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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 2] ‘소유’라는 장막에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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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0-11-08 15:25 조회9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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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라는 장막에서 벗어나라



성승현(감이당 금요대중지성)

雷火豊 

豐 亨 王假之 勿憂 宜日中.

풍괘는 형통하다. 왕만이 이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으니, 근심이 없으려면 마땅히 해가 중천에 뜬 듯이 해야 한다.

初九 , 遇其配主 雖旬 无咎 往 有尙.

초구효,  짝이 되는 주인을 만남이다. 비록 둘 다 양이라 대등한 관계이지만 허물이 없으니, 그대로 나아가면 가상함이 있으리라.

六二 , 豐其蔀 日中見斗 往 得疑疾 有孚發若 吉.

육이효,  짚으로 엮은 덮개에 많이 가려짐이라.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북두성을 본다. 나아가면 의심과 질시를 얻으리니,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감동시키면 길하리라.

九三 , 豐其沛 日中見沬 折其右肱 无咎.

구삼효,  휘장을 둘러쓰고 있음이라.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작은 별을 본다. 오른쪽 팔뚝이 부러졌으나 탓할 곳이 없다.

九四,  豐其蔀 日中見斗 遇其夷主 吉.

구사효,  짚으로 엮은 덮개에 많이 가려짐이라.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북두성을 본다. 대등한 상대를 만나면 길하리라.

六五,  來章 有慶譽 吉.

육오효,  아름답고 훌륭한 인재를 오게 하면 경사와 영예가 있어 길하리라.

上六 , 豐其屋 蔀其家 闚其戶 闃其无人 三歲不覿 凶.

상육효,  집을 성대하게 하고도 그 집을 짚으로 엮은 덮개로 덮어 놓은 것이라. 집 안을 엿보니 사람이 없어 3년이 지나도록 만나 보지 못하니 흉하다.

 


 

올해 들어 과로사를 포함해 사망한 택배업계 종사자는 모두 12명이다. 택배 노동자들이 잇따라 사망하자, 열악한 근무환경과 장시간 노동을 종용하는 업계 관행을 고쳐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택배 운송사 대표는 인원을 충원하겠다며 뒤늦게 사과에 나서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로써 노동 환경이 변할 거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 요즘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소유를 쉽고 빠르게 해주는 것이 ‘택배’ 시스템이기도 하다. 손가락으로 몇 번 터치하면 집 앞으로 원하는 물건이 배송되지 않는가. 어마어마한 택배 물량이 이런 세태를 반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많은 수요에 합리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운송 시스템도 문제지만, 풍요로워도 너무 풍요로운 우리의 삶에 대해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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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을 생각해봤다. 재활용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자괴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필요한 것만 주문했다고 생각하지만, 박스며 비닐, 플라스틱을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절로 난다. 버려지는 음식 쓰레기도 마찬가지다. 음식물을 버릴 때마다 불필요한 소비에 대해 반성하지만, 방심하면 어느새 그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래도 택배 기사의 과도한 노동과 죽음이 시스템의 문제라고만 할 수 있을까. 내 욕심과 소비 패턴이 과도한 택배 시스템을 부른 건 아닐까. 생각해볼 문제다.

풍요를 상징하는 ‘뇌화풍괘’를 통해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한다. 풍요로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풍요로부터 소외되는 이가 없게 하는 것이다. 괘사에서 ‘풍괘는 형통하다. 왕만이 이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으니, 근심이 없으려면 마땅히 해가 중천에 뜬 듯이 해야 한다(豐 亨 王假之 勿憂 宜日中)’고 했는데, 풍요를 골고루 나눌 수 있는 것은 왕이 지혜로울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왕의 재능과 지혜가 ‘해가 중천에 떠 있듯이(宜日中)’ 유지되어야 풍요를 ‘공명정대’하게 나눌 수 있다.

풍요의 도를 널리 베풀 수 있는 ‘공명정대함’은 어떻게 발휘되는 걸까? 상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우레(雷)와 번개(電)가 함께 치는 것을 풍괘로 보았다. 번개가 치자마자 우레가 번쩍인다. 죄를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판결해서 처단하는 모습을 연상케한다. 이렇게 시행할 수 있는 동력은 밝은 지혜를 뜻하는 이괘(離卦)와 잘못을 변혁할 수 있는 진괘(震卦)의 조합에 있다. 풍요가 과도해지면 이괘의 밝은 지혜가 알아차릴 수 있고, 진괘가 이를 조정하여 움직일 수 있으니 말이다. 이 둘이 상생 관계에 있을 때, 풍요의 덕이 널리 미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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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잠깐이라도 방심을 하면? 하늘과 땅의 성쇠도 때에 따라서 나아가고 물러나듯이(정이천, 『주역』, 글항아리, 1087쪽), 해가 지면 어둠이 생기듯이, 곤란에 처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가 그렇다. 풍요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방심한 사이에 택배 노동자의 죽음이라든지, 물건에 대한 탐욕이라든지 하는 어둠이 생겨나지 않았는가.

넘치는 풍요 속에서 보이는 나의 태도를 구삼효에 적용해봤다. 구삼은 지혜와 동력을 잃어 어려움에 빠져 있는 효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어두운 휘장을 둘러쓰고 있어, 간신히 작은 별을 보고 있다. 밝음이 풍부한 이때에 휘장을 풍부하게 둘러 주변을 어둡게 만든 다음에, 작은 별에 의지해서 겨우겨우 길을 찾아가고 있는 모습(豐其沛 日中見沬)이다. 구삼효는 왜 이런 극한 어둠에 놓여 있는 걸까?

풍요의 도는 반드시 밝은 ‘현명함’과 진동의 ‘위엄’이 서로 의지하고 서로를 바탕으로 삼아 이루어진다(같은 책, 1095쪽)고 했다. 그런데 구삼효는 관계를 맺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 구삼효는 밝은 빛을 상징하는 이괘의 형체에 자리해 현명한 사람인데, 음암(陰暗)한 상육효와 호응하고 있다. 상육효에 의지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는 뜻일텐데, 상육효는 음유한 자질로 성대한 풍요에 자리하면서 지위가 없는 곳에 있다. 정이천은 이러한 태도를 오만하고 어리석다고 했는데, 이런 자에게 호응하며 도움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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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상육효는 자신의 풍요를 나눌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욕심이 하늘까지 이르러 자기 집을 풍성히 하고는, 그것을 다른 사람이 볼까 감추는 자다. 자기의 풍요를 지키는 데 급급하다 보니, 바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신경 쓰지 않는다. 보지도, 듣지도 않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그런 모습이다. 택배 운송사가 딱 그렇다. 코로나19 여파로 택배 물량은 어마어마하게 급증했다. 사실 이 추세는 꽤 오래 지속될 현상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기존의 인원에게 과도한 노동을 부과했다. 결국, 자기 재산 늘리는 데 혈안이 된 택배 운송사와 이러한 비정상적인 시스템을 중재할 수 없는 국가, 위중한 상황에서도 소비를 부추기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매체들… 모두가 상육효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구삼효를 덮고 있는 어둠들이다.

때때로 합리적인 소비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택배 노동자의 죽음과 같은 극단적인 사건을 접하면 잠깐 소비가 줄어드는 듯 하지만, 어느새 원래의 패턴으로 돌아와 있다. ‘작은 별을 본다’는 것이 이런 게 아닐까? ‘소유욕’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와 ‘소비와 택배시스템’이라는 전체적인 그림은 보지 못하고, 어떤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면 잠깐 반성하고 마는 그런 태도 말이다. 이 모든 사건을 연결해서 보지 못하면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 없다. 각각의 사건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반성으로 그치기 쉽다. 이렇게 무력한 상태가 되고 마는 것을 오른팔이 부러졌다(折其右肱)고 표현하는 것이다.

compass-2946959_640‘소유욕’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와 ‘소비와 택배시스템’이라는 전체적인 그림은 보지 못하고, 어떤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면 잠깐 반성하고 마는 그런 태도 말이다.

하지만, 구삼효는 하체인 이괘(離卦)에 속해있다. 밝은 지혜를 가진 자다. 그런데도 어둠의 장막에 부화뇌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내 안의 욕망을 직시하고, 행동지침을 세울 때다. 다른 게 아니다. 풍요의 때에 내 마음이 상육효에 호응해서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 된다. 그러면 나의 소유가 과도하고 불필요한 욕망에서 왔다는 것을 직시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소유를 위한 소유’라는 장막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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