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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빈복(頻復), 중요한 건 공부를 향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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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4-01-22 11:58 조회402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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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복(頻復), 중요한 건 공부를 향한 마음

한 성 준(감이당 토요 주역)

이렇게 지독한 감기는 처음이었다. 2주 동안 고열부터 시작해서, 막힌 코와 가래, 누우면 나오는 기침 때문에 잠은 잠대로 못 자고 육아와 집안일, 학원 일을 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며 하루하루 겨우 살았다. 그렇게 아프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매일 애들 키우고 일하며 사는 것도 빠듯한데, 힘들게 공부까지 해야 하나? 나도 남들처럼 애들 좀 키우고 여유가 될 때 공부해야 하는 데 내가 괜한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가?’ 그전까지 내년에도 당연히 주역을 공부하며 다시 64괘 외우기에 도전하려고 했는데 이 공부를 또 할 수 있을지 두려워졌다. 잠시 공부를 멈춰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불쑥 들었다.

감이당에서 공부했던 10년 동안 이런 마음이 들었던 적이 종종 있었고, 실제로 감이당을 나가서 공부를 쉬었던 적도 여러 번 있다. 지뢰 복괘 삼효에서 말하는 ‘빈복(頻復)’이란 단어처럼 나는 여러 번 나갔다 돌아왔다. 공부를 그만두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몰입해서 하지도 못하며 어정쩡하게 이렇게 있어도 될까?

빈복의 역사

군 제대 후 어머니의 폐암 소식으로 방황하던 나는 우연히 곰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거기서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지금의 시간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는 시선의 전환이 일어난 후 아픈 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곰샘과의 인연으로 감이당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생전 처음 보는 책을 읽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만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삶과 사건을 통해 모두 각자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배운 후 ‘왜 이렇게 내 인생은 고달프냐’하는 생각이 깨졌고 나의 삶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학교와 감이당 공부, 알바까지 하기에는 너무 버거웠고 취업 걱정까지 되었다. 그래서 일단 대학 졸업은 하자는 생각으로 감이당을 그만두고 대학으로 돌아갔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웠던 나는 대학교 4학년이 되어 취업을 준비했다. 프로그래밍이 재미는 있었지만 과제를 할 때마다 뒷목이 너무 아팠다. 이걸로 평생 밥 벌어먹고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이 들 때 대학교 주변에서 곰샘 강의가 있어서 들으러 갔다. 거기서 선생님이 “너 왜 이렇게 좀비가 되었냐?”는 말에 내 마음이 흔들렸다. 그 뒤 취업할 것인가, 감이당에서 생활하며 공부를 해 볼 것인가 갈등했다. 결국 취직 대신 다른 삶에 대한 기대를 안고 감이당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몇 년을 공부하다가 아내와 결혼하고 첫째를 가졌을 때부터 ‘이렇게 살아서 한 가정을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다 다시 한번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장자스쿨이라는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장자스쿨은 감이당에서 오래된 멤버들을 모아 곰샘이 직접 각자의 책을 쓰도록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성공한 몇몇 도반들도 있었지만 많은 도반들이 힘들어했고 그만두었다. 나 역시 첫째를 키우며 겨우겨우 해나가다 공부의 강도를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학원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바빠지기 시작했고 세미나로 이어가던 공부도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연구실에서 공부하지 않으면 좀 여유가 생겨서 혼자 읽고 싶었던 책도 보며 시간을 보낼 줄 알았지만 잘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연구실 사람들과 공부가 그리워졌고 둘째가 태어나는 올해 겁도 없이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사실 주역은 했던 공부이기도 하고, 그 힘들었던 장자스쿨을 겪었기에 둘째가 있어도 충분히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공부의 리듬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둘째가 태어나서 거기에 적응하느라 고생이었고, 갑작스럽게 장모님의 유방암 진단으로 정신이 없었다. 4학기에는 독감까지 덮치며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다.

마음을 놓지 않는다면 허물은 없다

이렇게 나는 빈복 해왔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다행히도 주역에서는 자주 회복하는 것을 나쁘다 말하지 않고 다만 ‘위태로우나 허물은 없다(厲, 无咎)’라 한다. 왜 주역에서는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나쁘다고 말하지 않을까?

지뢰 복은 아래가 중뢰 진, 위가 중지 곤이다. 초구 효만 양효이고 나머지는 다 음효이다. 음효가 상징하는 소인이 득실대던 시대에서 양효 하나가 나타나 이제 군자의 시대로 회복하는 때이기에 이 괘를 돌아옴을 뜻하는 복괘라 말한다. 초효는 홀로 있는 양효로 군자이다. 그는 멀리 가지 않고 회복하여, 후회에 이르지 않고 크게 길하다. 그에 비하여 빈복의 주인공인 삼효는 진괘의 끝에 자리하여 잘 동요하는 자다. 거기다 우유부단한 음효이며, 양의 자리에 있어 올바르지도 않고, 중(中)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그의 성향은 현명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자인데 자리마저 불안정하다.

그는 조금만 상황이 안 좋아지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뛰쳐나간다. 하지만 그런 조건 속에서도 그는 군자가 되기 위해서 계속해서 마음을 다잡고 돌아오기에 주역에서는 그의 흔들림을 허물하지도 탓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건 흔들리는 마음이 아니라 돌아오려고 노력하는 그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다만 계속 흔들리며 가는 돌아옴은 끝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위태롭다. 그런데 삼효는 왜 그렇게 흔들리면서도 계속해서 돌아오려고 노력하는 것일까?

그는 회복의 때를 만나서 군자인 초효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군자의 도를 경험했다. 통쾌함과 충만함이 가득했던 그 경험은 그를 계속 다시 돌아오게 만든다. 그것이 자기의 삶에 그 무엇보다도 즐겁고 좋은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가 위태로운 조건 속에서도 도를 향한 마음을 놓지 않는다면 좀 더디고, 헤매고, 우왕좌왕할지라도, 반복해서 돌아오기에 허물은 없다.

나도 현실적인 조건들에 의해서 공부를 쉬고 싶다고 여긴 적은 있어도, 공부를 그만두고 싶던 적은 없었다. 체력이 부족하면 운동을 해서 체력을 키워 나갔고, 시간이 부족하면 내가 즐겨 하던 것들을 줄여가면서 조금이라도 더 확보해 나갔다. 예전보다 내 몸과 마음, 일상은 더 건강해졌다. 감이당에서의 공부는 돈이 좀 없어도, 직장이 안정적이지 않아도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고, 내가 하루하루 나아지는 것을 느끼면 덜 불안해하고, 덜 욕심내며, 덜 괴로워하며 살아갈 힘이 된다. 지금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어서 공부를 쉰다고 해도 더 좋은 일상을 꾸려갈 것 같지 않다. 올해도 정신없이 공부했지만 매주 토요일에 주역 공부를 하러 와서 나의 일상 문제들을 주역의 시선으로 다르게 보며 해결해 나갈 수 있었고, 매주 읽고 쓰고 외우는 시간들은 나의 일상에 중심을 잡아주고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이 공부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현실적인 조건이 여유롭지 않아 조금 위태롭더라도 지금처럼 하루하루 나아지는 나를 지켜보며 내 공부를 해나갈 것이다.

그는 회복의 때를 만나서 군자인 초효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군자의 도를 경험했다. 통쾌함과 충만함이 가득했던 그 경험은 그를 계속 다시 돌아오게 만든다.
댓글목록

전인선님의 댓글

전인선 작성일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쩌~기 전남 담양에서 그림의 떡인 감이당을 기웃거리기만 하는 사람으로 일과 육아를 핑계로 공부를 할 수 없는 제 환경을 한탄만 하고 있었지요. 오늘 문득 "나도 공부하고 싶다" 하고 여느때처럼 감이당에 들렀는데 첫 클릭에 성준샘의 에세이와 접속했습니다. 제 고민에 대한 답이 바로 여기 있었네요. 두 아이 양육에 일까지 하며 공부의 끈을 놓지 않는 성준샘의 이야기를 듣고 정신이 차려졌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여민님의 댓글

이여민 작성일

장자에서 같이 공부했던 깡마른 성준샘을 보면 항상 건강이 신경쓰였어요. 호호
그런데 이 글을 읽으니 공부와 삶이 어울려 점점 '건강'해지는 성준샘을 만날수 있네요.
수희찬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