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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온라인 감이당 대중지성] 흐릿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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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2-05-23 17:44 조회8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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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하게 살았다!

박 미 란(감이당)

아버지는 말년을 지독한 파킨슨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오빠는 사업의 실패와 함께 두 번의 이혼을 하였다. 언제나 씩씩하였던 언니는 유방암 수술을 받고 지금 우울한 갱년기를 보내고 있다. 나는 결혼한 지 십여 년간 불임이었다. 이 모든 것들은 신이 우리에게 내린 저주였을까?

“목사님! 당신의 잘못을 고백하십시오. 오늘이 바로 이때입니다.” 아버지였다. 그날 부활절 예배는 아버지를 지지하는 이들의 고성과 당황하는 신도들로 쑥대밭이 되었다. 아버지는 우연히 목사가 불륜을 맺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소동은 교단 안에 있는 다른 목사로 교체되어 일단락되었다. 목사는 공동체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빌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 가정을 향해 저주의 설교를 퍼부어댔다. 사회적으로 매장되어야 할 성직자가 자신의 잘못을 두둔하고 이를 그저 “아멘” 하면서 받아들이는 교회공동체의 무기력한 정서를 보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언제부터인지 그 목사의 저주가 내 무의식에 거머리처럼 붙어있음을 느낀다. 아버지는 정의를 외쳤다. 그런데 왜 나는 이런 죄의식 같은 불안에 사로잡혀 사는 걸까?

어릴 적 교회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철이 들었을 즈음, 교리의 불합리를 토론하려고 하면 부모나 교회는 그 입 닫고 오직 기도와 믿음만으로 살아야한다고 했다. 그들이 대답해 줄 수 없는 질문들은 ‘교만’이라는 이름으로 잘려졌다. 이렇게 교회는 이성을 마비시켜야만 다닐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언제나 “예수천당, 불신지옥” 같은 이원적 교리에 매달려 어리석은 공포 속에 살아가도록 이끈다. 더 이상 끌려 다니기 싫어 교회를 나왔다. 박차고 나왔지만 여전히 배타적인 기독교 교조주의가 내 삶을 끄-달리고 있음을 본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종교를 거부했을 때 쿨하게 받아들였지만 내심 불안함은 지울 수 없다. 때론 일상의 어려움을 마주하게 될 때 ‘아버지가 목사를 쫓아내서 우리 가족이 이런 벌을 받는 걸까’하며 어리석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정신은 여전히 흐릿하기만 하였다.

edwin-andrade-6liebVeAfrY-unsplash철이 들었을 즈음, 교리의 불합리를 토론하려고 하면 부모나 교회는 그 입 닫고 오직 기도와 믿음만으로 살아야한다고 했다.

감이당에서 글쓰기와 경전읽기를 시작하였다. 괴로워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삶이 괴로움 그 자체라니… 이해가 안 되었다. 불경을 읽으면서 고통을 화살에 맞는 것으로 비유한 것이 있었다. 마음에 와 닿았다. 아버지의 노환, 가족들이 맞았던 화살들은 자연의 이치이거나 어떤 조건의 결과이지 신의 저주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화살에 맞았을 때이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지 못하고 그 고통에 잘못된 해석이나 잘못된 반응을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또 두 번째 괴로움의 화살을 맞는 원인이 되고 세 번 째, 네 번째…계속 화살을 맞게 되어 괴로움을 더 크게 키워 나간다는 것이었다. 삶은 피할 수 없는 화살밭과 같다. 어쩔 수 없는 첫 번 째 화살로 끝내야 하지만 아직은 너무 어렵다.

“무명이란 앎이 없는 것을 이르는 말이니…. 예컨대 눈은 나고 멸하는 법에 불과하다고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앎이 없다고 하며 귀, 코, 혀, 몸, 뜻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리석으며 밝음이 없고 크게 어두운 것, 그것을 무명이라고 말합니다. (최태람 풀어엮음/ [낭송아함경]/북드라망/89P)

불교 경전에 의하면 원인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구성된다. 영원한 것은 없고 끊임없는 변화의 흐름만 있다고 한다. 무상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의 모든 신은 사람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상'(관념)일까? 어쩌면 인간의 욕망이 신을 만들고 거기에 권위와 능력을 부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만들어진 신 앞에 길을 잃은 아이처럼 미망 속에 헤매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의 불안은 지혜가 없어서 오는 무지였다. 마치 캄캄한 밤에 더듬거리며 길을 가다가 조그만 돌멩이에 걸려도 화들짝 놀라듯 무지는 그렇게 공포와 함께 내 삶을 갉아먹고 있었다.

내일이 부활절이다. 20여 년 전 부활절 날 아버지가 회개하라고 외쳤던 그 소리가 나에게는 새로운 부활의 외침으로 다가온다. “지금부터 맹신적인 관성에서 벗어나서 보고 알고 깨달아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져라.”라고. 작년부터 시작한 초기 불경 읽기 공부와 <온라인 대중지성>공부가 미망의 창들을 이곳저곳 닦아주고 있다. 책 신의 전쟁(카렌 암스트롱)을 통해 내게 믿음의 싹을 심어준 한 종교가 감히 생각지도 못할 만큼 폭력적이었음을 보게 되었다. 그런 종교가 지금도 여전히 폭력적으로 내 주변을 잠식하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꿋꿋하게 배움을 통해 현재 밝음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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