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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더하기 빼기 춤추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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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3-11-21 05:33 조회17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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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기 빼기 춤추실래요?

강 명 희(감이당 목요 주역)

불안한 출발

나는 베를린 장벽에서 그리고 제주와 광주에서 평화의 춤을 유튜브에서 보고 저거다 싶어 커뮤니티 댄스를 배웠다. 그래서인지 올 3월부터 계획된 ‘유럽 여름 댄스워크샵 ’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떠나기 2주 전 지인의 실수로 노후 자금 중 적지 않은 돈을 잃게 되었고 그 일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여행을 못 갈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환불을 거의 받을 수가 없었고 그보다는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일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서 내가 서울에 있어 봤자 소용없는 일이기도 했다. 어쨌든 고심 끝에 나는 유럽 춤 여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에서 워크샵과 공연 준비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화가 났고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해서 춤에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다.

 

덜어냄은 믿음이 있으면 크게 길하여 허물이 없어서 올바르게 할 수 있다나아가는 것이 이롭다어떻게 쓰겠는가두 대그릇만으로도 제사에 쓸 수 있다. (有孚元吉无咎可貞利有攸往葛之用二簋可用享.)

그래서였을까? 나는 주역 공부를 놓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호텔 방에서 틈나는 대로 도반들이 보내 준 파일로 강의를 들었고 공책에 메모했다. 그러던 중 나는 산택손(山澤損)을 만났다. 산택손 괘는 산을 상징하는 간艮괘가 위에 있고 연못을 상징하는 태兌괘가 아래에 있다. 그 형상은 산은 높고 연못은 깊어서 아래가 깊으면 위가 더욱 높아지니 아래를 덜어 위를 증진시키는 것이다이는 과도한 것을 덜어내고 합당한 이치를 따르면 크게 선하여 길하다는 것이다그러므로 두 대그릇만으로도 제사를 지낸다 했다오직 정성과 진실만이 근본이 된다(정이천 주해주역글항아리, 812~815괘사를 접하는 순간 나에게 덜어냄이란 어떤 것인지, 무엇을 덜며 어떻게 덜어야 할 것인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정리되지 못한 채 힐링 커뮤니티 댄스 공연을 하게 되었다.

그녀와 춤을

연 준비 중 나는 뜻밖의 만남을 가졌다. 오스트리아에서 커뮤니티 댄스 공연을 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헝가리에서 한걸음에 달려온 그녀는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인 교수의 제자였다. 그녀는 헝가리에서 4시간에 걸쳐 차를 몰고 불고기와 김치 그리고 된장찌개를 요리해서 가지고 왔다. 빵에 물려 있던 나는 음식을 먹으며 왠지 모를 눈물이 났다. 그녀의 정성과 배려에 감동한 것이다. 그녀는 머나먼 타국에서 외로움으로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공연을 보며 우리가 하나로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인터뷰 중 울먹였다.

커뮤니티 댄스 공연 후 우리는 헝가리 문화원의 워크샵 요청을 받았다. 그녀의 감동이 전해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흔쾌히 비엔나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를 탔다. 계획에 없었던 여행이었는데 무엇이 우리를 이끌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그렇다. 우리의 삶은 늘 낯설고 느닷없음의 연속이 아닌가. 그녀의 친절에 나의 몸은 낯선 도시를 받아들였고, 부다페스트 한국 문화원에서 그녀와 함께 더하기 빼기 춤을 추었다.

더하기 빼기 춤

힐링 커뮤니티 댄스 중 더하기 빼기 춤은 급격히 동료와 친해지는 춤이다. 예술적인 성격이 강하고 쉽게 따라 할 수 있어 사람들이 참 좋아한다. 이 춤은 구성원이 2, 3명씩 짝을 지어 먼저 한 사람이 하고 싶은 동작을 하고 멈춘 후 다른 이가 자신의 욕구에 따라 하고 싶은 동작을 하고 멈춘다. 2, 3명이 동작을 다 하고 나면 먼저 한 사람이 서서히 동작을 풀며 빠져나와 다른 사람을 바라보며 다시 자신의 새로운 충동에 따라 동작을 더한다. 그리고 순서대로 이 동작을 반복한다. 이 춤은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신의 원트를 알아차리고 새로운 반응을 하게 하여 예술성과 창조성을 발휘하게 한다. 그리고 참여자는 천천히 빠져나오면서 자신의 미세한 근육을 알아채며 숨겨진 에너지를 느낀다. 마치 육삼효의 세 사람이 갈 때에는 한 사람을 덜어내고 한 사람이 갈 때에는 그 벗을 얻는다(六三三人行則損一人一人行則得其友)는 것처럼 덜고 보태며 아름다운 동작을 만든다. 이때 중요한 건 자신의 욕구를 알아채는 것이다. 폼나게 춤을 추려 할수록 감동에서 멀어진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자신의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떤 욕구가 일어나는지 자연스럽게 살펴보아야 한다.

더하기 빼기 춤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 느낌을 이렇게 말하곤 한다. ‘예술가가 된 것 같아요’,

‘내가 르네상스 조각품인 것 같아요’ 등 뜻밖의 동작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데 헝가리에서 나와 춤을 춘 그녀와 다른 동료는 조금 달랐다. ‘어릴 적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스르르 잠들었던 생각이 난다’, ‘저녁 식사 후 가족들과 텔레비전을 보며 귤 까먹던 추억이 떠오른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는 이것이 공간에서 오는 감흥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타국에서 외로웠고 불안감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나도 그들도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며 어루만지고 있었다.

워크샵이 끝나고 우리는 그녀가 운영하는 요가원에서 멋진 식사를 대접 받았고 주말에는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헝가리인들이 자주 찾는 노천 온천을 방문했다. 그리고 어느새 여행 중에 가졌던 분노와 억울함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나와 그녀는, 우리와 그들은 서로를 채워주고 덜어주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손괘의 육오에서 말하는 十朋이었다. 그녀는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환대해 주었고 아낌없이 베풀었고 공감해 주었다. (혹 증진시킬 일이 있으면 열 명의 벗이 도와준다거북일지라도 이를 어길 수 없으니 크게 길하다六五或益之十朋之龜弗克違元吉.) 이것이 중도가 아닐까 싶다중도는 덜어내고 채우는 것이다. 서로 덜어주고 채워주는 것 또한 중도이다.

덜어낸다는 것, 증진시킨다는 것

돌이켜보건대 나는 왜 그토록 화가 나고 억울했을까? 아마 재산상으로 이익을 얻고 손해를 보기 싫어서였던 것 같다. 재물은 과거보다 더 많아야 하고 미래에는 더더욱 많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널뛰기를 하였다. 그래서 손실을 보았을 때 불행했고, 손실을 받아들이는 지혜를 몰랐다. 그렇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돈에 대한 사유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습관적으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고, 많으면 잘 사는 것처럼 느껴졌고 노후가 편안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돈은 내게 꼭 필요한 것이었을까? 그것이 없다면 내 삶은 불행해지고 선함을 행할 수 없고 인생과 우주라는 지혜를 탐구할 수 없는지 내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사실 돈을 잃지 않고 오히려 얻었다 하더라도 선을 베풀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그 일은 손실이 아니라 나의 삶에서 덜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돈으로 얻는 소비로부터 해방되어 일상의 리듬을 회복하고화폐의 왕국이 선사하는 거대한 허무에서 슬그머니 발을 빼는 것이다(고미숙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북드라망, 254)

어쩌면 그 일은 손실이 아니라 나의 삶에서 덜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나라고 왜 그 돈이 아깝지 않겠는가? 완전히 분노가 사라졌다면 그건 거짓이다. 하지만 내가 그 돈을 잃었다고 해도 내 몸과 아름다운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한국에서 돈을 잃었고 헝가리에서 우정을 얻었다. 춤을 추면서 그녀는 나의 분노를 가라앉혀 주었고 나는 그녀의 외로움을 떨구었다. 무엇이 우리를 만나게 했던가? 그것은 돈이 아니고 생명의 연결이었다. 지엽적인 것을 떨구고 본질이 만나니 서로 공명했으며 삶의 본질은 우리 것이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뿌리가 같은 영혼인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여러분, 저와 함께 더하기 빼기 춤추실래요?

댓글목록

박태홍님의 댓글

박태홍 작성일

와 선생님 글 잘읽었습니다. ㅎㅎ 글이 참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