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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生生) 동의보감]뱀이 칠규(七竅)에 들어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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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0-05-17 16:57 조회2,0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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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이 칠규(七竅)에 들어갔을 때



박정복

여름에 더위를 피해 서늘한 곳에 가서 잘 때, 뱀이 귀나 코나 입으로 들어가서 당겨도 나오지 않을 경우는 빨리 칼로 뱀 꼬리를 자른 다음 그곳에 천초(호초라고 한 곳도 있다) 2~3알을 싸매면 곧 나온다. 또는 쑥으로 뱀 꼬리에 뜸을 떠 주어도 곧 나온다. 또는 어미돼지 꼬리 끝을 배어 나오는 피를 받아 입과 뱀이 들어간 구멍에 넣어주어도 역시 나온다. 그런 다음 웅황가루를 인삼에 달인 물에 타서 먹으면 뱀 독을 막아준다. 몸에 뱀이 갑자기 감겨서 풀리지 않을 때는 뜨거운 물을 뿌려주어야 한다. 뜨거운 물이 없으면 다른 사람을 시켜 오줌을 누게 하면 곧 풀린다.

(「잡병편」, 구급, 1616쪽)

뱀은 무섭고 꺼려지는 동물이다. 티브이에서만 봐도 오싹하다. 아마도 발이 없이 몸뚱이로 기어 다녀서 인간의 모습과 가장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처럼 도로와 마당이 아스팔트 포장이 안 되고 흙이 많았던 옛날에는 뱀이 많았다. 내가 사는 제주는 따뜻한 데라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어린 시절 여름에는 마루 천정으로도 기어가는 경우가 있었고 부엌에 들어갔다가 물항아리 옆에 있는 뱀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도망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골에 살았던 남자들은 뱀을 목에 걸고 ‘어 시원하다’ 하며 여름 피서(?)를 즐겼다는 말을 듣고 뱀과 친한 애들도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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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렇지 『동의보감』에선 아예 자다가 코나 귀로도 들어갔다고 하니 헉! 소름이 돋는다. 그 시대엔 여름엔 거의 뱀과 함께 살았던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처방도 다양하다. 또 재미있다. 뱀 꼬리에 뜸을 떠준다니 뱀도 아뿔싸 놀라서 뒤로 쭉 미끄러져 빠졌을까?^^

돼지 피를 뱀이 들어간 귓구멍, 콧구멍에 넣어주는 이유는 뭘까? 돼지는 차가운 수(水)의 기운을 지닌다. 뱀은 겉은 차갑지만 속은 뜨거운 동물. 서로 상극으로 돼지가 이긴다. 수극화(水克火). 뱀이 우글거리는 섬에 돼지 열 마리를 풀었더니 뱀이 싹 없어졌다는 말도 있다. ‘뱀의 독니는 두꺼운 돼지의 피하지방층을 뚫지 못했고 그 독은 돼지의 지방에 중화되어 버렸’(전창성, 어윤형 지음, 『음양이 뭐지?』 세기, 87쪽)기 때문이다. 급하니까 돼지 꼬리를 잘라서 그 피를 구멍에 넣어 뱀을 무력하게 하고 독을 없앴던 게 아닐까?

뱀이 몸에 감겨버렸을 때는? 상황은 무시무시한데 의외로 처방이 간단하여 이 또한 재미있고 통쾌하다. 뜨거운 물 한 바가지 뿌려주는 정도. 뜨거운 물 데울 시간 없으니 오줌으로 대신하는 것 역시 얼마나 재치 있는가? 병이 있으면 바로 곁에 약이 있다더니 주변에 있는 것을 즉각 약으로 사용했던 우리 조상들의 민첩한 처방이 슬기롭다. 겉이 차가운 뱀의 성질엔 뜨거운 것으로 대응하고 속의 뜨거운 성질엔 차가운 돼지의 기운으로 대처한 이중의 전략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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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을 상하게 하지 않고 사람도 구하고 뱀도 구한 구급이어서 더 돋보인다. 자칫하면 뱀이 독을 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하기도 했겠지만 뱀을 범상한 동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더 신중하지 않았을까? 옛사람들은 뱀을 존숭하고 대접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아버지는 성격이 급하고 툭하면 어머니 탓을 했었다. 가령 궤에 넣어둔 물건을 찾아보아 얼른 잡히지 않으면 왜 넣어둔 대로 물건이 없냐며 어머니를 탓했다. 그런 아버지도 가끔은 조심조심 어머니에게 걸어와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으니 바로 뱀이 나타났을 때였다.

“저기 진 거 있고. (저기 긴 것 있구려)”

“저레 가게 ᄉᆞᆯᄉᆞᆯ 말헙써. (저리 가도록 살살 말하세요)”

어른들은 뱀을 ‘진 것’(긴 것)이라고 돌려 말했다. 뭔가 두렵기도 하고 신비로운 힘을 느껴서 그랬으리라. 뱀은 그냥 가고 싶은 대로 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걸 아버지도 모를 리 없건만 무슨 의식을 치르듯 매번 꼭 어머니와 의논한 뒤에 뱀을 보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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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꿈에 나타나면 재물을 가져다준다고 믿었고 어떤 지역에선 가신(家神)으로 모시기도 했다. 신화나 전설에선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절기력에도 배속되어 뱀의 해에 태어난 사람은 뱀의 성질을 닮아 열정적이고 명석하다고 본다.

지금은 일상에서 뱀을 보기 어렵고 추억만 남았다. 쓰다 보니 옛날처럼 오싹 하지가 않다. 구멍이라면 가리지 않고 사람 몸으로도 기어드는 움직임이 왠지 친근하게(?) 느껴진다. 누군가를 뱀띠가 되게 하고 뱀을 상징하는 성격까지 만들어 줄 것이기에 늘 우리 곁에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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