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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서브텍스트] 보부아르의『제 2의 성』세미나 1주차 후기 - 한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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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猫冊 작성일22-09-23 07:44 조회562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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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ㅍ"자도 모르는데, 용감하게 이 세미나를 신청했습니다.  "페미니즘" 그것 역시 세상에 넘쳐나는 수많은 차별 중 하나에 반대하는 운동 정도라고 생각해 왔던 터라 솔직히 말해 주제에 관한 흥미는 크게 없었습니다. 세상에 타파되어야 할 얼마나 많은 불평등과 소외가 존재하는데, 남녀차별이 그 중에 더 특별하게 다루어질 이유가 있나?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읽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안나 카레니나」를 흥미롭게 읽었던 경험과, 백수가 된 기념으로 평일 낮의 세미나나 강좌를 들어보겠다는 결심이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사실은 세미나를 진행하시는 튜터 희진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자꾸만 만나고 싶은 불순?한 동기도 2%쯤 있었습니다.)


세미나 참여 준비를 위해 책을 읽다가 서론에서부터 심상찮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여자의 종속은 역사적인 한 사건이나 변천의 결과가 아니며 돌연 '발생한' 일이 아니다."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나 흑인들의 혁명은 역사적인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지만, 인류의 절반이나 되는 여성의 종속은 사건이나 역사의 한 단계가 아니라 뿌리깊게 진행되어 왔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아! 정말! 전에는 왜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을까요? 제가 심각하게 우려하던 환경 문제나 동물 학대 그리고 영유아 학대(라고 쓰고 '범죄'라고 읽습니다) 못지 않게 생명 소외의 연장선상에서 근본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문제였다는 걸 왜 생각지 못했는지, 나의 정체성이 거기에 있음에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식상하게 느껴 관심이 시들해진 주제가 되어버렸다는 스스로의 현실을 직면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 들었던 "계집애가 어딜"이라는 말씀에 매번 발끈했었는데, 그저 욱하는 마음에 반항심만 올라왔지 한 번도 진지하게 들여다 볼 생각을 했던 적이 없었고, 점점 무디어져 이제는 그런  말 쯤이야 듣거나 말거나가 되어버린 나를 발견했습니다.


세미나에 참여하신 도반분들은 다양한 사례와 경험들을 공유해 주셨습니다. 출산을 하지 않는 남성의 잉여 공포가 남성의 긴장감을 유발시켜 남성 중심적인 사회를 구축하는 강렬한 동기가 된 것은 아닌가. 그 잉여 공포가 힘의 논리로 이어져 현재에 이른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에서 부터 시작해,  여성의 출산과 양육으로 자기 포기에 이르거나 출산 육아의 과정에 겪는 힘의 역전이 낳는 히스테리에 관한 이야기. 남성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타자화 된 여성의 입장.  출산 등으로 인한 신체의 변화에 대한 거부와 남성적 가치 추구가 여성의 소외를 일으키는가 하는 문제. 과연 그 성 역할 분리의 공모에 스스로가 동의를 하는가? 그리고 우리 나라만의 특수한 분단 상황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군 복무 문제까지... 결국 우리가 느끼는 사회는 가부장적 분위기에 중독되어 있고, 여성 역시 그렇게 사회 각 조직에 스며든 남성성에 대해 은연중에 용납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여성성의 공존과 탈자본적 인식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풍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습니다.


세미나에 참여하신 분들의 동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저처럼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이 1도 없던 분은 안 계신 듯 했습니다. 그리고 보부아르의 문장들도 강렬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남동생과의 사이에서 느꼈던 아들 딸 차별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나는 왜 단순한 불만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던가?에 대한 생각을 되짚어보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부아르는 책에서 "타자로 남는 것이 편안하다. 자유의 부담을 회피하려는 유혹에 굴복하게 된다. 그러므로 여자를 타자로 만드는 남자는 여자 속에서 뿌리 깊은 공모를 만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집안의 잔 일과 심부름 등을 도맡으며 투덜투덜 '맏딸 노릇'이라는 생색에 젖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우연찮은 가스라이팅이었을까요? ^^)


발제보다는 발췌가 더 어울리는 훌륭한 문장들로 가득한 아주 두툼한 책,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제 2의 성』을 읽어나가는 세미나는 이렇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과학적, 정신적, 철학적, 역사적 분야에서 들여다 보는 여성 차별의 다양한 측면들에 대해 꼼꼼하게 되짚어놓은 엄청난 저술을 만나게 되어 설렙니다.  이번 기회에 '페미니스트'가 되지는 못 할지언정 여성으로 태어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보는 '수정란' 수준의 알아챔이라도 얻어보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 책을 덮고나면, 저의 오랜 '맏딸 노릇'의 향방은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합니다.
댓글목록

도란도란님의 댓글

도란도란 작성일

미수 선생님 생각과 더불어 다른 선생님들 생각도 꼭꼭 담아주셔서 한줄한줄 읽을 때마다 세미나 장면 하나하나 생생히 떠올랐어요. 첫날의 설렘, 긴장감이 그대로 보이는 같아서 글만 읽어도 두근거려요. ㅎㅎㅎ 같은 맏딸로서 공감되는 부분도 많아서..(흑흑) 여러번 읽었습니다. 여성의 권리는 ‘다른 사회 문제 못지 않게 생명 소외의 연장선상에서 근본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문제’라는 말씀에 깊게 공감합니다. 아마도 평생 숙제가 될 것 같아요.. 하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비아토르님의 댓글

비아토르 작성일

감이당 첫 오프라인 세미나인데 이렇게 두껍고 어려운 책으로 잘 할 수 있을지 망설이며 선택했었는데, 첫 수업 후 선택하길 잘했다 생각했어요. 여러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성찰하고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미수쌤의 후기를 읽으며 첫 수업의 감동을 다시 느껴봅니당^^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길 소망하며 앞으로의 세미나도 기다려집니당^^

배추흰나비님의 댓글

배추흰나비 작성일

바로 며칠 전 세미나였는데도 홀랑 지나가 버릴 뻔 했던 기억들을 새록새록 끌어올려주는 세심한 후기, 잘 읽었어요! 어려운 책이지만 우리의 이야기이기에 이해가 쏙쏙 되는 것 같아요^^ 세미나 선택에 2% 저의 지분이 있다니! 감덩입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