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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은 니체]예속되지 않는 노동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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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9-10-21 10:35 조회1,4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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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속되지 않는 노동의 자리


재겸

요즘, 일에 대하여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볼 기회가 생긴다. 몇 년이나 더 일을 하게 될지 헤아려 보기도 한다. 나 같은 중년 직장인에게 일이 차지하는 인생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우선, 투자하는 시간을 계산하면 그 비중이 단연코 탑이다. 근무 시간은 물론이고 회식이며 업무 미팅을 겸한 식사자리, 동료들의 경조사까지 업무의 연장으로 치면 시간은 고무줄처럼 확장된다. 직장은 밥벌이 수단이다. 매달 받는 급여로 생계를 챙길 수 있었고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직장은 결코 가볍게 평가할 수 없다. 앞으로도 몇 년 동안은 급여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밥벌이의 감각만으로 노동을 평가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구하던 시절, 나에게는 생활에 대한 감각이 희박했다. 생계를 해결하고 가족들의 생활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관념은 후순위였다. 무언가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으로 일자리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기분으로 직업을 선택했기에 직장을 가진 다른 친구들의 ‘노동’의 감각을 한동안 갖지 못했다. 그런데 활동으로 선택한 직장이 망하지 않았고 안정되게 성장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업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업무의 체계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역할 분장을 했고 위계도 생겼다. 그렇게 시작의 감각과는 무관하게도 직장은 통념적인 노동이 되어버렸다.

working-1024382_640그렇게 시작의 감각과는 무관하게도 직장은 통념적인 노동이 되어버렸다.

처음 일을 시작한 이유와 지금 내가 일하는 이유에는 상당한 격차가 존재한다. 노동을 다르게 평가하고 싶다는 아쉬움과는 별개로 결국 노동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 조직이 필요한 일을 맡아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이 노동이다. 노동의 시각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는 ‘유용함’이다. 맡긴 일을 제대로 해낼 사람인지를 판단하여 사람을 선발하고 그 직책을 맡긴다. 나 역시 일을 할 때는 내 일이 그 필요에 쓸모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쓸모가 있는 것과 노동의 유용함은 거리가 있다. 퇴임을 하고 나면 노동으로 배운 기술이 어디에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노동을 간절히 욕망한다. 매월 따박따박 통장에 꽂히는 급여가 주는 안정감, 가끔 주어지는 휴가의 기쁨을 원한다. 어쩌면 업무로 인한 분주함에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 것까지 바랄지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노동이 가져다주는 혜택이나 조건에는 예민하다. 그것이 가장 앞선 조건이 되어 삶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노동이 우리에게 무엇인지’ 대해서는 얼마나 질문을 하고 있을까? 그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노동을 주인으로 하는 삶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어떤 결산으로 귀결될 것이다. 노동이 가져 올 삶의 대차대조표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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