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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씨나 지중해] 이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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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3-02-03 09:41 조회2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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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이야기
김 해 완

마라갈 주민이 되다

내가 바르셀로나로 공부하러 가게 되었다고 공표했을 당시, 많은 지인이 나를 찾아가겠노라고 약속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꼭 짚어야만 했는데, 내가 공부하게 될 학교가 행정구역상 ‘바르셀로나‘에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내가 살았던 기숙사 캠퍼스는 시내에서 기차를 타고 사십 분은 나가야 나오는 산에 있었다. 밤이면 멧돼지가 출몰하고, 낮이면 수의대 학생들이 양과 말을 치는 그런 캠퍼스에… 덕분에 나는 지난 일 년 반 동안 바르셀로나 도심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살았다. 내가 찍는 일상 사진은 초록빛 자연의 색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한국 지인들에게 이 야생(?)의 캠퍼스를 소개할 기회는 끝내 오지 않았다. 올겨울부터 한국 손님들이 하나둘씩 바르셀로나를 방문하기 시작했는데, 나 역시 바로 이 시기에 학교 캠퍼스를 떠나 바르셀로나 시내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도 당당하게 ‘바르셀로나 거주자‘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내가 사는 동네는 바르셀로나의 동북쪽 어귀에 있는 마라갈(Maragall)이라는 곳이다. 카탈루냐인 50%에 남미, 중국, 파키스탄 이민자가 50%로 구성된 동네로, 치안이 좋고 지역 상권이 활발하게 조직되어 있다. 뉴욕만큼 글로벌하게 다양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줄줄이 늘어선 가게들을 보면 그 구성이 재미있다. 남미 식당 사이에 두부와 콩나물을 파는 중국 가게가 있고, 터키 케밥을 파는 푸드트럭 옆에 온갖 생활용품을 파는 오래된 철물점이 나온다. 나폴리 출신의 노부부가 자존심을 걸고 운영하는 이탈리아 식당도 있고, 카탈란 아주머니가 각종 견과류와 파스타 면을 무게별로 판매하는 제로 웨이스트 샵도 있다.

외곽 동네라고 해서 교통이 불편하지도 않다. 바르셀로나가 워낙 작은 도시이기 때문에 집 앞 지하철을 타면 대부분의 장소는30분이면 도달한다. 걸어 다니는 재미도 있다. 20분 정도 걸어가면 한 세기 전 모더니즘 양식으로 지은 아름다운 도서관도 있고, 바르셀로나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공원도 있다. 마라갈은 나처럼 공부하는 사람에게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동네다. 이처럼 편안한 동네를 만들어준 주민들에게 감사해하며, 이들 사이에 나도 엉덩이를 슬쩍 밀어 넣고 주민 행세를 하는 중이다.

해완이 찍은 바르셀로나의 전경

십 년의 인연

이 동네에 오기까지 내가 겪은 우여곡절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작년 여름에 엠비큐에도 글을 썼지만, 나는 삼학년부터 병원에서 수업을 듣기 때문에 반드시 삼 학년부터 바르셀로나에 집을 구해야 했다. 바르셀로나의 물가를 고려했을 때 나 홀로 집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하우스메이트를 들인다는 것은 장점만큼 단점도 크다. 생활 습관이 맞지 않거나 갈등 조율에 실패할 경우 누군가가 집을 떠나야 한다. 다년간의 해외 생활과 잦은 이사에 질려버린 나는 내가 졸업할 때까지 평화로운 공동 주거 생활을 함께 일궈나갈 안정적인 하우스메이트가 간절했다.

그런 ‘유니콘‘같은 하우스메이트가 단번에 찾아질 리는 없었다. 생활패턴이 비슷하고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찾아놓으면 부동산 계약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 계약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을 찾아내면 또 그 사람이 먼저 잠수를 타거나 소소한 사건으로 신뢰가 깨져버렸다. 계획은 수도 없이 뒤집어졌고, 완전히 지쳐버린 나는 결국 ‘집’을 구하려는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이사 날짜가 닥쳤을 때 그냥 적당한 조건의 ‘방’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방에 들어간다는 것은 집을 계약한 사람이 서블렛을 놓은 방 한 칸을 빌린다는 뜻이다. 이 상황에서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집을 쉐어하게 된다.)

그 시기에 나에게 연락을 준 사람이 있었다. 약 십 년 전 뉴욕에서 만났던 콜롬비아 친구 다니엘라였다. 다니엘라는 뉴욕에 일 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우리의 인연은 그 후로도 계속 이어져 왔다. 일 년에 한두 번씩은 통화를 했고, 내가 콜롬비아를 두 번 방문했으며, 다니엘라의 가족들도 쿠바를 두 번이나 방문했다. 팬데믹 이후로는 내가 아메리카 대륙을 떠났으니 앞으로 얼굴 보기가 더 힘들어지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내가 바르셀로나에 온 바로 이듬해 다니엘라의 남자친구가 바르셀로나에 일자리를 구해버렸다. 다니엘라는 애인을 보러 바르셀로나에 놀러 왔고, 콜롬비아에 돌아가는 대신 그대로 눌러 앉아버렸다. 어쩌다 보니 십 년 만에 우리가 다시 같은 도시에 살게 된 것이다.

다니엘라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다니엘라와 애인이 살고 있던 원룸은 너무 협소하고 통풍과 채광에 문제가 많았다. 그렇다고 더 좋은 집을 구하기에는 둘이 가진 예산이 부족했다. 그렇다면 해답은 제3자를 들여 공동 주거를 하는 것뿐인데, 별별 사람들이 다 모이는 세계 도시 바르셀로나에서 모르는 사람과 무턱대고 같이 살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다니엘라는 일상의 루틴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공동 주거에서 루틴이 깨지는 방법은 차고 넘친다. 새벽 세 시에 음악을 최대 음량으로 듣는 사람, 튀김 요리 후 환기를 안 해서 부엌을 불난 집처럼 연기투성이로 만드는 사람, 절대로 죽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청소를 하지 않는 사람… 세상은 넓고, 인간은 늘 상상 초월의 존재다!)

다니엘라는 나에게 아파트를 함께 구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고, 나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실 앞서 집을 찾다가 수없이 엎어졌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파트가 실제로 구해지고 계약서를 실물로 보기 전까지 이 계획이 실행되리라고 100% 믿지는 않았다. 늘 예상치 못한 변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간 톡톡히 배웠던 것이다. 다니엘라에게도 혹시나 마음이 변하면 편하게 (그리고 곧바로!) 내게 말해달라고 누누이 일렀다.

해완이 찍은 바르셀로나의 아파트 거리

그러나 결국 우리는 같이 살게 될 인연이었나보다. 열흘도 지나지 않아서 번듯한 집이 마라갈에 떡하니 구해진 것을 보니 말이다. 크기는 작지만 구석구석에 빛과 바람이 잘 들어오는 깔끔한 아파트였다. 작은 방은 나에게, 큰 방은 커플에게 돌아갔다. 중간 방은 모두가 사용하는 공부방으로 꾸미기로 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일처럼 이 모든 게 척척 진행되었다.

한 번 상상해본다. 누군가가 타임머신을 타고 십 년 전으로 돌아가 스물한 살인 나에게 이 상황을 미리 알려주는 거다. 뉴욕의 헌터 칼리지 어학당에서 만난 동갑내기 콜롬비아 여자애와 나는 십 년 후 유럽의 지중해 도시에서 ‘우연히’ 같이 살게 될 것이고, 그때는 영어가 아니라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며, 문화의 벽을 허물고 서로의 애인과 남편까지 잘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될 것이라고. 십 년 전의 나라면 십중팔구 믿지 못할 것이다. 이런 현실성 없는 스토리라인은 드라마에도 써먹기 어렵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때때로 인생은 드라마보다 더 믿기 힘든 스토리를 자아내는 듯하다.

식기세척기를 통해 배운 균형의 지혜

함께 살기로 결심했을 때, 다니엘라나 나나 서로에 대해 믿는 구석이 있었다. 우리는 둘 다 조용한 사람들이다. 취미 생활도 조용하고 (책 읽기 아니면 영화 보기) 왁자지껄한 파티도 싫어하며 정리 정돈을 잘한다. 두 달을 함께 살아보니 우리의 예측은 대체로 옳았던 것으로 판명 났다. 유일한 변수는 다니엘라의 남자친구였으나, 알고 보니 이 친구는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매우 투명한 사람이었다. 생활패턴을 바꿔 달라고 요청하면 곧바로 고쳤고, 마찬가지로 나에게 부탁할 게 생기면 돌려 말하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들 사이의 소통은 매우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공동 주거 멤버들이 이 정도로 비슷한 생활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공동생활‘이 거저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사소하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일상의 문제들을 끈질기게 조율해 가야 한다. 이번에 공동생활을 하면서 내가 톡톡히 배운 것은 살림의 기준에 왕도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셋 다 매일 바쁘게 살기 때문에 살림에 큰 힘을 쏟지 말고 ’적당히‘ 깨끗하게 유지하자고 합의를 보았다. 문제는 ’적당히‘의 기준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밥을 먹은 후에 곧바로 설거지를 하고 부엌을 쓰기 전 상태로 되돌려놓는다는 ’대전제‘는 모두 철저하게 지킨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작동하는 ’소전제‘에서는, 가령 가스레인지를 어떤 방식으로 닦을지, 행주를 얼마나 자주 삶을지, 친환경 세제와 저렴한 세제 중 어느 쪽을 살지와 같은 문제 앞에서는 모두 의견이 갈린다.

예시를 들어보겠다. 다니엘라와 남자친구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하기 때문에 물건을 잘 사지 않으려 한다. 공용 물건을 구매할 때도 설득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또한 전기세에 매우 민감해서 집안 모든 곳의 불을 끄고 다닌다. 사용하지 않는 가전제품은 보는 족족 콘센트를 뽑아야 한다. 그런데 또 이 둘은 식기세척기를 (아파트 렌트에 옵션으로 딸려 왔다) 너무나 사랑한다. 그러자 내 머릿속에서는 논리적 충돌이 일어났다. 식기세척기가 미니멀리즘 및 전기 절약과 공존할 수 있는 기계인가? 식기세척기 한 번 돌리는데 드는 전기량이 어마어마할 텐데? 또 식기세척기를 꽉 채워 쓰려면 그릇도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해완이 찍은 바르셀로나 아파트에서의 뷰

식기구를 공유하는 처지다 보니 나 역시 이 둘을 따라 식기세척기를 쓰게 되었다. 곧 나는 식기세척기로 씻은 그릇이 생각보다 깨끗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어느 날 나는 식기세척기 안에 공간을 넉넉하게 남겨두고 기계를 작동시켜보았다. 그릇이 좀 더 깨끗하게 씻기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랬더니 둘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다. 식기세척기가 아직 꽉 차지도 않았는데 작동시키다니! 전기를 낭비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나는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제발 그냥 손으로 설거지를 하자고 읍소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사실 이런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 각자의 생활 감각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의지만 있으면 해결책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그 후로 나는 식기세척기의 작동은 둘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대신 그릇이 다 씻겼을 때 하부장에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그러면 제대로 씻기지 않은 그릇을 발견해낼 수 있다. 게다가 그달의 전기세는 생각보다 적게 나왔다. 덕분에 우리의 집도 곧바로 평화를 되찾았다. 불화를 줄이는 최고의 방법은 지혜와 잔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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