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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온라인 감이당 대중지성] 아버지와의 연결에서 타자와의 연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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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2-06-20 15:35 조회9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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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의 연결에서 타자와의 연결로

백 선 주(감이당)

집근처에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 있다. 이 공원과 마주한지는 벌써 7년이 넘어간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혼자 조용히 걷고 싶을 때는 물론이고 마음이 울적하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도 공원으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향한다. 4년 전부터는 공원 안에서도 특별히 발길이 멈추는 곳이 있다. 사시사철 푸르디푸른 소나무들 앞에서다. 아이들에게 엄마 공원에 간다고 하면 “엄마, 또 소나무랑 얘기하러 가?”하거나 “엄마 또 소나무한테 가지?”라고 할 정도다. 소나무들 앞에만 서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연결되는 느낌이라는 걸, 아이들도 아는 눈치다. 소나무들에게 처음 말을 건넨 건 누워계신 친정아버지 이야기를 꺼내고부터였다. 

아버지는 4년을 집에서 누워계시다 작년 7월 병세가 악화되어 입원3주차에 돌아가셨다. 대기업에서 30년 넘게 임원으로 지내시다 퇴직 후 사업을 하셨는데 잘 되지 않자, 외부와 단절한 채 살기 시작하셨고, 오래 지나지 않아 마음의 병이 몸으로 드러난 것이다. 가족들은 누워계신 아버지가 안쓰러워 하루빨리 일어나시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며 보다 기쁘게 해드리려고 애를 썼지만 아버지 마음을 돌리기는 역부족이었다. 날이 갈수록 아버지는 점점 더 고립되어만 갔다. 

돌아가시기 전날 아버지는 어머니 손을 꼭 잡으신 채 삶의 고통도, 죽음의 고통도, 그 어떤 두려움도 없다는 듯 계시다, 아침이 밝자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죽음을 통과하셨다. 나에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아버지가 사라지던 순간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시신을 태운 운구차량에 따라올라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내내 전날 쓴 4장의 편지를 읽어드렸다. 눈물이 범벅된 와중에도 아버지 꼭 들으시게 최대한 분명한 어조로 읽고 있는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응!”이라며 대답하신 것이다. 분명 아버지 목소리였다. 얼마 전 낭송수업 때 읽은 <호모 큐라스>에서 귀는 죽음에 이르러서도 닫히지 않는다고 했다. 또, 최근에 양자론을 배우면서 하나의 파동은 여러 파동의 간섭으로 일어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배웠다. ‘죽음의 문턱에 계셨던 아버지가 내 메시지를 듣고 온 우주의 힘을 다해 대답해주신 게 아닐까?’, ‘운구차량에 동승하고자 했던 내 행동과 편지를 읽어드린 말의 파장이 상호작용하며 아버지의 음성이 전해진 것은 아닐까?’ 많은 생각을 하며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kristijan-arsov-dTypPupB1dw-unsplash4년 전부터는 공원 안에서도 특별히 발길이 멈추는 곳이 있다. 사시사철 푸르디푸른 소나무들 앞에서다.

장례식에서는 새벽마다 <티벳 사자의 서>를 읽어드리며 아버지가 환한 빛을 따라 사후세계에서 길을 잃지 않으시길 간절히 바랬다. 집에 와서도 <티벳 사자의 서>낭독을 멈추지 않았는데 마지막을 읽어드린 다음날 첫째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말했다. “엄마, 어제 꿈에 외할아버지가 나왔는데, 이모들하고 엄마를 불러 하실 말씀 다 하시고, 엄청 좋은 곳으로 바로 건너가셨어. 뒤도 안돌아보시고.” 딸의 꿈 이야기를 들은 그날도 공원을 찾아 소나무들 앞에 섰다. 육체의 고통에서 벗어난 아버지께서 편안한 곳으로 가신 듯 믿겨진다고 마음을 털어놓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이 마치 끄덕이며 공감해주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삶의 현장을 두려움이나 슬픔의 감정으로만 대하지 않고 필연적인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온전히 개입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감이당에서 해온 고전공부 덕분이었다. 또한 대중지성 낭송시간에 읽은 <호모큐라스>와 양자론 강의는 막연하게 믿고 있던 것들이 구체적 이론으로 실체화되면서 경이롭기까지 했다. 덕분에 운구차량에서 들은 아버지의 음성과 첫째에게 전해들은 안부는 여전히 아버지와 연결되어있음을 알게 했다. 그럼에도 문득문득 아버지가 그리워질 때면 집 앞 공원을 산책하며 소나무들 앞에 선다. 지난주는 아버지 돌아가시고 맞이한 그의 첫 번째 생신이라, 아이들이랑 남편과 함께 아버지 모신 수목장을 찾았다. 꽃을 살포시 놓아드리고 절을 올린 뒤, 아버지 곁에 자리한 소나무 앞에 앉았다. 아무래도 소나무는 나와 깊은 인연이 있는 듯하다. 가만히 앉아 한참동안 아버지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데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도 여전히 연결된 듯 하고, 집 앞 공원 소나무들과도 연결된 느낌을 받는데 하물며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와는 더없이 잘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나와 타자를 경계 짓지 않고, 활짝 열린 마음으로 모든 생명체를 대해야 할 것이다. 수많은 타자와 더 공감하고 연결되었음 하기에, 나는 오늘도 관계 안에서 자아를 내려놓는 훈련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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