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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후회의 도가 없는 변혁이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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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4-01-09 11:33 조회2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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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의 도가 없는 변혁이 가능한가

금 홍 섭(감이당 목요주역)

어느 소년의 죽음

“2005년 11월 경기도 의왕시에서 거주용으로 개조한 비닐하우스에서 ㄷ초등학교 3학년 권모(당시 9세, 1996년생)군이 집에서 기르는 개에게 물려 목숨을 잃었다. 권군은 외조부모가 농사일로 시골에 자주 가서 집을 비워 9살 나이에 혼자 생활하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외할머니가 준비해 놓은 음식을 먹으며 5~6일을 비닐하우스에서 혼자 지내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언론보도내용 중).

나는 의왕시에서 30년을 살아왔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일어난 그 사건을 접하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 큰 딸과 나이가 같은 소년이 끔찍하게 죽은 것이다. 지역의 어려운 아이들도 내 아이를 돌보듯 함께 돌보며 그 아이들의 굴곡진 삶을 옆에서 지켜봐주고 격려해주는 어른들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인들과 공유했다. 공동육아와 대안학교의 부모들과 생협조합원들, 뜻있는 단체와 개인들이 모였다. 어려운 아이들이 기댈 수 있는 공간, 「방과후 공부방」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곧바로 설립준비위를 구성해 지역의 취약계층 아동실태를 조사하고 자금과 봉사자를 구하는 등 1년간의 준비를 거쳐 2007년에 방과후 공부방이 출범했다. 봉사직인 운영위원회를 10여명으로 구성하고 상근교사 2명을 채용해 초등생부터 고교생까지 아이들 25명을 돌보기 시작했다.

갈등(葛藤)

나는 초창기에는 공부방 운영위에는 참여하지 않고 봉사자로 아이들과 휴일에 가까운 산을 오르면서 함께 수다 떨고 땀을 흘리고, 내려와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으며 재밌게 놀았다. 1년에 한 번 아이들에게 특별한 추억이 되는 야간산행도 이끌었다. 그러다가 2015년 생업이 바빠 맡을 처지가 아니었지만, 등떠밀려 어쩔 수 없이 대표를 맡게 되었다. 공부방 설립 때부터 참여하고 대표도 역임했으며 돈도 제일 많이 내고 봉사도 가장 열심히 하고 나를 대표로 강력하게 떠민 세 살 아래 아우뻘 되는 강모 운영위원이 있었다. 그는 나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지역일을 같이하며 15년을 만나왔다. 그의 추천으로 상근교사를 한 명 채용했는데 그녀는 기존의 오래된 상근교사와 계속 마찰을 일으켰고 결국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았다.

 

두 여자가 함께 살되 그 뜻을 얻지 못하는 것이 변혁이다”(택화혁괘 澤火革卦정이천 주역」 글항아리 972)

 

갈라섬이 곧 변혁이라니… 둘이 갈라서야 변혁이 완성된단 말인가. 고참교사는 컴퓨터와 행정실무력이 부족한 반면 친화성이 좋아 아이들에게 엄마같은 존재였고, 신입교사는 아이들과의 정서결합력은 부족하나 행정실무력이 괜찮았다. 공부방은 두 가지가 다 필요한 곳이고 서로 보완했으면 별 문제가 없었을텐데 성격까지 다르다보니 갈등이 쌓여갔다. 업무갈등과 감정갈등이 얽혀 극단까지 갔던 것이다. 갈등(葛藤)이 왜 갈등이냐면 칡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오르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아올라서 그렇다. 둘 중 하나가 고사해야 갈(葛)과 등(藤)의 싸움이 끝난다. 두 교사가 딱 그 형국이었다. 두 교사는 화이부동(和而不同)–같지 않으나 조화하여 공존한다—에 실패한 것이다.

“두 여자가 함께 살되 그 뜻을 얻지 못하는 것이 변혁이다”

또 갈등을 공식계통을 통해 해결하려 했으면 극단으로 치닫지 않았을텐데, 신입교사는 자기를 교사로 추천한 강모위원이 공부방 실세라 생각하고, 그에게 의존해 사적으로 해결하려 했고 그 강모위원은 고참교사가 문제라는 판단하에 고참교사를 압박했다. 어찌보면 두 교사의 갈등을 계기로 오래 쌓여온 공부방의 누적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강모위원은 사실상 공부방의 모든 일들을 좌지우지하며 해결사 역할을 해왔고, 이전의 대표들은 역부족이었는지 그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방치해 온 것이다.

 

우물은 그대로 두면 더러워져 못쓰게 되고 바꾸면 맑고 깨끗하게 되니 변혁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정괘(井卦)뒤에 변혁을 상징하는 혁괘(革卦)로 받았다”, “연못 속에 불이 있는 모습으로 불이 아래에 있고 물이 위에 있어 서로 취하면서 서로 극하여 서로 없애려 하므로 변혁이 된다” (택화혁괘 서괘전정이천 주역」 글항아리 970).

 

공부방을 변혁할 때가 온 것이다. 나는 대표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감사와 몇몇 운영위원으로 「화해조정위」를 구성하여 두 교사를 면담케 했다. 면담결과, 고참교사는 신입교사와 강모위원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며 사직서를 냈고, 신입교사는 자기는 잘못이 없으므로 사직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화해조정위는 두 교사를 화해시켜 근무하는 방향으로 해결하려 했으나 불가능하여 운영위에서 결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나는 비상운영위회의를 소집해 사안을 논의했다. 신입교사를 공부방에 데려온 강모위원은 고참교사의 잘못을 말하며 사직서를 수리하고 새 교사를 한명 뽑자고 강력 주장했고, 몇 몇 위원은 둘 다 근무하든지 둘 다 그만두든지 하는 게 옳은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후자의 안이 옳다고 판단했다. 장시간에 걸쳐 논의해도 의견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아, 결국 표결을 했는데 후자의 안이 다수로 가결되었다. 그런데 강모위원은 이튿날 신입교사를 비롯해 자신에게 동조하는 몇 명의 운영위원과 함께 공부방을 탈퇴해 버렸다. 그리고는 밖에서 대표인 나를 비난하며 공격했다.

합당한 변혁과 완벽한 변혁

나는 대표로써 공부방 운영위의 분열을 막고 동시에 강모위원의 행태를 바꿔보려 노력했지만 두 가지를 다 이루는 데는 실패했다.

 

세상 모든 일은 변혁하는 데에 그 합당한 도리를 얻지 못하면 도리어 폐해를 불러오므로 변혁에는 후회의 도가 있다오직 지극히 합당한 변혁이라면 변혁이전과 이후의 후회가 모두 없어진다.”(택화혁괘정이천 주역」 글항아리 973).

 

공적으론 공부방을 정상으로 돌려놓았으나 사적으론 15년을 만나며 지역 일을 함께 했던 아우를 잃었다. ‘지극히 합당한 변혁’이었다면 그를 잃지 않을 수 있었을까? ‘지극히 합당한 변혁’이란 어떤 것일까, ‘완벽한’ 변혁을 말하는 것일까? 후회가 남지 않거나 없어지는 변혁이 가능할까? 변혁은 어렵다. 그렇다고 변혁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변혁을 해야 할 때, 때를 놓치지 말고 적절하고 합당한 방법으로 후회없는 변혁을 해야 하는데 나같은 범인(凡人)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상황이 또 생기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선택은 어느 한쪽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을 버리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길은 잃어도 사람은 잃지 말라”는 말도 있다. 무엇이 옳은 건지 우매한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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