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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온라인 감이당 대중지성] 새로운 창문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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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2-06-26 15:49 조회5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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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창문 만들기

송 형 진(감이당)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증오와 경멸의 감정’을 들여다본다. 이 감정은 ‘미움’이나 ‘싫음’보다 한 단계 아니 그 이상 센 듯하다. 이런 감정을 들여다보게 된 계기는 이번 학기에 읽은 『신의 전쟁』(카렌 암스토롱 지음, 교양인, 2021.7) 때문이다. 인류 문명의 역사가 인간이 인간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과 살인의 연속이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엄청난 문명이 발달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러한 역사속의 폭력과 살인의 혜택을 보았고, 지난 “5천년 동안 대다수 사람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과정에 연루되어 있다”(같은책 43쪽)는 한 수도승의 말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지난 3월 대선이후 신문도 잘 보지 않고, 아침마다 출근하며 들었던 시사 라디오방송도 거의 듣지 않고, 자주 찾아보던 시사 유튜브도 잘 보지 않고 있다. 뭘 해도 재미도 없고, 흥도 나지 않고, 상실감과 허무함이 밀려오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걱정만 태산처럼 쌓이는 듯하다. 그리고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라는 질문만 반복된다. ‘앞으로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라는 어떤 회의가 들었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런 꿈이 허망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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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뭔가 대답을 해보려고 애를 써본다. 지금의 상실감과 허무함의 정체는 무엇인가? 원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인가, 큰 이벤트가 끝나고 나서의 허탈함, 마치 전쟁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온 전사들이 느끼는 일상에서의 권태로움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상실감과 허무함의 밑바탕에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증오와 경멸의 감정’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지’라는 나의 속마음에는 그런 감정이 함축되어 있었다. 이러한 감정의 씨앗이 자라서 커지게 되면, 폭력을 동반한 싸움이 되고, 살육을 자행하는 전쟁이 되는 것이지 않겠는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직장의 동료들, 가까운 친척들, 그리고 학창시절에 알고 지냈던 선후배들도 있다. 그들과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할 것이 아니라면, 싸움이나 전쟁을 통해서 더불어 살아가는 문제를 풀어가려고 할 것이 아니라면, 다른 자세와 태도, 생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할까?

『신의 전쟁』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 중의 하나가 모한다스 간디의 ‘비폭력’이었다. 당시 인도의 힌두교들은 독립투쟁을 하면서 영국과 싸우는 일의 정당성 문제를 두고 격렬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간디는 “모두가 똑같은 신성한 핵심을 공유하기 때문에 폭력은 온 우주의 형이상적 경향과 어긋난다.”(같은책 465쪽) “비폭력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나의 적이 아님을 깨닫는다는 뜻이다.”(같은책 466쪽) “무슬림이나 힌두교도를 사랑하면서 영국인을 미워할 수는 없다”(같은책 467쪽)고 했다. 이 짧은 문구들에서 느껴지는 그의 ‘비폭력’ 사상이 나의 머리와 가슴을 크게 울렸다.

gandhi-g665eb1bdd_640“비폭력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나의 적이 아님을 깨닫는다는 뜻이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느꼈던 나의 ‘증오와 경멸의 감정’을 다시 들여다본다. 내가 생각했던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이 같거나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더불어’였지 않았을까.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적당한 간격과 구분을 유지한 채 ‘비록 생각은 다르지만 같이 살아야지’라는 ‘당위의 더불어’가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들이 배타적이고 위선적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런 오류의 틈새에서 ‘갈라치기’와 ‘혐오’가 자라나는 것일 게다. 사람들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것만이 아닌, 나와 그들을 구별하려고 하는 오래 된 습성을 성찰하고자 한다. 그래서 “관계를 보지 못하는 무능력”(같은책 582쪽)을 넘어서서, ‘나와 그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이라는 새로운 창문을 만들어 가려고 한다. 그것은 이제 내 삶과 공부의 비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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