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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겁내지 말고 받아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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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3-05-29 09:36 조회3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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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내지 말고 받아들여

김 두 영(감이당)

결혼 후 이십 대 후반에 또다시 질풍노도의 시기가 찾아왔다. 취업하기가 정말 어려웠던 IMF 직후 나름 안정적인 직장에 운 좋게도 들어갔고, 3년 반 정도 일했는데, 주위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뜬금없이 그만뒀다. 왜? 그냥 놀고 싶기도 했고, ‘뭐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랴?’라는 생각에 자신감에 넘쳐 시원하게 그만뒀다. 그러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삼십 대 초반을 그냥 날려 먹었다. 특별히 할 줄 아는 것도,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도 없어, 될 대로 되라며 어영부영하다 돌아보니 벌써 아들은 유치원 보낼 나이가 되었고 빚은 수천에 이르렀다. 게다가 애 엄마의 마음 또한 바싹 말라 있었다. 개과천선까지는 아니지만, 생존에 직면한 현실에 닥치는 대로 일을 시작했다. 특별한 경력도, 기술도 없으니 선택할 수 있는 직업군이 한정적이었다. 오로지 몸뚱어리로만 먹고 살아온 것이 벌써 이십 년이 되어간다. 거기다 그 세월 동안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힘들다고 마시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그것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오랜 습에 목줄이 채워진 채 오늘을 마무리해 왔다.

올해, 작년과는 달라진 체력을 실감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큰 무리 없이 했던 일인데 이제 그것이 버거워졌다. 예전 생각하고 덤볐다가 다리가 한 번 꼬이고, 팔 근육통에 며칠을 시달리고 나니 일 자체가 무서워진다. 덜컥 겁이 난다. 하루를 연명하느라 내일 걱정할 틈이 없었는데, 그래도 닥치는 대로 뭐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은 있었는데, 나이 듦과 육체적 한계, 거기다 ‘잉여’라고는 일도 없는 상황에 갑자기 내일이 두려워졌다.

아니네그럴 리가 있는가내 왼팔이 점점 변해 닭이 된다면 나는 새벽을 알리겠네삶을 얻는 것도 때를 만났기 때문이고 그것을 잃는 것도 때를 따르는 것일 뿐일세생사를 편안히 때의 추이에 맡기면(安時而處順슬픔과 기쁨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네옛사람들은 이를 일러 하늘이 내린 형벌에서 풀려나는 것’(懸解)이라 하였네그런데 스스로 풀려나지 못하는 것은 사물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지하지만 사물이 자연의 이치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오래된 진실내가 무엇을 싫어하겠는가?” (이희경낭송 장자북드라망, 189)

이 구절을 읽으며, 울컥했다. 처음에는 너무나 당연하듯이 저렇게나 담담히 죽음을 맞이한다는 자체가 너무 멋있었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상남자’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것뿐이었다. 멋있다는 것 빼고는 그냥 듣기에 좋은 말로만 느껴졌다. ‘생사를 편안히 때의 추이에 맡기면 슬픔과 기쁨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니. 먹고 살기 힘든 이 세상에서 뭘 편안히 때를 기다리라는 말인지. 나는 늘 입버릇처럼 “나는 절대로 오래 살고 싶지 않다. 사는 것이 더 겁난다. 여든이든, 아흔이든 죽는 그 날까지 뼈 빠지게 일해야 할 텐데, 뭐가 좋다고 오래 살길 원해?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 죽는 거 별거 있겠어?”라고 말해왔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내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생각과 윗글이 어느 정도 통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게 안시처순(安時處順)같은 말은 하루를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배부른 소리 같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사실 감이당을 오가면서도 나의 현실과 이곳에서의 공부를 연결 짓는 게 참 어렵긴 하다. 이제 노후를 위해 돈을 모으고, 일요일 하루라도 푹 쉬면서 몸을 이완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맞는 것 같은데 왜 이러고 있는지 생각을 많이 했었다. 뭐가 맞을까? 생각과 생각이 꼬리를 물며 계속해서 책을 읽었다.

래도 닥치는 대로 뭐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은 있었는데, 나이 듦과 육체적 한계, 거기다 ‘잉여’라고는 일도 없는 상황에 갑자기 내일이 두려워졌다.

얼마 후 자래도 병이 걸렸습니다가쁘게 숨을 쉬는게 곧 죽을 것 같았습니다부인과 아이들이 울고 있었습니다자리가 문병을 가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리 가세요죽어서 돌아가는 자를 놀라게 하지 마십시오.” 자리는 문에 기대 자래에게 말했습니다. “위대하군이 자연의 조화가자네를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자네를 어디로 보내려는 것일까자네를 쥐의 간으로 만들려나자네를 벌레의 팔뚝으로 만들려나?” (같은 책, 190)

 

‘죽어서 돌아가는 자를 놀라게 하지 마세요.’ 이 구절의 원문을 찾아보니 ‘무달화(無怛化)’라고 되어 있었다. 달(怛)은 ‘놀라다, 슬프다, 근심하다, 두려워하다.’라는 뜻이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 ‘변화에 놀라워하지 말라.’ 변화는 곧 죽음이겠지. 그런데 뒤 구절도 내게는 의미심장했다. 죽음이라는 것이 그냥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쥐의 간이 될 수도, 벌레의 팔뚝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죽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로도 바뀔 수 있다는 것. 이제야 ‘팔이 변해 닭이 되면 새벽을 알린다.’라는 앞의 구절이 어느 정도 와 닿는다. 죽음이 되었든, 무엇으로 변화하던지 그 상황을 긍정할 수 있다! 이것은 태어난 것도 하나의 때를 만난 것(得者, 時也)이고, 잃는 것도 때를 따르는 것(失者, 順也)으로, 내게 어떤 변화가 찾아오더라도 그 변화를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으로 생각을 정리한다. 내가 죽음 앞에서 당당하다고 생각한 것은 오산이다. 나는 죽음을 내 현재 조건에서 도피처 정도로 생각했다. 만약 지금 당장 복권이라도 된다면 빨리 죽겠다는 소리를 할까? 당장 건강검진 받으러 달려가지 않을까? 어디 감히 진인들이 변화를 긍정하고, 죽음조차도 자연의 조화로 받아들이는 것에다가 “나는 죽는 것 따위는 겁나지 않아!”라며 묻어가려 했는지.

1995년, 가평에 있는 꽃동네라는 곳에 간 적이 있다. 노인 병동에서 뒷수발을 들었는데, 거기에 청년 한 명이 있었다. 사고로 허리 밑으로는 감각도 없다고 했다. 또래여서 꽤 친하게 지냈고, 날씨가 좋으면 휠체어에 태워 바깥 공기를 마시러 가곤 했다. 나란히 앉아 5월의 햇볕을 쬐며 담배 한 대 태우면 그렇게 좋아했었다. 평생 걷지 못할 상황에서도 항상 웃던 그가 이제야 새삼스럽게 생각이 나는 것은, 그 청년에 비해 나는 얼마나 다채롭게 살아왔을 법한데 아직도 나를 인생에 실패한 노동자로만 규정짓고서, 틈만 나면 내 지나간 삶을 부정하고 우울해하는 것을 「장자」를 읽으며 또다시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몸은 온전한데 결핍하고, 그는 결핍한 몸을 긍정했다. 변화를 담담히 받아들인 것. 그가 「장자」를 읽었을 일은 만무하지만 지금 내가 바라보는 그는 진인이나 다를 바 없다.

올해 꽉 찬 50세가 되었다. 언급했듯이 나는 체력적인 한계에 다다른 육체노동자다. 도대체 뭘 하며 먹고 살아야 할지 여전히 고민이 많고 앞으로도 계속 그 고민은 안고 가야 한다. 그렇지만 글을 쓰면서, 또 「장자」를 읽어가면서 고민은 하되, 불안에 떨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나는 때를 만나 태어나 이러저러하게 살아왔고, 변화의 때가 되면 그 변화에 몸을 맡기면 된다. 내 팔이 변해 닭이 된다면, 동영상 찍어 유튜브에 올리면 되지, 징징거릴 것은 뭐가 있을까?

 

죽음이라는 것이 그냥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쥐의 간이 될 수도, 벌레의 팔뚝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죽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로도 바뀔 수 있다는 것.

또다시 1995년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당시 함께 일하시던 수녀님이 내게 “형제님은 복 받으실 거예요.”라고 하셨다. 나는 지금도 그 말씀을 빈말로 여기지 않고 힘들 때마다 “복은 도대체 언제 주시나요?”라고 되뇌곤 한다. 여태껏 내가 원하던 복은 ‘로또 당첨’처럼 물질적 풍요로움이었고, 그분이 내게 말씀하신 복은 아마도 내가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생사를 편안히 때의 추이에 맡기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어마어마한 생각을 이제야 해 본다. 그렇다면 복은 못 받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여기서 몇 년째 이렇게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것, 매번 글을 쓰면서 그때만이라도 나를 한 번 더 돌아보는 것, 그것 자체도 대롱대롱 매달린 채(懸) 살아가는 것을 벗어나기 위한 변화의 순간이라면, 이미 복은 소소하게 와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느낌에 슬며시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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