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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화요대중지성] 수(數)와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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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2-06-28 20:09 조회4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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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數)와 본성

김 동 연(감이당)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전에는 학교를 다니면서 알바를 하고, 스펙을 쌓고 취업과 이직을 하며 월급을 모아서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이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학교 공부를 졸업하고 시간이 지나서 인문학 공부를 하게 되었다. 공부를 하면서 입으로는 돈을 최고의 가치로 설정한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어쨌든 밥벌이를 해야 하기에 최근까지 음식점에서 알바를 했었다. 지금은 우리 동네 중,고등학교 앞에 있는 작은 서점에서 오전에만 잠시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일은 이 세계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아도 적어도 해를 끼치는 일은 아니며 개인적으로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아서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나의 일이 화폐적 가치로 교환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장님은 나를 시급 9160원 짜리로 대하고, 나 또한 사장님을 사장님으로 대하며 시키는 일(책을 나르고, 서가에 책을 순서대로 꼽고, 청소하고, 복사를 하고 팩스를 보내는 일)을 하고, 학생들이 문제집을 사러 오면 그들을 매출 대상으로 보게 된다. 

나는 왜 사람들을 이렇게 대할까? 알바를 고려할 때의 기준을 처음에 시간당 얼마짜리로 보지 않고 또 사장님을 월급을 주는 사람만으로 대하지 않고, 오는 학생들을 매출 대상으로 대하지 않고 다르게 대할 수는 없을까? 예를 들어 국어 문제집을 사러 오는 학생에게 문제집에 나온 시를 내가 암송으로 들려준다거나, 과학 문제집을 사러 온 학생에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며 떠들고 싶다면 너무 낭만적인 생각일까? 나의 생각이 고정된 상을 미리 설정해 놓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나는 궁금하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시간당 얼마짜리로 또는 계산적이고 수적으로 만들었는지. 시간이나 수로만 환산된 삶은 결코 잘 산다고 할 수는 없을 텐데 말이다. 이런 균질화된 시간의 중력으로부터, 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지긋지긋한 노동과 화폐의 단순한 교환으로부터 진정 벗어나는 길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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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화된 자아를 알아채기

시간이 단수가 된 건 그야말로 20세기 근대의 산물이다. 우주의 운행, 사계절의 순환, 대지의 질적 차이 등을 지워 버리고, 오직 인간의 활동만으로 역사를 구성하게 되면서 시간은 단 하나의 척도로 가늠되었다. 시간의 ‘주름들’이 얇게 펼쳐지면서 과거와 현재, 미래가 일직선으로 늘어서게 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시간은 계산가능하고, 통제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어떤 대상을 수로 측정할 수 있다는 건 모든 것이 동일한 질량으로 이루어졌음을 전제한다. – 균질화! (고미숙, 『계몽의 시대』, 북드라망, 17쪽)

10대부터 우리는 숫자에 민감해진다. 시험 점수, 반 등수, 전교 등수 등등이 형성하는 장속에서 답을 잘 고를수록 연봉을 더 많이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취업을 해서 자신의 노동으로 바꾼 연봉은 ‘방대한 상품’을 살 수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부의 기본 원리다. 이런 사회는 당연히 자본적 사유를 내면화할 수밖에 없고 모든 것을 수치화해 투자 대비 이윤, 시간 대비 효율을 높이는 것에 주력한다. 이런 형태는 일하는 작업장이나 회사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자신의 행위와 자신의 정서를 잘 통제하고 측정하면서 기어코 최적화를 시켜 수량화된 자아를 생산시킨다. 누구와 함께 무슨 이야기를 하며 어디를 걸었는지보다 만 보를 채운 알람 소리에 뿌듯해하고, 스마트폰 사용으로 어떤 접속과 배움이 생겼는지보다 지난주 대비 몇 % 사용이 늘거나, 줄어든 것에만 반응한다. 

이렇게 숫자로만 환원되는 20세기의 자본의 방식은 ‘우주의 운행’이나 ‘사계절의 순환’ 안에 있는 우리의 다양한 생명의 활동을 단순한 척도로만 즉 화폐의 양과 시간의 통제 안으로 밀어 ‘동일한 질량’을 만들어 버린다. 

‘수’는 인간의 추상적 사고를 도와주며 이 세계와 우주를 이해하는 도구로 결정적 역할을 하지만 ‘수량화된 내면’을 가진 양식의 사회는 자신이 가진 상품의 ‘수’나 아파트 평‘수’가 높을수록 ‘좋은 삶’이라고 믿기에 큰 수를 얻기 위해 사람과 자연으로부터 이윤을 뽑아내려고 할 수밖에 없다. 반생명적이거나 비인간적인 것을 느낄 수 있는 예민함은 자극이 큰 감각에 묻혀 대수롭지 않게 만든다. 그렇다면 수량화된 내면을 생산하는 것이 아닌 ‘다른 생산 양식’을 만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의 방식이 펼쳐지지 않을까? 수에 집착하지 않고, 내면에 수가 개입하지 않고 ‘좋은 삶’이 될 수는 없을까? 수에 집착하는 이유가 ‘좋은 삶’을 살고 싶어서라고 한다면, 꼭 수로 환원되지 않는 다른 방식의 삶을 만들어 잘 살 순 없는가 말이다.

수에 집착하지 않고, 내면에 수가 개입하지 않고 ‘좋은 삶’이 될 수는 없을까?

타고남을 탐구하기

그렇다면 먼저 꼭 일을 해서 돈을 모으고 그 수량으로 잘 살 수 있다는 근대적인 전제가 아니라 기존에 이 ‘잘 산다’는 개념, ‘좋은 삶’이라는 개념을 처음부터 다시 자연의 이치에 맞게 정립할 필요성이 있다.

한 개체가 ‘잘 산다’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 본성대로 사는 것이 아닐까? 그럼 본성이란 무엇인가? 오리는 ‘멍멍’ 거리지 않고 ‘꽥꽥’ 거리며 물 위를 떠다니는 것이 본성이고, 길냥이는 ‘음메’ 하지 않고 ‘이야옹’ 거리며 도시 속에서도 야생성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 본성이다. 인간은 어떨까? 인간은 ‘사계절을 닮은 사지’와 ‘하늘의 오행과 육극을 닮은 오장육부’와, 별보다 많은 뇌 세포를 가지고 있다. 이 방대하고 복잡한 신체 구조는 세계와 우주를 탐구하는 데 있어 오리나 고양이보다는 뛰어나 보인다. (그렇다고 그들을 인간보다 열등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타고난 본성대로 살려고 한다는 점에서,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이나 동물이나 완벽하게 평등하기 때문이다. 다만 책을 읽고, 쓰고, 우주 만물을 탐구하는 것은 인간이 좀 더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인간이 잘 산다고 하는 것은 타고난 본성 즉, 감히 이 우주의 근본을 알려고 하는 – 나는 누구이고, 몸과 우주는 어떤 원리에 기반하고 어떻게 운행되는지 – 다시 말해 탐구하고, 깨달으며, 기쁨을 맛볼 때 그것이 인간의 본성상 ‘잘 산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즉 인간의 본성은 타고난 신체적 조건상 지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아닐까? ( 글을 쓸 수 있는 손가락 또는 발가락 또는 입술과 엄청난 정보를 처리하는 뉴런들의 연결망과 그것들을 소리로 변환시킬 수 있는 발음기관의 발달과 지구를 몇 바퀴나 돌며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게 만드는 두 다리 또는 두 손 또는 몸과 마음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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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각자 타고난 기질이 모두 다르기에 그 방법 또한 다양할 것이다. 어떤 길냥이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타고난 ‘이야옹’ 소리로 애교를 부리며 인간에게 먹이를 얻지만 어떤 길냥이는 산 속에서 ‘키야옹’ 거리며 거칠게 살아간다. 둘 다 본성적으로 ‘야옹’ 거리지만 기질적 차이와 환경적 차이로 다른 삶을 살 듯이, 인간도 세계와 우주를 탐구하는 데 있어서 기질적 차이와 환경적 차이로 각자의 방식에 맞게 추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어떤 이는 책을 읽고 쓰며 탐구하는 것이 기질적인 본성상 가장 기쁘며, 어떤 이는 연극으로 표현하고, 또 어떤 이는 학술적으로 탐구하며, 또 어떤 이는 책을 읽고 친구들과 재밌게 수다를 떨며 기뻐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탐구하는 것이 나의 본성상 가장 기쁠까? 

나는 랩으로 탐구할 때 본성상 기쁨을 느끼는 것 같다. 랩으로 고전 속에 우주의 이치를 담은 문장들을 반복적으로 뱉으면 처음에는 낯설지만 몸을 사이에 두고 리듬과 문장이 섞여 삼투처럼 내 몸에 농도와 같아져 시나브로 들어온다. 삶의 탐구적 문장들, 우주적 이치에 닿아 있는 문장들을 일상적으로 뱉으며 본성적으로도 기쁨을 느끼고 또한 그러한 것들이 우정과 밥을 불러오는 그런 삶을 산다면 비록 대‘수’롭진 않더라도 이러한 삶의 방식이 적어도 ‘수’로는 결코 환원될 수 없는 ‘잘 사는 것’, ‘좋은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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