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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궁금하다!]말과 팔로 대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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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2-02-12 18:43 조회1,0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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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팔로 대화하기

 

 

      
이윤하(남산강학원)


 

: 아빠, 왜 프랑스 사람들은 팔을 흔들죠? 아버지 : 무슨 뜻이냐: 그들이 말할 때 말이에요. 왜 그들은 말하는 동안 내내 팔을 흔들죠? (중략) 아버지 :글쎄 네가 프랑스 사람과 말하고 있는데, 그가 줄곧 팔을 흔들면서 말하다가 대화 도중에 네가 어떤 말을 하니까 갑자기 팔 흔드는 것을 멈추고 그냥 말만 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겠니? 단지 그가 바보 같지 않고 흥분하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하겠니? : 아뇨……저도 놀랄 거예요. 내가 한 말이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고 그래서 그가 진짜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레고리 베이트슨, 마음의 생태학, 메타로그 : 왜 프랑스 사람들은?책세상, p59)

 

이 대화는 프랑스 사람들이 팔을 흔들어서 다른 프랑스 사람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위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프랑스 사람은 팔을 흔들어서 상대에게 ‘나는 기분 상하지 않았고, 화가 나지 않았다’는 것을 표현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논리적이기는 한데, 모호한 구석이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팔을 흔들지 않음으로써 ‘화남’을 표현하기 위해 미리 미리 팔을 흔들어 놓는다는 것인가?^^ 이런 약간의 모호함은 우리에게 ‘말한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럼 오늘은 인간의 주특기라고도 생각되는 ‘말’을 생경하게 느껴보도록 하자.

 

1. 말만 할 수 있나?

‘말한다’고 생각했을 때, 혹은 ‘대화한다’라고 생각했을 때, 우리에게 떠오르는 그림은 두 사람이 마주보고 번갈아 말하고, 듣고, 하는 그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양이와는 대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가 진짜 대화하던 순간들을 떠올려보자. 그러면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이런 질문에 단번에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언어가 정말 ‘말’로 되어있을까? 대화가 정말 ‘말’로만 이루어질까? 팔을 흔드는 건 언어가 아닐까? 우리가 장난처럼 ‘말로 해, 말로!’라고 할 때, 그건 정말 가능한 일일까?

우리는 관념적으로 대화에 문제(잘못 알아듣는 등의)가 생기는 원인이 ‘말’에 있다고 생각한다. 말로 할 것을 제대로 안 해서, 혹은 말을 제대로 안 들어서라고 말이다. 그런데 좀만 천천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대화를 ‘말’이라는 것으로 축소시킬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냥 말’이라는 건 존재할 수가 없다. ‘말’은 필연적으로 톤과 목소리, 표정과 몸짓을 동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냥 말만 할 수가 있나? 아니 그럴 때조차 우리는 ‘담담한 톤’, ‘무언가를 억누르고 있는 톤’ 등등을 피해갈 수 없다. ‘말’은 그것이 피어오르는 현장과 맥락에서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언어’란 일차적으로 몸짓과 톤이라고 할 수 있다. 몸짓과 톤 없는 말은 불가능한데, 말 없는 몸짓과 톤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언어 <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 "Malgun Gothic";'> <span style="font-size: 14px;">&amp;amp;amp;lt;img src="http://mvq.co.kr/wp-content/uploads/elementor/thumbs/언어-pk5iq710dkl60wc75hf9o8gqzivu5aypyml19lj9j4.jpg" title="언어" alt="언어" /&amp;amp;amp;gt;</span> </span> ‘언어’란 일차적으로 몸짓과 톤이라고 할 수 있다. 몸짓과 톤 없는 말은 불가능한데, 말 없는 몸짓과 톤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레고리 베이트슨 선생님이 책에 인용하신  “앤서니 포지 박사가 인용한 이사도라 덩컨의 말”을 인용해보겠다. “내가 당신에게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을 춤출 이유가 없지요.”(같은 책, p248) 이는 춤이 갖고 있는 메시지를 ‘말’로 옮겨 커뮤니케이션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춤’이라는 복합적 언어의 메시지를 이를테면 ‘백조가 연못에 자유롭게 떠다니고 있다’ 등의 말로 번역하는 순간 왜곡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메시지도 억지로 말에 구겨 넣은 것 같지만, 마치 이 ‘문장’, ‘말’을 표현하기 위해 춤 동작을 만들었다는 식으로 춤-언어 자체를 “의식적이고 자의적”인 것으로, 따라서 허구적이고, 그래서 거짓된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대화 과정도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춤-언어를 들으면, 혹은 보면, 우리는 그것을 ‘말’로 번역한 다음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신체로 읽어내게 된다. 그 다음에 필요하다면 그 느낌들, 신체의 변화들을 다시 말로 변환해볼 수 있을 뿐이다. 나는 ‘말’을 들은 게 아니라 몸으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의식’으로 다 포착할 수 없고, 말로 다 할 수 없다. 실로 말이 안 되는 영역이 있는 것이다. 무의식(마음)의 알고리듬은 의식(특히 말)의 알고리듬과 완전히 다르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2. 무의식의 언어

 

일차적 과정의 특징은 부정형이 없고, 시제가 없고, 언어의 화법에 대한 식별이 없으며(즉 지시사, 가정법, 기원법에 대한 식별이 없다) 은유적이다. (중략) 일차적 과정의 대화 주제는 언어와 의식의 주제와 다르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의식은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며, 언급되는 특정한 사물이나 사람에 술어를 붙인다. 일차적 과정에서는 사물이나 사람이 구별되지 않으며, 대화는 그들 사이에 성립된 관계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것이 실제로 일차적 과정의 대화가 은유적이라는 것을 다르게 말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은유에서는 다른 사물이나 사람이 관계를 대신해도 은유가 예시하는관계는 변함없이 유지된다. (같은 책, 원시 예술의 스타일, 우아함, 그리고 정보, p251)

 

일차적 과정은 프로이트의 표현으로, 무의식 작용을 말한다. 무의식의 알고리듬은 꿈의 언어를 떠올리면 조금 이해해 볼 수 있다. 꿈의 언어는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아니다’라는 부정이 불가능하고(무엇이 ‘아닌’ 이미지는 도무지 생각해낼 수 없다), 과거-현재-미래 시제도 없으며(꿈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이미지는 동시적이다) 화법도 없다(이미지로 화법을 구사할 수는 없다). 그리고 핵심 체계는 ‘은유’다. 동물들의 언어는 일차적 과정에 있고, 인간의 ‘말’은 이차적 과정에 있다.

 

은유 <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 "Malgun Gothic";'> <span style="font-size: 14px;">&amp;amp;amp;lt;img src="http://mvq.co.kr/wp-content/uploads/elementor/thumbs/은유-pk5iq0g51qc5rmlr7wkvos4itts9nf8llq0mwnt0qo.jpg" title="은유" alt="은유" /&amp;amp;amp;gt;</span> </span>

 

예를 들어 고양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보자. 아침에 스튜디오 나루의 문을 가장 먼저 열 수 있다면 고양이가 (당신의) 다리에 얼굴을 부비는 영광을 얻을 수 있다. 그 후 고양이가 몇 번의 ‘아웅-’ 소리도 냈다고 하자. 배고픈 게 분명하다(아닐 수도 있다^^). 고양이의 커뮤니케이션 체계에서는 밥을 달라고 하기 위해 ‘밥’을 지칭할 수 없다. ‘고양이의 언어로는 ‘아웅’이 ‘밥’이다 라는 식으로 외국어를 번역하듯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인간화의 오류다. 고양이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다음 ‘행동’을 구성하게 하는 방식이다(그런 면에서 시각적이다). 당신이 고양이에게 밥을 가져다주는 행위를 함으로써 고양이와 함께 ‘패턴’을 이룬다면, 당신과 고양이는 대화를 한 것이다.

이 무의식 작용은 인간에게도, 인간 사이에서도 동일하다. 의식은 ‘말’의 내용들에 집중하고, 정보를 주고받는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바깥 무의식에서는 더 많은 일들이 동시적으로 우글우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프랑스 사람 예시로 돌아와 보자. ‘팔을 흔드는’ 몸짓 언어는 일차적 과정이다. 그렇다면 그것의 ‘의미’는, 그것이 구성하고자 하는 행위는 무엇일까?

 

3. 의미를 해석하기

 

아버지 : 어떻든, 대부분의 대화는 오직 사람들이 화가 났는지 어떤지에 관한 것이란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친하다고 말하느라 바쁜데때로는 그것도 거짓이지. 결국, 말할 게 없으면 어떻게 되겠니? 모두 불편해진단다. (같은 책, p63)

 

‘의미’라는 것은 “같은 패러다임 내에서 패턴, 중복, 정보, ‘제한’과 거의 동의어”(p239)다. 다시 말해, 어떤 집합체를 나누었을 때, 한쪽을 보고 다른 한쪽을 무작위보다 더 잘 예상할 수 있다면, 한쪽이 다른 한쪽에 대해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팔을 흔드는 것이 주로 ‘기분이 좋다’, ‘쾌활하다’ 등으로 많이 해석될 수 있다면, ‘팔을 흔드는 것’은 ‘쾌활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좋다, 팔을 흔드는 것이 쾌활하다는 의미라면, 이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행위를 구성할까? 메타로그의 베이트슨에 따르면, 친밀한 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 팔을 흔드는 행위는 이를테면 친밀한 미소로 답해진다. 이것을 좀 더 높은 층위에서 해석해보자면, 인간 무의식의 대화는 ‘서로서로 친하다고 말하느라 바쁜’ 대화가 되는 것이다.

서로 <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 "Malgun Gothic";'> <span style="font-size: 14px;">&amp;amp;amp;lt;img src="http://mvq.co.kr/wp-content/uploads/2022/02/서로.jpg" title="서로" alt="서로" /&amp;amp;amp;gt;</span> </span> 인간 무의식의 대화는 ‘서로서로 친하다고 말하느라 바쁜’ 대화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잘 된 커뮤니케이션이란, 의식과 무의식이 동시에 작동하는 것이다. 의식이 상대 ‘말’들의 디테일과 내용에 집중하고 있을 때, 무의식은 눈앞의 시각정보(한 명의 상대가 아니라 연결된 모든 타자들)와 계속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행위를 촉발하고, 층위를 높여가며 의미를 해석한다. 우리가 의식으로는 채 포획할 수 없는 무의식의 커뮤니케이션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의식으로 인정해준다면, 말 하나에 집중하면서도, 말 하나에 끄달리지 않는, 묘하고 풍요로운 대화가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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