가는 겨울에 상응한다. 그래서 북쪽 하늘 붙박이별 북두칠성은 하늘을 순행하면서 세상의 소멸과 죽음을 관장한다. 혹 칠성판을 아는지, 이는 북두칠성이 그려진 널빤지로 시신을 누이는데 쓰인다. 무덤 벽화와 고인돌에도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는 망자의 영혼이 무사히 저승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그린 것이다.

이 북두칠성의 자루 끝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가면 또 다른 됫박, 남두육성을 볼 수 있다. 남쪽은 만물이 성장하는 여름, 화기에 해당한다. 여름 중에서도 양기가 극에 달한 하지 무렵에 떠오르는 이 별은 생명의 기운을 주재한다. 우리 삶에서도 두성은 탄생과 건강을 주제하는 별로 많이 알려졌다. 흔히 알려진 삼신할미가 있는 별이다.

밤하늘엔 북극성을 중심축으로 북쪽의 북두칠성국자는 죽음을 퍼 올리고, 남쪽의 남유육성국자는 삶을 퍼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 별들을 보면서 옛사람들은 삶과 죽음이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배운 것 같다. 생이 있음으로 사가 있으며, 사는 다시금 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계속되는 순환의 흐름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이 흐름을 무시하고 삶과 죽음을 분별하여 고정시키는 순간, 즉 생을 추구하고 사를 멀리하는 순간, 진짜 죽음이 생겨난다.


음양의 조화, 사상의 변화, 오행의 순환, 천간지지로 보여주는 하늘과 땅의 조화, 별자리까지

끊임없이 조화와 변화, 순환을 이야기 한다. 흐름이야말로 생이며, 멈춤이 곧 죽음이라는.

오늘 발제를 마무리하면서는 부딪힘을 두려워 말자는 생각이 남는다.

부딪힘이 두려워 가만히 있는 것이 담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가만히 잊기 보다는 부딪혀 깨지고, 다시 시작하고.

균형잡기가 그리 쉬운일이 아니야. 그러니까 포기하면??? 아니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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