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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 3] 뇌산소과, 과도했기에 길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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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4-02-13 11:30 조회21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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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산소과, 과도했기에 길을 찾았다

줄 자(글공방 나루)

 雷山小過(뇌산소과)

小過, 亨, 利貞, 可小事, 不可大事, 飛鳥遺之音, 不宜上, 宜下, 大吉.

소과, 형, 리정, 가소사, 불가대사, 비조유지음, 불의상, 의하, 대길

소과괘는 형통하니 올바름을 굳게 지키는 것이 이롭다. 작은 일은 할 수 있지만 큰일은 할 수 없다.

날아가는 새가 소리를 남기는 것이니 위로 올라가면 마땅치 않고 아래로 향하면 마땅하니 크게 길하다.

 

初六, 飛鳥, 以凶.

초육, 비조, 이흉.

초육효, 날아가는 새이니 흉하다.

 

六二, 過其祖, 遇其妣, 不及其君, 遇其臣, 无咎.

육이, 과기조, 우기비, 불급기군 우기신, 무구.

육이효, 할아버지를 지나치고 할머니를 만나는 것이니,

군주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고 신하의 도리에 합당하다면 허물이 없으리라.

 

九三弗過防之從或戕之.

구삼불과방지종혹장지.

구삼효지나칠 정도로 방비하지 않으면 이어서 해칠 수 있으므로 흉하다.

 

九四, 无咎, 弗過遇之, 往厲必戒, 勿用永貞.

구사, 무구, 불과우지, 왕려필계, 물용영정.

구사효, 허물이 없으니 과도하지 않아 적당한 것이다. 그대로 나아가면 위태로우니 반드시 경계해야 하며,

오래도록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六五, 密雲不雨, 自我西郊, 公, 弋取彼在穴.

육오, 밀운불우, 자아서교, 공, 익취피재혈.

육오효, 구름이 빽빽하지만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은 내가 서쪽 교외로부터 왔기 때문이니,

육오의 군주가 저 구멍에 있는 육이를 쏘아서 잡는다.

 

上六, 弗遇過之, 飛鳥離之, 凶, 是謂災眚.

상육, 불우과지, 비조리지, 흉, 시위재생.

상육효, 적합하지 않아 과도하니, 날아가는 새가 빨리 떠나가는 것이라 흉하다.

이것을 일러 하늘이 내린 재앙과 인간이 자초한 화라고 한다.

 

 
 

나는 공부하는 백수다. 지난 십 년 동안 공부하는 삶을 살면서 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그 글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만큼 썼으니 난 이제 글쓰기가 좀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십 년 전도 지금도, 글쓰기는 내게 매우 큰 산이다. 얼마큼 더 수련해야 나는 글쓰기라는 산을 여유롭게 올라갈 수 있을까?

글쓰기가 힘들다고 여기고 있을 때, 나는 주역의 소과(小過)괘를 공부하게 되었다. 소과괘에 따르면 난 지금까지의 글쓰기 방식에서 벗어나야 했다. 나는 글쓰기가 왜 그리 힘든지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글쓰기라는 산에 올라가겠다며 난 그동안 길이 아닌 곳을 헤매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잘못된 방식으로 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주역』은 우리 삶에 과도하게 행동해야 하는 때가 있음을 두 괘를 통해서 말해준다. 택풍대과(澤風大過)괘는 많이 지나치게 행동하거나 큰일, 중대한 일에 있어서 과도하게 행하는 때를 말한다. 뇌산소과(雷山小過)괘는 조금만 지나치게 행동하거나, 작은 일, 사소한 일에 있어서 과도하게 행하는 때에 관한 이야기다.

뭔가 이상하다. 『주역』의 핵심은 중도(中道)를 찾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과하게 행동하라니. 얼핏 보면 중도와 과함은 반대되는 말 같다. 보통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기 위해 과도해지면서 우리는 중도에서 멀어진다. 반면 자신을 바로잡고자 할 때, 조금 노력하는 것으로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우리는 과도하게 힘을 써 자신을 적중함으로 이끌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이러한 과함이다. 소과괘의 「대상전」은 “재물을 사용함에 있어 검소함을 과도”하게 하라고 한다. 일상에서 우리는 종종 중도에서 벗어나 돈을 쓰게 된다. 그럴 때 돈 관리를 하지 못한 자신을 보지 않으면서 오히려 돈을 호탕하게 사용했다고 합리화할 수 있다. 그래서 주역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과도하게 힘을 쓰며 검소해지라고 한다.

나의 일상에는 과도하게 힘을 써 바로잡아야 할 일들이 매우 많다. 적중함에서 벗어나 있는 내 글쓰기도 과도함이 필요한 부분이다. ‘작은(小) 일에서 과함(過)을 행하라’는 조언은 글쓰기에서 내가 간과하던 부분을 과도하게 바로잡으라고 한다.

뇌산소과(雷山小過)를 살펴보자. 상체는 우레(雷), 하체는 산(山)으로 구성된 소과괘는 산 위에서 울리는 우레를 나타낸다. 같은 크기의 우레가 하나는 들판에서 울리고, 다른 하나는 산 위에서 울린다고 가정해 보자. 들판에서 울린 우레는 분산되어 우리에게 걱정이나 놀라움을 일으키지 않는다. 반면 산 위에서 울리면 그 소리는 산 계곡에 반사되며 더 커진다. 산속에서 울리는 우레에 우리는 두려워질 것이다. 작은 우레가 산속에서는 큰 소리로 들리듯 내게 작다고 여겨지는 것이 더 크게 다가와야 하는 시기가 소과괘가 말해주는 때이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글을 쓰며 내가 작은 것, 사소한 것이라고 여기는 부분을 생각해보았다.

들판에서 울린 우레는 분산되어 우리에게 걱정이나 놀라움을 일으키지 않는다. 반면 산 위에서 울리면 그 소리는 산 계곡에 반사되며 더 커진다.

그러나 글쓰기에서 내가 사소하다고 여긴 것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만큼 의식도 못 할 정도로 무시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난 반대로 내가 글을 쓰며 무엇을 중시하는지를 생각해보았다. 내게 글쓰기의 핵심은 글의 내용이었다. 내 글은 나와 텍스트의 만남을 보여준다. 글에는 내가 텍스트에서 배운 것과 텍스트가 내 삶에 어떻게 작동되는지가 담겨있다. 나는 내 공부가 담긴 글에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길 바랐다. 그렇기에 글을 쓸 때 나는 텍스트를 더 잘 이해하려 했고, 내가 깨닫게 된 바를 더 많이 이야기하려 했다.

여기에 집중하다 보니, 글에 있는 오탈자나 비문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글을 사람들 앞에 내놓을 때면 나는 조금 창피하긴 했다. 하지만 난 내가 전하고 싶은 내용이 글에 있으면 이런 것쯤은 넘어가도 된다고 생각했다. 잘못 나눈 문단이나 내용과 맞지 않은 소제목은 조그마한 실수였다. 또한 글에는 내 뜻을 잘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 위에서 나온 어색한 문장도 있었다. 나는 내 글에서 형식이 잘못된 것을 모두 사소한 실수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 내가 글에서 사소하다고 여긴 지점은 이것이었다. 난 글의 ‘형식’을 놓쳐도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동안 내용에 집중해 썼던 내 글이 받은 코멘트는 다음과 같다. 문장과 문장 사이가 비었다. 한 문단에 주제가 없고 대신 정리되지 않은 내용이 많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정확하게 풀어지지 않았다. 머릿속 생각을 그냥 쏟아낸 것 같다 등등. 난 글의 내용을 채워 넣고 수정하면서 이 코멘트를 반영했다.

형식을 무시하고 있음을 깨닫자 이 코멘트는 내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문장과 문장 사이가 비었다는 말은 그곳에 단지 내용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하나의 글에서 문장들은 흐름을 갖는다. 그것은 내용의 흐름이기도 하고 형식의 흐름이기도 하다. 한 문장 다음에는 그 문장이 만든 리듬에 맞춰 흘러나오는 문장이 있다. 음악에서 음들이 서로를 따라 나올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음악에서 음 하나가 내용이며 형식이 되듯, 글에서 문장도 그러하다.

다른 코멘트도 이처럼 형식을 고려하지 않고는 수정할 수 없는 조언이었다. 한 문단의 주제란, 그 문단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며 동시에 형식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요소가 아니던가. 이렇듯 내용과 형식이 긴밀하게 엮이며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글이다. 그러나 난 내용과 형식을 분리했다. 나아가 내용만 있으면 형식쯤은 틀려도 된다고 여겼다.

이 확신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나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 종이 위로 옮겨지면 그것이 글이 된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런데 과연 나에게 생각이라는 것이 따로 있을까. 글을 쓰기 전에 나는 책을 읽고 며칠 동안 이렇게 저렇게 고민했다. 그러다 보면 이 내용을 여기다 쓰고 저 내용은 저기다 쓰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 생각을 있는 그대로 문자로 옮기면 그것은 횡설수설이 되어있었다. 그 글(?)을 보며 나는 답답해지고 막막해졌다. 이러한 글쓰기는 나를 매우 힘들게 했다.

내용만을 중요시하던 자신을 보게 되자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내 머릿속에 있던 것이 ‘생각’이 아니라면? 그것이 단지 ‘~인 것 같은 느낌적인 어떤 것’이라면? 그러고 보니 그나마 소통이 되었다고 코멘트 받았던 글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 글들은 여러 번의 피드백과 그만큼의 수정을 거친 후에야 완성되었다. 뭉게구름 같던 내 생각은 글을 고쳐 쓰는 과정에서 구체성을 갖게 되었다. 머릿속에 있던 다양한 파편들은 문장이라는 형식을 통해 여러 번 조직되었다 해체되면서 ‘내용’이 되었다. 형식을 갖추지 않은 내용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난 형식을 무시하고 있었다.

소과괘는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무시하며 안 보고 있던 지점을 보라고 했다. 그곳이 바로 내가 과도하게 힘을 써야 할 곳이었다. 특히 소과괘의 삼효는 내 글쓰기를 방치하면 어떤 위험이 따르게 될지 알려주었다.

 

소과괘는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무시하며 안 보고 있던 지점을 보라고 했다. 그곳이 바로 내가 과도하게 힘을 써야 할 곳이었다.

구삼효는 이렇게 말한다. “과도하게 방비하지 않으면 어떤 이가 뒤에서 다가와 공격할 수 있다. 흉하다.(九三, 弗過防之, 從或戕之, 凶. 불과방지, 종혹장지, 흉)” 여기서 과도하게 방비해야 할 대상은 내가 사소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것을 계속 무시하면 내가 해를 입을 수 있다고 이 효는 경고해준다. 그 흉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나는 빨리 내 글쓰기 방식을 바꾸고 싶었다.

글을 ‘과도하게’ 방비하고자 난 글에 ‘내용만 들어가면 된다’는 생각을 완전히(과도하게) 버리려 노력했다. 이 글을 쓰며 나는 글자와 문장에 집중하고 있다. 한 문장을 쓰고 질문을 던진다. 문장성분은 모두 있나? 글을 얼버무리기 위해 대명사를 쓰지는 않았나? 이 문장 다음에는 어떤 문장이 나와야 하는가? 이전이라면 5시간 정도 걸려 쓸 분량을 닷새 넘게 쓰고, 읽고, 고민한다. 난 과도하게 문장에 집중하며 글을 쓰고 있다.

과도하게 글을 쓰지 않으면(弗過防之) 뒤에서 다가와(從) 상해(戕)을 당할 수 있다(或)는 말에 내가 너무 걱정한다고? 글을 좀 못 썼다고 설마 상해를 입겠냐고?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글을 쓰는 것은 내 공부의 큰 부분이다. 글을 쓰지 않으면 책을 읽고 그것을 이해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반면, 글쓰기는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려주고, 어느 부분을 제대로 이해 못 하는지 드러낸다. 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을 모아 생각으로 만들어 삶에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이 바로 글이다. 그 글을 기반으로 나는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은 물론, 내가 만나지 못한 사람들과도 나의 공부를 나눌 수 있다.

적중한 글쓰기가 없으면 내 공부는 나의 머릿속처럼 허공에서 떠 있게 된다. 뿌리 내리지 못한 공부는 결국 나를 허무에 빠뜨릴 것 같다. 무언가는 한 것 같은데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느낌. 책을 읽고 이해한 것 같은데, 그것이 삶과는 괴리된 느낌. 이런 상태는 나에게 엄청난 상해이다.

일반적으로 주역의 삼효는 하체의 끝자리에 있는 자로서 상체로 도약하고자 한다. 소과괘에서 이 마음이 저 높은 곳에 도달하기만을 바라며 자신이 사소하다 여긴 것에 집중하지 않으면 결국 흉하게 된다. 반대로 작은 것을 지나치게 방비한다면 삼효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양강한 자리에 있는 양강한 성향의 구삼효. 그의 힘센 기운을 나의 글쓰기를 과도하게 방비하는데 써야겠다.

등산을 좋아하는 내 친구는 종종 그런 말을 한다. 등산은 매번 힘들다고. 그런데 위를 보면서 가는 산타기는 더더욱 어렵다고. 대신 지금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면 어느새 산을 잘 타고 내려온다고. 친구는 나에게 글쓰기도 이와 같다고 말해주었다. 이전에는 그렇구나 했는데, 지금 한 문장, 한 문장씩 글을 만들어가며 난 친구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등산이나 글쓰기를 여유롭게 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 단지 한 걸음씩 길을 나아갈 뿐이다. 그 힘듦 속에서 우리는 매번 산을 다르게 만나고, 매번 텍스트와 새롭게 하나가 된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풍성해진다. 이제 나는 자신 있게 말하겠다. 힘들고 괴롭지만 나는 등산도 좋고, 글쓰기도 좋다. 앞으로 계속하고 싶다.

댓글목록

개심님의 댓글

개심 작성일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글쓰기를 할 때 자칫 소홀하기 쉬운 형식적 측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