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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일요대중지성] 무지, 무사를 통해 비움을 실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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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멍뚱깽 작성일22-10-18 15:06 조회5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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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無知), 무사(無事)를 통해 비움()을 실행하라

 

얼마 전, 내가 일하고 있는 작은도서관에서 봉사자로 활동하시는 분이 방학 특강을 제안했다. 아는 강사분을 섭외했으니 <스피치 잘하기> 강좌를 하자는 것이었다. 평소 많은 도움을 주는 분이기도 해서 고마웠지만, 내키지 않았다. 도서관은 공공의 독서활동을 하는 곳인데, 웅변학원 강좌를 하는 느낌이었다. 봉사자들을 대상으로 도서관의 역할이나 독서진흥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하나 고민도 되었다. 그런데 三十輻共一穀, 當其無, 有車之用 (서른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여 있으되, 그 가운데가 비었기 때문에 수레의 쓰임이 있다. [노자타설] 11, 남회근, 부키)는 대목을 읽으며 생각이 달라졌다. 가운데가 비어있어야 바퀴는 굴러간다고 한다. 강한 원칙이나 기준으로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하기 어렵다그것을 비워야 도서관이 굴러갈 힘이 생긴다. 비워야 한다. 비움()이 실행에 관한 것이라면, 그 밑바탕의 원리는 무()의 원리라 한다. ‘는 단순히 없음‘, 혹은 하지 않음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얽매이지 않는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내가 얽매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무지(無知)-내가 가진 앎에 얽매이지 마라

예상외로, 특강은 강좌가 끝난 후 더 재미났다. 강사는 자주 오는 이용자의 가족이었고, 여성들만 있어 손대지 못했던 게시판 보수를 해주었다. 분위기가 전달됐는지 특강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도 일손을 보탰고, 오가던 이용자들도 구경하며 동네잔치 느낌도 났다. 책은 한 줄도 안 읽었지만 뭔가 배웠다. 우리는 책으로부터 배우지만, 사람으로부터 배우기도 한다. 도서관은 독서진흥에 힘써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 왔지만, 독서진흥도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임을 다시 배웠다. 그날 도서관의 가치에 대한 앎은, 조금 달라졌고 새로워졌다. 내가 가르치려 했던 바로 그 분한테 오히려 가르침을 얻었다.  지식이나 가치는 늘 변화한다. 아무리 좋은 가치라도 그것에 얽매이면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노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그것을 지나치게 주장하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己.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己(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움을 아름다운 줄 알지만 이는 추함이다. 모두가 선을 선한 줄 알지만 이는 악함이다, 같은 책 3)

 

무사(無事)-나의 일에 집착하지 마라

알고 보니 그 선생님은 초등학생 아이가 사춘기가 시작되며 도서관에 오려하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독서는 너무  진입장벽이 높았고, 다른 방안을 이리저리 모색하던 중이었던 것이다. 그런 고민을 들어보지도 않고 판단해 버린 것이 미안했다. 노자는 無事, 함이 없는 일을 하라 한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나를 드러내지 않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나를 내세우거나 남을 가르치거나 이끌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억지로 함이 없는 함을 실천하고 일함이 없는 일을 실행하고 맛없는 맛을 맛보십시오, 같은 책 63) 도서관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정하고 이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서의 일이 있다. 오는 이들을 맞이하고 강사를 서포트 하는 일, 눈에 띄지 않지만 더 필요한 일이다. 강사나 봉사자를 이끌기보다 그의 어려움에 귀 기울이는 것, 더 중요한 일이다. 드러나지 않는, 일함이 없는 일이지만, 마음을 다해야 할 일이다.


유무상생(有無相生)-있고 없음은 서로 생겨나게 한다

지난 학기에 배운 [불멸의 원자]에서는 현대물리학은 반물질의 존재를 밝혀냈다고 한다. ([불멸의 원자}, 이강영, 사이언스 북스)반물질은, 물질과 전하는 반대이지만 질량은 동일하며,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물질의 그림자 같은 것이다. 참고로 의 의미는 반대가 아니라 돌아온다는 뜻이다.(나무위키 참고) 노자의 무() 개념이 연상된다, 나 반물질이란 것은, 둘다 어떤 결정적인 부재나 죽음의 상태가 아니라 어떤 있음의 상태로 '되어감'(becoming)의 과정에 있는 잠재태아닐까. 그래서 있음과 없음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있음은 없음을 향해가고, 없음은 있음을 향해가는 순환되는 과정 중에 있다고 노자는 말한다. 有無相生, (있고 없음은 서로 생겨나게 한다. [도덕경], 2그렇다면 무지, 무사의 개념도 역시, 내 일이 없어지거나 내 원칙 혹은 앎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일, 새로운 앎를 향한 새로운 생성이 시작되는 과정 아닐까.

 

11장으로 돌아가 보자. 수레바퀴를 돌리는 것은 바퀴살 30개이며, 중심에는 주재자가 없다. 모든 존재는 절대자가 아니라, 상호 연결된 힘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것 같다. [향모를 땋으며]의 저자는 피칸 나무 사례를 들어, 나무 한 그루만으로는 열매를 만들 수 없다고 한다. 바람, 햇볕, 토양, , 기생충, , 주위 동물들이 함께 키워내는 것이다.([향모를 땋으며], 윌 키머러, 에이도스, 33페이지) 그래서 우리는 연결된 모든 존재로부터 매일 선물 세례를 받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은 받은 선물을 다시 우주에 전달하는 것이다. (159페이지) 나와 도서관도 우주 탄생부터 시작된 거대한 관계망, 앎의 관계망의 힘으로 형성되었다. 그동안 줄곧 사람들의 읽고 쓰기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나의 읽고 쓰기는 그들의 경청, 공감, 격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사실은 시작부터 그들이 이끌어준 것이다. 내가 할 일은 나를 가르치고 이끌어준 고마운 모든 이들에게 기꺼이 선물을 돌려주는 것. 비우고 또 비워서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것뿐이다. 선물의 교환 속에 없음과 있음이 끝없이 반복된다. 그러나 먼저, 비워서 없어져야() 쓸모()가 생긴다. 그리고 새로운 생성이 시작된다. 노자의 말처럼, 없음은 모든 것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 名天地之始(무는 하늘과 땅의 시작을 일컫는다. 같은 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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