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e.basic
커뮤니티
양력 2019/10/18 금요일
음력 2019/9/20
사진방
MVQ글소식
홈 > 커뮤니티>MVQ글소식

[나는 왜?]사심을 내려놓으면 열리는 길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9-09-15 11:41
조회 : 138  
이윤하(남산강학원, 청년 스페셜)

어느 때부턴가 혼자 쓰는 공책에 이런 이야기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오늘 걔가 나한테 무슨 말을 하는데 날이 서있더라,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걔네끼리 놀러 갔더라, 아까 걔 표정이 안 좋던데 내가 뭘 잘못했던 걸까…. 주로 내가 친구들에게 실망하고 마음 상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친구들한테는 직접 말할 수 없었고, 혼자서 글로 끄적거리거나 울면서 감정을 정리했다.

혼자 글을 쓰면서 나는 속으로 사람들과의 거리를 조정한다. 너와 친해지고 싶었지만 네가 그렇다면 지금은 때가 아닌가 보지. 내가 마음이 상한 건 다른 게 아니라 내 욕심 때문인 거고, 사실 우린 이 정도 사이였던 거야! 하면서 말이다. 나에게 사람들과 같이 산다는 것은 이런 식으로 나 스스로와 엎치락뒤치락 하는 일에 다름 아니었다.

그 사람들이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일 때에도 나는 꿋꿋이 선을 긋고, 뒤로 물러서면서 살아왔고, 말할 수 없는 섭섭한 감정들만 속에 뭉쳐놓았다. 양명의 『전습록』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을 이렇게 살았을지 모른다. 그렇게 몇 십 년(?) 살다가 화병이나 울증으로 죽었을지 모른다!

woman-1958723_1920

『전습록』은 콱 막혀있는 마음을 시원하게, 확 트이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아니 그렇게 시원하고 확 트인 마음이,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옳고 그른지 아는 명쾌한 마음, ‘양지’를 갖고 있다고. 그것은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하면 달려가 붙잡게 되는 것처럼, 배우지 않아도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우리 마음이 본래 그러하다면, 어째서 우리에게는 명쾌하지 않은 순간들이 종종 생기는 걸까? 양명에 따르면 그것은 양지가 ‘사심(私心)’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사사로운 욕심에 본래의 마음이 가려져, 막상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정도의 큰일이 아니면 양지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이 경우에 사심은 스스로에게 옳은 일을 하기보다 다른 것을 얻으려는 마음이다. 이를테면 우물로 기어가고 있는 아이를 봤는데도, 신경 써주기가 번거로워서 못 본 척 딴 길로 피해 가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사심을 쓰게 되면, 우리는 스스로 찜찜하고 떳떳하지 못해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래도 되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질문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것이 양지가 보내는 사심 신호다.

내가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열심히 선을 긋고 지우고 또 긋고를 반복하면서 혼자 잔뜩 화가 나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사심 때문이었다. 나는 오히려 매번 내가 사람들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잘 정리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것은 이 관계에 더 이상 힘을 쏟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선언과 같았다. 나는 더 상처받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렇게 된 건 내 잘못이 아니라 네 잘못이라고! 나는 상처받지 않을 것이고, 결백할 것이라는 사심. 이 사심에 가려서 나는 스스로도 답답하게, 관계도 막히게 만들어왔던 셈이다.

girl-850117_1920

사사로운 마음이 없었다면 나는 적어도 ‘나한테 화났냐,’ 아니면 ‘무슨 일 있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서부터 상대방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것이고, 나는 내 공책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상대를 어떻게 다르게 대해볼 것인가를 강구해 볼 수도, 거리가 아니라 방식을 조정해볼 수도 있었다. 사심을 하나 들어서 치우면, 내 마음이 보지 못하고 있던 길이 새로 열린다. 내 양지가 가고 싶었고, 마음에 찝찝함이 남지 않는 길이.

나는 늘 내가 상처받았다고 말해왔지만, 눈을 돌려보면 나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다른 행동을 해왔을까. 이젠 내가 실망한 것을 붙잡고 앓고 있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내 양지가 바라는 것이라고 느낀다. 『전습록』을 읽는다는 것은, 사심을 ‘한 푼’ 덜고, 양지를 ‘한 푼’ 회복하는 일, 곧 누구보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찾아가는 것과 같다.

adventure-2548133_1920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맨앞이전다음맨뒤
이전글 다음글
목록

감이당| 주소  서울시 중구 필동 3가 79-66 깨봉빌딩 2층   전화  070-4334-1790

copyright(c) 2012 gamidang.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