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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장자스쿨_재수정]내가 완벽하려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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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맨발 작성일19-04-30 22:23 조회2,2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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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완벽하려했던 이유

 



강지윤(감이당 장자스쿨)

17세에 심리상담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이후 나는 한눈팔지 않고 달려왔다. 어린 나이에 상담심리사 자격증을 땄고 소수의 사람만 가는 기업 내(內) 심리상담사로 취직도 했다. 다양한 사람들과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났으며 많은 경험을 통해 상담 능력을 향상시켰다. 경험이 많아지면 초보 상담사 때의 ‘나는 부족한 상담사’라는 생각이 저절로 없어질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이후 시간이 꽤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최신 트렌드의 상담공부를 해 보기도 하고, 선배상담사에게 가서 심리상담도 받았으며, 심지어 라디오 상담 진행도 해 보았지만 그 결핍감은 메울 수 없었다.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왜 상담사로서의 ‘결핍’이 채워지지 않았을까? 나는 『안티 오이디푸스』를 읽으며 그 해답을 찾았다. 『안티 오이디푸스』에서는 신(神)의 자리에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신(神)의 전달자인 사제가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사가 채웠고, 사람들은 마음의 문제가 생기면 교회나 절이 아닌 심리상담 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담사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헌금 대신 값비싼 상담료를 지불했으며 사제에게 원하던 것을 심리상담사에게도 원했다. 사람들은 상담사를 찾아가야만 자신의 마음을 위로받고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얻을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상담사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헌금 대신 값비싼 상담료를 지불했으며 사제에게 원하던 것을 심리상담사에게도 원했다.

상담사인 나도 그들에게 딱 맞는 솔루션을 제공해 주고 싶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척척 주고 싶었다. 나조차도 내가 완벽한 사제가 되길 기대했던 것이다. 내 삶이 완벽할수록 그들에게 좋은 답을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렇지만 때로는 그들의 이야기가 지겨워 졸기도 했고 그들의 이야기에 반박하고 싶은 때도 많았다. 말 한마디를 잘못해서 큰 일이 날까봐 마음 졸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기는커녕 내 감정만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런 나를 ‘결함투성이’라고만 생각했다. 『안티 오이디푸스』를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분석가는 신이 아니라 당신과 같은 인간 존재이며, 근심들, 결함들, 야심들, 약점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그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지혜의 보고가 아니라, 길을 따라가는 방랑자라는 것을 당신이 깨닫는다면

(질 들뢰즈·펠릭스 과타리, 『안티 오이디푸스』, 554쪽)

그런데 이 책은 나에게 다르게 말했다. 너는 ‘지혜의 보고’가 아니고 ‘약점’과 ‘결함’이 많은 ‘방랑자’라고. 사람들에게 딱 맞는 해결책을 주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도, 그들만큼이나 내 인생에 대해 갈팡질팡하는 것도 당연했다. 나는 신(神)의 길을 따라가는 사제가 아니라 방랑자였기 때문이다.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지며 뭉클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음가는대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나를 괴롭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너는 ‘지혜의 보고’가 아니고 ‘약점’과 ‘결함’이 많은 ‘방랑자’라고.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강조하는 것은 개인의 욕망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개인의 무의식에 심어 놓은 사회적 욕망이라고 했다. 내가 버겁게 추구했던 완벽함이라는 욕망은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가 내 무의식에 주입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채 살았다면 천근만근의 사제복을 입고도 그 길 밖에 없다고 믿었을 것이다. 심리상담사로 일하는 내 친구들처럼 말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가 개인의 욕망을 구성하는 시스템에 대해 들여다보고자한다. 그 속에서 완벽한 상담사이기를 바랐던 나의 욕망과 내 욕망의 기원을 찾아보아야겠다. 더불어 계속 상담을 해도 될지 내 삶도 고민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다시 한 번 내가 자유의 춤을 출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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