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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더 넓은 짝짓기의 세계로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9-09-11 11:10
조회 : 130  
김석영 (청년 스페셜)

어린 시절, 나에겐 크고 은밀한 즐거움이 있었다. 그건 ‘패션잡지’를 보는 것이었다. 10살 무렵부터 였을까. 사촌언니의 집에 가면 패션잡지가 눈에 들어왔다. 매 번 설레는 맘으로 집어들던 그 책들은 10대 초반의 나에게 아주 강렬한 자극을 주었다. ‘여성인권’이 진보했다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노골적인 언어로, 20년 전의 패션잡지는 내게 ‘성’에 대해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어떻게 매력적인 여자가 될 것인가’, ‘어떻게 남자를 유혹할 것인가’등을!

꼬마가 그런 걸 어따 쓰나 싶겠지만, 이것들이 단순한 ‘볼거리’로 그치진 않았다. 10대 초반부터 배워온 잡 지식들이 내가 20대에 들어서며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남다른 호기심과 열정에, 오랜 세월 잡지책을 통해 뼛속까지 새겨진 스킬들이 더해져 나는 수월하게 성을 향유할 수 있게 된 거다. 남자들을 꼬시는 것, 연애, 스킨십,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있는 여자’로 인식되는 것. 이 짜릿함! 책에서 그랬듯 실전에서도, 성은 내게 설레고 벅차고 즐거웠다.

하지만! 여기에는 늘 풀리지 않는 갑갑함이 함께했다. 우리의 성은 ‘암컷과 수컷의 만남’이다. 여자인 나는 남자와 만나기 위해 여자로서의 노력을 한다. 외모를 가꾸고, 남자들을 끌어당기는 순진하고 고분고분한 태도를 담지 하는 등, 교묘한 노력을! 하지만 이상한 것은 노력을 하면 할수록 나는 나약해진다는 것이다. 열심히 살수록 더더욱 나를 예뻐해 줄 사람이, 기댈 사람이 필요해지는 아이러니. 그 길을 계속 가는 건, 자기학대에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성을 포기할 순 없었다. 나는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페미니즘을 공부해보기도 하고, ‘여성성’을 지우며 ‘남자처럼’되어보려 하기도 하고, ‘강인한 여성상’을 그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길은 없었다. 남녀의 성을 향유하려면 결국에는. ‘매력 있는 여자’가 되어야 했다. 그러니 성은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론 나를 갉아먹는 ‘나쁜 것’이었다. 성을 누리려면 나는 나약해질 수밖에 없을까? 강해지기 위해서는, ‘성적 즐거움’을 조금쯤은 포기해야 하는 걸까?

고민들을 풀지 못해 외면하고 살다가, 『안티-오이디푸스』를 만났다. 짝짓기, 접속, 끌어당김 ! ‘성’에 훅훅 직접 들어가는 책이라니. 처음엔 반가웠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거부감이 울컥울컥 올라왔다. 이 책은 자꾸만 뭔가를 건드렸다. 아니, 뭔가를 송두리째 잡고 흔들었다. 나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뒤섞여 단단히 뿌리내린 전제, ‘나는 여자’라는 전제를!

내가 남자라도 될 수 있다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안티-오이디푸스』의 ‘성’은 암컷과 수컷으로 이루어진, ‘두 성별의 세계’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우리가 남자 또는 여자로 규정되는 것은 결과론적인 것이다. 남자 혹은 여자로 정의 내려지기 이전에, 우리 안에는 수많은 남자들이, 또 수많은 여자들이. 남성과 여성 사이의 넓~은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그 양 끝에 ‘남과 여’를 뒀지만, 그마저도 ‘인간적’이다. 사실 그 사이에는 ‘암’과 ‘수’로 범주화할 수 없는 ‘성’들이 있다. 호흡-기계, 먹는-기계, 보는-기계 등 무궁무진한 접속하는-기계들.

그렇게 우리들은 n개의 성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이다. ‘성’은 단지 ‘암컷과 수컷의 교미’뿐만이 아니다. 성은 모든 짝짓기다. 타자들, 서로 다른 흐름들이 만나는 모든 것이다. 모든 것들은 다양한 방식들로 매력을 뿜어낸다. 서로를 끌어당기고, 밀쳐내고, 긴장도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성이고, 그 모든 곳에 성적 쾌감이 있다.

나는 더 이상 나의 성욕을 ‘여자가 되고픈 욕망’따위에 욱여넣을 필요가 없어졌다. 성을 ‘즐겁지만 나를 나약하게 하는 것’이라며 미워하며 한탄할 필요도 없어졌다. 나를 오도 가도 못하게 하던 두 질문, “어떻게 성적 즐거움을 누릴까?”라는 질문과 “어떻게 여성이 될까?”라는 질문을 이 책이 스윽- 분리시켜주었기 때문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여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적 쾌감을 누리는 것’이었다.

나는 보다 경쾌하게, 새로이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성적 즐거움을 누릴까?”. 어떻게 여성과 남성, 인간의 성을 뛰어넘는, 수천수만의 짝짓기의 세계로 나아갈까?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n개의 짝짓기에, 내 몸을 흐르는 긴장도에 귀 기울여 본다. 다시 설레고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안티-오이디푸스』와 함께, 우리의 성적 즐거움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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