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세이] 바보 원숭이에서 탈출하기 > MVQ글소식

MVQ글소식

홈 > 커뮤니티 > MVQ글소식

[감성에세이] 바보 원숭이에서 탈출하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3-06-04 09:55 조회335회 댓글3건

본문


바보 원숭이에서 탈출하기

이 대 중(감이당)

두 가지 일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해라.” 교장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다. 내가 일을 안 하고 띵까띵까 노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주어진 업무를 마감 시간의 끝까지 버티다가 제출한 적이 많다. 그렇게 시간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것은 조금 위험하다. 중간에 다른 일이 생기거나 일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마감 시간을 못 지킬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담당자에게 미안하다고 얘기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자주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왜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하려고 할까, 또 일에 어떤 의미를 두고 있는 걸까 생각해 보았다. 난 업무를 바라볼 때 쓸데없는 것과 쓸 데 있는 것으로 나눈다. 쓸데없는 일이란 형식적인 일, 일시적인 사건으로 해서 갑자기 생겨난 유행 같은 그런 일이고, 쓸 데 있는 일이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이른바 창의적인 일이다. 그리하여 쓸데없다고 판단한 일은 소중한 현재 시간을 쓸 수 없다고 나의 두뇌가 명령을 내려 뒷전으로 미루고 버티고 버틴다. 반면, 쓸 데 있다고 판단한 일은 혼자 흐뭇해 온갖 상상을 하고 이래저래 바꿔가며 이쁘게 만들려고 애쓴다. 이것이 나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일을 하는 모습은 달랐다. 그들은 내가 쓸데없다고 생각되는 일을 먼저 하였다. 나는 그들이 그 일을 힘들게 하는 모습을 보고는 쓸데없는 일에 저렇게 에너지를 써버리다니 하며 속으로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시간을 더 가치 있게 쓰고 있다며 속으로 우쭐해했다.

자연스러운 일의 순서(?)

일을 하는 순서에 따른 결과는 같은 듯 달랐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해 놓으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이 개운하다. 머릿속에 잡념이 남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 생각이 나겠지만 그것은 잡념의 찌꺼기가 아닌 곧 만나는 희망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그 이후의 시간에는 하고 싶은 일을 맞이하면 된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한다면 현재를 알차고 멋지게 살고 있다고 자위하지만 뭔가에 신경이 쓰인다. 해야 할 일이 머릿속 한 편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 곰곰이 생각하지 않아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가까이 내 방을 보니 쌓여있는 것들이 많다. 해야 할 일들이다. 빨랫거리, 설거짓거리, 치워야 할 책상 등 그것들은 제때 정리되지 못하고 미루어져 일상에서 늘 나에게 달라붙어 있다. 책을 밀어놓고 책상 한구석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그것들은 나의 눈과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저자(『파라-독사의 사유』 이정우)는 몸과 마음을 세계와 세상의 결과 마디에 잘 맞추지 않으면 부딪쳐 상하게 된다고 했다. ‘일의 순서’에도 그런 게 있는 걸까?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에 부합하는 것일까? 언뜻 생각해 보니 그렇게 하면 몸과 마음이 상하지 않게 잘 보존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난 자연의 이치를 거슬러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재미있고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일을 하면서도 그 뒤에 해야 할 일에 끄달려 머리가 무거웠던 것은 그래서였을까? 장자가 나를 본다면 교장 선생님과 같은 말씀을 하셨을까? 생각이 많아지고 있었다.

 

원숭이 안-되기

정신을 피로케 해서 하나됨을 깨달으려 해도 결국 깨닫지 못함을 가리켜 조삼이라 한다무엇이 조삼인가원숭이 사육사가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에 세 되 저녁에 네 되 주마고 하자 원숭이들 모두가 화를 내니하여 그럼 아침에 네 되 주고 저녁에 세 되 주마고 하자 이번에는 모두가 기뻐 날뛰었다고 한다()과 실()에 어긋남이 없건만화내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는 것이 이와 같더라역시 도의 하나됨에 따를 뿐이다그래서 성인은 시비의 다툼을 가라앉히고 하늘의 가지런함(天均)에서 편히 쉬니이를 일러 양행’(兩行)이라 한다. (파라독사의 사유』 이정우 108p)

 

옛날부터 들어왔던 바보 원숭이 이야기를 다시 눈으로만 빠르게 훑으며 건너뛰려는 순간 어?! 나의 모습과 원숭이의 모습이 교차되었다. 바로 내 얘기가 아닌가. 내 성향에 맞고 가치 있다고 여긴 속칭하고 싶은 일은 네 되,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한 일은 세 되이다. 네 되의 일이 주어지면 좋아라 하고, 세 되의 일이 주어지면 싫어하고, 그렇게 정신을 피로케 하여 깨닫지 못하는 모양새, 하지만 어차피 일의 양은 일곱 되이다. 똑같은 일곱 되의 일을 나의 잣대로 나누어 좋아하고 싫어한 꼴이라니.

대붕이 되어 멋지게 비상하는 모습과 나를 잊어버리는 오상아의 경지를 동경하며 장자를 읽었는데 웬걸 눈앞의 이익밖에 보지 못하는 바보 원숭이가 되고 말았다. 이것은 되기의 퇴보 버전인가. 단지 내 감정과 어쭙잖은 지식을 기준으로 좋고 싫은 일, 가치 있고 쓸데없는 일을 나누는 모습은 원숭이들이 잔머리 굴리는 모습과 겹쳐지며 부끄러워졌다.

성인이 되어 하늘의 가지런함에서 쉬는 것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이야기 속 원숭이 수준에서는 탈출해야 한다. 다행히 확실한 탈출 방법은 있다. 우리가 원숭이를 보며 멍청하다고 여기는 것처럼 내가 한 단계 높은 곳으로 올라 나를 내려다보며 멍청하다고 여길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수평이 아니라 수직적으로 차원을 높여서 내려다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을 대함에 있어 그런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우선 일의 시비에 대해서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창의적이라며 좋아한 일들과 쓸데없다며 싫어한 일들은 정말로 그런 걸까, 잠시 내 머릿속에서 두 편으로 나누어져 있던 여러 가지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자 동시에 똑같은 일들이 때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던 적이 꽤 있었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그렇게 내 생각과 다른 어떤 것이 다가올 때면 그건 드문 예외 상황일 뿐이라고 애써 고개를 한쪽으로 돌려버리는 내 모습도 보였다. 지난 10여 년 동안 그렇다고 굳게 믿어왔던 일의 성격들이 실상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금방, 그리고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오랫동안 내가 나를 이토록 단순하고 쉽게 가스라이팅한 사실을 알아챈 순간이었다. 가벼운 두통이 느껴졌다.

 

수평이 아니라 수직적으로 차원을 높여서 내려다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일하며 가지런함에서 쉬기

이제 일은 일이다. 일은 죄가 없다. 내가 가치를 매겨 좋고 나쁨을 구분해서 우열을 가리고 다투는 것은 일희일비하는 원숭이 수준에 머무름과 같다. 한 차원 높이 뛰어올라 일을 내려다보고, 일 그 자체로 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일 또한 어떤 마디들, 결들로 생겨나며, 우리는 그러한 일의 결이 마디로 나뉘어진 것을 따라 차례대로 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나에게 중요한 것은 제때에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직장에서의 업무를 늦지 않게 해내고, 쌓여 썩기 전에 빨래와 청소를 해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아무리 높은 도의 차원에서 바라보고 깨달은들 실생활에는 소용이 없다. 굶어 죽기밖에 더할까. 무심한 일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때에 맞춰서 해내자. 그렇게 꾸준히 해나간다면 적어도 주어진 일 속에서 바보 원숭이의 수준은 훌쩍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하늘의 가지런함에서 쉴 수 있는 경지에 조금은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댓글목록

길상님의 댓글

길상 작성일

대중샘의 정연한 글 속 생각을  졸~졸~ 따라가며  처음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고
샘께서 제게 조언해주셨던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의 모양을 볼 수 있었어요~~~ 감사^^
다음 번 샘의 글을 기다리고 기대하겠습니다!!!

심재님의 댓글

심재 작성일

다시 읽으니 공감되며 술술 잘 읽히는 정말 명문이군요. 수필가 대중샘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 주세요.

어떤사람A님의 댓글

어떤사람A 작성일

저런 사진은 또 어떻게 구하셨대요~~정리된 글과 함께 보니 이해가 쏙쏙! 전보다 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ㅋㅋ
역쉬 감이당 선배님은 선배님....저도 수직적으루다 차원을 달리 볼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정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