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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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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4-01-16 09:29 조회3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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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김 태 희(감이당 토요주역)

감이당에서 주역 공부를 시작한 지 만 2년이 됐다. 주역은 여전히 어렵지만 처음 주역을 접한 작년에 비하면 느낌이 달라진 건 사실이다. 예를 들면 정이천 역전이 재밌게 읽히고, 괘사와 효사는 물론 효사를 해설하는 소상전의 한자에도 이따금씩 눈길이 간다. 하지만 공부 길을 잘 가고 있는지는 여전히 걱정스럽다. 특히 글쓰기는 매번 실망스럽다. 분량 이래야 겨우 두 쪽에 불과한 짧은 글을 무려 한 달 가까운 시간을 들여 써내는데 볼 때마다 늘 부끄럽다. 뭔가 다른 시도를 해봐야겠다 고심하던 차에 복희샘께서 낯선 효에 부딪혀 보라는 조언을 주셨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초 점을 쳐 효사를 골랐다. 점을 칠 때 질문은 “앞으로 어떤 자세, 어떤 마음가짐으로 공부에 임해야 합니까?”였다. 나온 점괘는 중수감괘 상육효, 효사는 “상육효는 동아줄로 결박하여 가시 숲속에 가둔 것을 3년이 지나도 면하지 못하니 흉하다(上六, 係用徽纆 寘于叢棘 三歲不得 凶).”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글을 써야 하나 난감해서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몇 날을 그냥 보냈다. 내 비보(?)를 접한 학인들이 “상육효는 밧줄로 꽁꽁 묶어 감옥에 가두어 두니 오랫동안 흉흉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혹은 “공부 감옥에 영원히 머문다는 뜻이 아닐까요?” 등등 위로와 격려가 듬뿍 담긴 조언을 보내 주었다. 마음만 고맙게 받기로 하고 정이천 주역부터 다시 살펴보았다. ‘가시감옥(叢棘)’에 갇힌 이유를 상육효의 상전에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음유한 자질로 매우 위험한 곳에 자처(自處)했으니 도를 잃은 것이다(정이천,『주역』, 611쪽).” 뜻을 새겨 보니 난 자질이 부족하여 뭔지도 모르는 ‘공부의 도’를 잃어버리고 언제 나갈지 모르는 가시 감옥이라는 극한의 위험에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는 것이다. ‘공부의 도’를 몰랐다고 하소연할 수도 없고, 3년이 됐든 30년이 됐든 감옥에 그저 갇혀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니 벗어날 길을 찾아야 했다. 내가 잃어버린 ‘공부의 도’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다가 공부의 도를 잃어버렸는지 알아내야 감옥을 탈출할 방법도 찾아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막상 공부의 도를 알아본다고 생각하니 막연했다. 그래서 우선 중수감괘로부터 공부의 도를 더듬어 보기로 했다. 중수감괘의 ‘坎’은 위험을 뜻하지만 또한 물을 뜻하기도 한다. 대상전을 해설하면서 정이천은 ‘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물은(…) 계속 거듭해서 흐르지, 급작스럽게 이르지는 않는다. 그것은 地勢에 따라서 아래로 내려가기를 믿음직스럽고 일정하게 지속하므로(정이천,『주역』, 599쪽)”라고 한다. 물의 흐름이 믿음직스럽다니 무슨 말일까? 물은 깊은 계곡을 만나면 빨리 흐르다가 넓은 평야를 만나면 천천히 흐른다. 움푹 팬 웅덩이를 만나면 흐름을 멈출 수밖에 없지만 이내 웅덩이는 채워지고 물은 웅덩이를 넘어 다시 흐른다. 흐르는 모양은 다르지만 흐름을 멈추지는 않는다. 심지어 바다에서도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물은 흐른다. 물이 믿음직스러운 이유는 도중에 어떤 곤란이 있어도 이를 넘어서 끊임없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 믿음직스러운 흐름이 물의 도이다. 그런데, 공부의 도 또한 그렇지 않은가? 난 늙고 병들고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삶의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 특히 죽음을 건너는 지혜를 얻는 게 공부의 목적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그 지혜에 이르는 공부 길은 한결같지 않다. 마치 물의 흐름처럼 처한 때와 상황에 따라 공부의 깊이나 넓이, 그리고 빠르기가 달라질 수 있고, 물길에 놓인 구덩이처럼 공부를 가로막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의 목적인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공부는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대상전에도 쉼 없이 계속되어야 하는 공부 이야기가 나온다.

물이 믿음직스러운 이유는 도중에 어떤 곤란이 있어도 이를 넘어서 끊임없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 믿음직스러운 흐름이 물의 도이다. 그런데, 공부의 도 또한 그렇지 않은가?

“常德行習敎事”. 군자는 쉬지 않고 덕을 쌓고 반복되는 가르침을 통해 축적된 덕과 지혜를 나눈다. 대상전에서 가르치는 군자의 공부방법이다. 호원은 중수감괘 괘사와 효사에서 ‘반복’의 의미로 ‘習’이라는 한자를 쓴 이유를 공부(習)를 통해 반복되는 위험(習坎)을 벗어나라는 가르침으로 풀었다. 한편, ‘習’자를 破字하면 ‘어린 새(白) + 날개(羽)”다. 어린 새(白)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 순간까지 쉬지 않고 시도하는 날갯짓(羽), 그것이 習, 즉 공부다. 이렇게 쉬지 않고 흐르는 물의 도는 깨달음의 그 순간까지 중단없이 정진하는 공부의 도와 통한다.

공부의 도가 물의 도처럼 쉼 없이 지속하는 것이라면, 점괘가 의미하는 위험은 쉼 없이 지속되어야 할 공부가 중단될 위험이다. 그리고 ‘자처’한다고 했으니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공부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공부 길을 좌초시키는 암초는 과연 무엇일까?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비교습관과 인정욕구? 제 깜냥도 모르고 빨리 공부의 성과를 얻고자 하는 조바심? 주역 공부를 한다면서 부동산과 주식에 대한 곁눈질을 멈추지 않는 물욕? 주변과 세계로 넓어지지 않고 여전히 내 자신에만 머무르는 관점의 협소함? 생각해 보니 정말 문제가 많았다. 아무리 공부 초짜지만 지금 내가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모습이 하나둘이 아니다. 하나하나가 감옥에 집어넣는다고 과연 고쳐질까 싶은 엄청난 ‘습’들이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자료를 찾는답시고 이런 저런 유튜브 강좌를 두리번거리다가 또 다른 나의 문제를 지적하는 해석을 만났다. “(상육효에서) 동아줄로 묶어 가시덤불에 둔다는 것은 힘든 상황을 견디기 위해서 스스로를 유폐시킨다는 뜻이다(…) 스스로를 가두고 단절시키는 방법은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지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 주역의 가르침이다. 어려운 상황을 만났다고 마음의 감옥에 자신을 가두지 마라(유투브채널 광장인, 주역강의(중수감)).” 이 해석에 따르면 공부의 도를 상실하는 이유는 힘든 상황, 문제 상황을 솔직하고 용기 있게 마주하지 않고 회피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스스로를 그냥 그 상황에 주저앉히고, 자신의 마음속에 ‘헤어나기 어려운 감옥’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불현듯 내가 가진 ‘공부에 대한 두려움’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에 대한 두려움의 예를 들면 감이당의 비전에 나오는 유목, 출가, 혁명, 수련 이런 단어들에 대한 내 느낌이 그렇다. 내가 공부하겠다고 스스로 찾아온 공동체이니 그 공동체가 추구하는 비전을 이해하고 실천하려고 해야 하는데 선뜻 그러지 못하고 있다. 감이당의 비전을 내 삶의 문제로 끌어안기에 고작 2년에 불과한 배움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움의 부족 말고도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은퇴자로서 누리고 있는 일상의 안락함과 평온함이 공부로 인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이런 공부에 대한 두려움이 내 공부 길의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미나나 모임 자리에서는 생과 사의 문제를 열심히 떠들면서도 정작 감이당의 비전에 적극적으로 접속하기를 머뭇거린다면, 나의 공부는 어디를 향할까?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공부는 흐르기를 멈춘 물과 다름없지 않은가? 내가 스스로를 변호하며 용인하고 있는 ‘공부의 두려움’이 바로 자신을 가둬 두고 있는 ‘마음의 감옥’이 아닐까? 공부 길을 가로막는 내 안의 문제가 뭘까 생각하자마자 거침없이 줄줄이 엮여 나오던 내 삶의 나쁜 ‘습’들이 여전히 나의 삶에 건재하고 있는 것, 그리고 나아질 기미가 없는 글쓰기의 문제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12월 2일, 올해 마지막 주역공부시간, 뇌풍항괘와 지풍승괘 공부를 마치면서 담임 선생님은 괘의 마지막 효인 상효의 ‘흉’은 다른 국면으로 빨리 전환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의미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당부하셨다. “(뇌풍항괘의) 항상심을 가지고 (지풍승괘와 같이) 상승을 추구하라.” 이건 마치 중수감괘 육효가 담임 선생님에 빙의해 나를 호되게 질책하는 것 같았다. 늦기 전에 두려움에서 빨리 빠져나오라고. 머뭇거리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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