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우리는 어떻게 바름을 지킬 수 있을까? 가인괘의 가르침은 단호하고 간단하다. 각 구성원은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역할만 하면 된다. 지아비는 지아비답게, 부인은 부인답게, 형은 형답게, 동생은 동생답게! 그게 바로 가도(家道)다. 또한 집안에 엄한 어른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부모를 말하는 것이다.(家人有嚴君焉父母之謂也) 고로 부모의 역할은 엄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이 ‘엄한 어른’의 역할만 하면 되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가? 어렵다. 나는 너무 무섭게 굴었다가 아이가 눈치 보면 애정결핍을 걱정해서 다시 다정하게 대하고, 뭔가를 금했다가도 아이가 측은하거나 잘한 일이 있으면 보상으로 금한 것을 풀어줬다. 이렇게 이랬다저랬다 하면 ‘엄한 어른’노릇을 유지하지 못한다. 너무 엄해서 아이들이 억압되어 있으면 후회하고(家人嗃嗃 悔厲) 사이좋게 낄낄대는(婦子嘻嘻) 구삼효는 바로 오락가락하는 우리 집의 풍경이다. 정이천은 경고한다. 이렇게 ‘제멋대로 절제 없이(自恣無節)’굴었다가는 패가망신(終至敗家)한다고! 오버해서 후회하더라도 초지일관 엄한 것이 낫다는 것이다. 구삼효의 경고는 이것이 비단 지금 우리 집의 문제만이 아니라 예나 지금이나 가도를 세워가는 데에 가장 큰 어려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과도한 엄격함과 절제 없이 풀어진 상태 사이에서 중심 잡기. 이것이 관건이다. 나는 이것을 맨 위의 上九효와 『홍루몽』의 어른의 역할에서 찾아보았다.
『홍루몽』은 중국 청나라 때의 장편소설이다. 거대가문의 흥망성쇠와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는데, 그 가문을 이끌어가는 ‘가모’는 남녀 가족 중 가장 서열이 높은 할머니다. 주역의 효로 치면 그녀의 자리는 맨 윗자리, 상구의 자리에 해당할 것이다. 집안의 중심은 분명 구오인 아들들에게 있으나 그들은 어쨌거나 바깥에서 나랏일을 하는 자들이다. 아무리 구오라지만 집안일에서는 힘을 쓸 수 없다. 그래서 가인괘에선 상구가 권력에서 물러난 힘없는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어른의 노릇을 해야 하는 자리이다.
상구의 효사는 有孚 威如 終吉(유부위여종길)이다. 상구의 어른은 진실한 믿음(有孚)과 위엄(威如)으로 가도를 세운다는 것. 주역에서 믿음(孚)은 따로 대상이 없다. 내면에서 우러나는 믿음일 뿐이기에. 정이천은 “집안을 다스리는 도는 지극한 진실과 정성이 아니라면 이룰 수 없다”(治家之道非至誠不能也)고 했다. 손주에 대한 가모의 사랑은 지극하기 이를 데 없는데, 손주가 이래서 사랑하고, 저래서 예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랑한다. 여자애들만 쫓아다니는 성향이 건실한 남자로 크기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걱정을 드러내지 않고 기다려준다. 공부를 해서 어머니, 아버지를 기쁘게 하라고 타이르기도 하지만, 안 한다고 해서 속상해하거나 어떻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의 마음은 아이가 어쩌는가에 따라 널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정성을 다하여 아이를 사랑으로 보듬는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할머니의 이런 믿음(有孚)이 손주에게 자유의 공간을 열어준다. 못 믿으면서 방치했을 때의 자유와 진실한 믿음에서 얻는 자유는 질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