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 소축의 때, 서백은 주왕과 상대하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천리였으며, 그에게 유일한 문제는 천리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요컨대, 그의 관심은 권력이 아닌 천리였다! 그것은 주왕이 없어야만 열리는 그런 길이 아니었다. 주왕과 같은 인물 때문에 어두워질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끊어질 수 없는 것, 그것이 천리이고, 그렇기에 천리이다. 그러니 서백의 마음 어디에 주왕을 해칠 마음이 들어설 자리가 있었겠는가. 이 때문에 주왕은 서백에게서 어떤 위협도 느끼지 못했으리라. 하여 서백에게만큼은 그 강폭한 기운 또한 내려놓을 수 있었으리라.
천리에 대한 서백의 믿음. 날이 궂으면 궂은 대로,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작든 크든 자신의 천리를 행해 나가는 것. 이것이 서백의 전부였다. 서백은 그렇게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그 길을 따라 천리의 밝은 빛은 흘러들 것이고, 그러면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었다. 작은 구름들이 서서히 모여들어 매마른 땅을 적시는 비를 내리듯이 말이다.
그런데! 서백은 여기서 다시 한번 자신의 작음을 말한다. 그 시원한 빗줄기를 자신은 맞을 수 없을 거라고. 서백은 “자신이 어느 것 하나 이루어놓은 것 없이 살다가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역 강의』, 리하르트 빌헬름, 진영준 역, 소나무, 175쪽) 다시 말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영광도, 그 속에서 안온하게 살아갈 기회도 자신의 몫이 아니라는 거다. 그에게 허락된 일은 오직 구름을 모으는 일일 뿐이었다. 그는 그렇게 서쪽 제후국의 수장으로 생을 마감할 것이었다. 밀운불우 자아서교. 密雲不雨, 自我西郊. 구름이 빽빽한데 비가 오지 않는 것은 내가 서쪽 교외에서 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토록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출 수가 있을까. 서백은 자신이 누리지도 못할 비를 위해 구름을 모았다. 왜? 비는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자신이 아니어도 그 언젠가, 그 누군가는 내리는 비에 목을 축이고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서백은 그렇게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 일에, 그리 생색나지 않은 그 길에 마음을 다했다. 아니, 생각해보니 상황은 그 반대일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서백이 그 마음을 냈기에 비는 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돌아올 결과에 대한 기대도 욕심도 모두 내려놓은 자리, 비구름은 거기에만 들어찰 수 있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