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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 3학기 에세이『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거대한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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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냉이 작성일22-10-19 20:07 조회5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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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뿌리

 

 【가을이   오는  길목,   나는   강화도의    작은  예 술극장에서   고갱에   관한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에서   고갱은   내가   알던   거칠고   무책임한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이   글의   소제목은   '고갱의   유작 ‘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누구이며 리는   어디로   가는가?’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그림의   화두처럼   살인자로   몰린   재판에서   드미트리도   우 리에게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1. 그는 어디에서 왔는가

  내가 처음부터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큰아들 드미트리에게 호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어느 누가 뒷골목 여자와 사랑에 빠져 아버지와 삼각관계가 되어버린 어처구니없는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드미트리에게 호감을 느낄 수 있겠는가? 누가 건실하게 노동이라는 걸 해보지도 않고 아버지가 못다 준 유산만을 노리며 어쩌다 생긴 돈도 흥청망청 써대는 방탕하고 무절제한 인간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겠는가? 둘째 아들 이반은 빛나는 교양과 지적인 면이 뛰어나서 멋있었고, 셋째 아들 알렉세이는 선량하고 마음이 따뜻해서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나는 평소 아버지를 죽여버리겠다고 떠들고 다니면서 뒷골목 여자인 그루센카에 빠진 본능적인 인간의 어리석음을 이해하고 싶은 건지, 도대체 왜 나는 사랑의 도피 행각을 위해 약혼자 카테리나의 돈을 꼬불쳐 둔 지지리도 못나고 충동적인 미첸카를 보면서 웃음이 나오는 건지, 도대체 왜 나는 살인 누명을 뒤집어쓰고도 버벅거리며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고 마침내 애기꿈을 꾸고 개과천선한 듯한 미치카를 보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건지, 왜 나는 비열한 놈일망정 도둑놈은 아니라며 남은 돈 천오백 불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미챠의 수치심에 고개를 끄덕이는 건지, 도대체 왜 나는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드미트리에게서 인간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보는 건지 궁금했다. 드미트리 그는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우선 드미트리의 어린 시절부터 보자. 아버지 표도르는 첫째 부인이 죽고 나자 아들 미챠의 존재를 완전히 잊었다. 4살 때 내쫓김을 당한 미챠는 충직한 하인 그리고리가 거두었고 1년 동안 그의 오두막에서 살았다. 그 후 어머니의 사촌오빠 미우소프가 후견인으로 정해졌으나 그가 직접 양육한 적은 없었고 모스크바의 한 귀부인이 맡는 등 여러 번 양육자가 변경되었다. 나는 미챠의 어린 시절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어린 시절 앞에서 우리는 죄인이다.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양육자가 여러 번 바뀐 어린아이의 영혼은 어떨까? 외롭고 외롭고 또 외롭다. 그와 이반은 알렉세이와 달리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미챠는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어머니의 사랑을 채워 줄 누군가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두 한 푼트가 있었지. 부모에게 버림 받아 신발도 못 얻어 신은 미챠를 보며 마을 의사가 준 호두 한 푼트 말이다. 드미트리가 살인자로 몰린 법정에서 마을 의사 게르첸슈투베 박사는 드미트리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던진다. 미챠는 호두 한 푼트에 감동하는, 은혜를 아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아이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가 비록 젊은 날 격정이나 울분에 사로잡혀 방황하였더라도 호두 한 푼트는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가슴 속에 깊게 뿌리를 내린 것이다.

    “지금 막 도착하는 길로 호두 한 푼트에 대해 감사드리러 왔습니다. 그때 아무도 저한테 호두 한 푼트를 사준 적이 없었는데, 어르신 한 분만이 제게 호두 한 푼트를 사주셨으니까요” (중략) ‘자네는 은혜를 아는 젊은이구먼, 자네가 어렸을 때 내가 가져다준 그 호두 한 푼트를 평생 기억하다니그러면서 그를 껴안고 축복해주었지요. 그러고서 나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웃었지만 역시 울고 있었습니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3, 문학동네, 327~328)

 2. 그는 누구인가

  1994년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역대급 더위가 있었다. 그 후로 가정용 에어컨이 보급되기 시작되었고 우리 집도 첫아이가 태어난 때인지라 에어컨을 설치했다. 그때 우리는 아파트 1층에 살고 있어서 에어컨 실외기를 베란다 바깥 잔디밭에 설치할 수 있었다. 뜨겁던 여름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실외기 바깥에서 일을 하던 철공소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고스란히 실외기의 온기를 받으면서 쇠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그 순간 미안하고 미안했다. 에어컨이 나도 모르는 사이 천사와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에어컨을 끄지 못했다. 그 후로도 쭉 말이다.

  우리는 모두 그들에게 죄인이야! 왜 나는 그때 그런 순간에 애기꿈을 꾸었을까? ‘어째서 애기는 가난한 거지? 그건 그 순간 나에게 주어진 예언이었어! 나는 애기를 위해 가겠어.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에 대해 죄인이니까. (중략) 결국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가야 하지 않겠니.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야 돼. 받아들이겠어. 이 모든 생각을 여기서 하게 된 거야.” (같은 책 3, 162~163)

    누구나 가끔 인생이 장엄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우리는 우주에 떠돌던 진리와 마주친다. 삶이 처절할수록, 간절할수록 장엄의 크기는 더 커진다. 드미트리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으나 죽였다. 놋쇠 공이로 아버지의 머리를 내리치지는 않았으나 아버지를 죽일 만한 증거가 차고도 넘쳤다. 살인자라는 억울한 누명을 쓴 고난의 순간에 어린 시절 호두 한 푼트는 장엄하게 드미트리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애기을 위해 억울함을 받아들인다. 호두 한 푼트는 대지와 같다. 생명을 잉태한 한 알의 밀알이다. 그 밀알을 간직한 드미트리는 인간적이고 희망적이다. 사실 나는 보왕삼매론억울함을 밝히지 마라는 부분이 제일 이해하기 어려웠 다.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니! 하지만 소설 속 드미트리가 말하고 있지 않은가? 만인을 위해 가겠다고, 억울함을 품고 애기를 위해 시베리아로 가겠다고 말이다. ‘애기즉 가엾은 생명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며 속죄를 하겠다는 것이다.

  호색적인 쾌락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았던 아버지표도르를 직접 살해한 이는 스메르자꼬프다. 그렇지만 아들들도 아버지의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드미트리는 말로 떠들고 다니며 아버지를 죽였고 둘째 이반은 신을 부정하며 아버지를 마음으로 죽였다. 두 형제는 말과 마음으로 아버지를 죽였다. 우리도 그렇다. 인생을 대부분을 말과 마음을 가지고 타자를 죽이고 타자에게 죽임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모두 드미트리다. 그렇지만 우리는 고통의 순간에 삶의 거대한 뿌리를 만난다. 타인을 말과 마음으로 죽였던 우리에게 속죄할 장엄한 순간이 온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인생의 고통은 얼마나 반가운 것인가. 우리는 그 고통을 기쁘게 받아들여 삶의 진실을 받아들이고 그 진실의 뿌리를 내리려 한다. 인류의 오래된 대답인 사랑으로 말이다.

   저열함의 심연에서 진정코 / 영혼으로 일어서려면, 인간이여

   태고의 어머니 대지와 / 영원히 결합할지니 (같은 책 1, 218, 쉴러)

   그깟 호두 한 푼트에 감동할 수 있는 것, 아니 소중한 호두 한 푼트에 목이 메일 수 있는 이가 바로 드미트리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호두 한 푼트에 감동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호두 한 푼트는 진실을 말한다. 진실을 볼 줄 아는 영혼을 말한다. 그는 약혼녀 카체리나를 사랑하지 않고 뒷길에서 만난 그루센카를 사랑했다. 그래서 자신이 비열하다고 느꼈으며 동생 알료사에게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 드미트리는 약혼녀 카체리나가그가 아닌 그녀 자신의 미덕을 사랑한다는 것을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고, 그녀는 억지로 자신의 인생과 운명을 희생하고 싶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 여잔 정말로 그루센카한테 반했던 거야. 다시 말해 그루센카가 아니라 자신의 꿈에, 자신의 미망에 반한 거지 왜냐하면 그건 나 자신의 꿈이고 나 자신의 미망이었으니까” (같은 책 1, 316)

  진정 자신의 꿈과 미망을 사랑한 것이 비난받을 일일까?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나 미덕 때문에 억지로 운명을 받아들이는 불쌍한 여자를 내치는 것은 죄악일까? 드미트리는 미덕의 차원에서는 비열했지만 진실의 면에서는 자유롭고 관대했다. 약혼자와 결혼으로 얻는 유산을 포기했고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며 그녀를 지옥에서 구했다. 그리고 참된 사랑을 깨닫고 자신을 이해하고 함께 울어 주는, 자신의 얼굴을 사랑하는 그루센카를 얻는다.

   “길을 잘못 든 인간에게 종말이 온 것입니다. (중략) 저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방탕하긴 했지만, 그래도 저는 선을 사랑했습니다. 매 순간 자신을 고치려고 애쓰면서도, 야수처럼 살아왔습니다.”(같은 책 3, 478)

  드미트리는 시베리아로 갔어야 했다. 철저히 버려져서 상처를 입고 고난을 당해 깊어지는 시름 속에서 다시 태어났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예수가 아니고 인간이다. 그는 사랑하는 그루센카가 있고 그녀와 약속한 미래도 있었다. 그는 또 다른 죄를 짓지 않기 위해 감옥을 탈출해야만 했고 그로 인해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했다. 나도 그랬다. 뜨거운 에어콘 바람을 견디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몹시 미안했지만 나는 에어컨을 끄지 못했다. 드미트리와 나는 장엄한 순간에 인류의 오래된 대답인 사랑을 깨달았지만 감히 예수가 되지 못하고 여전히 평범한 인간으로 산다. 그렇다면 그 깨달음은 헛된 것인가?

  어쩌면 드미트리도 우리도 죄인이기에 아름답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생각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그것은 나와 타자에 대한 깨달음,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에 대한 깨달음이다. 애기꿈을 꾼 이후 드미트리는 전과 다른 사람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의지와 희망을 갖는다. 그리고 나도 일상에서 이웃과 더불어 에어컨 사용을 줄이며 살 것이다. 앞으로 드미트리와 나는 수많은 고난과 부딪히면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까?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으며 또한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 것일까?

 3.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추석 명절 중 가족들이 외출한 사이 강아지가 거실에 놓여 있던 초코과자를 많이 먹어버렸다. 강아지가 초콜릿을 많이 먹으면 쇼크사로 죽을 수 있다면서 딸은 강아지를 안고 동물병원 응급실로 뛰어갔다. 사실 나는 응급에 휴일이면 병원비가 꽤 나올 것이고 초콜릿이 아니라 초코과자는 괜찮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던지라 말리고 싶었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병원을 나오면서 나는 딸에게 엄마가 아프다고 하면 들은 척도 안 하면서 강아지가 아프다고 하니 세상이 무너지냐고 짜증을 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니 나는 이기주의자였다. 딸에게는 나보다 강아지가 더 약한 존재였다. 물론 엄마도 도와주고 강아지도 챙긴다면 좋겠지만, 우선 순위는 강아지가 맞다. 강아지는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약한 존재이며 나는 아직은 괜찮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라는 기막힌 굴레에서 그가 꾼 애기꿈으로 말이다.

 말해보게. 화재를 당한 어머니들이 왜 저렇게 서 있나, 왜 사람들은 가난한 거야, 왜 저들은 서로 얼 싸안지 않고 입맞추지 않는 거야, 왜 기쁨의 노래를 부르지 않는 거야, 왜 저들은 시커먼 재난 때문에 저렇게 시커매진 거야, 왜 애기한테 젖을 먹이지 않는 거야?”(중략) 그 모든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다. 애기가 더 이상 울지 않도록, 시커멓게 말라버린 애기 엄마가 울지 않도록, 이 순간부터 그 누구 도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같은 책 2, 455)

   그가 꾼 애기꿈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약자를 위한 사랑을 행하라는 자비를 뜻한다. 가난한 사람들, 기쁨의 노래를 부르지 않는 사람들, 젖이 말라 아기에게 젖을 먹이지 못하는 어머니의 아픈 가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자비를 베풀라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큰 아이, 작은 아이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애기이며 서로 연결된 얽혀 있는 나무의 뿌리와 같은 존재이기에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드미트리는 감옥을 탈출하여 낯선 땅에서 그루센카와 아이를 낳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녀를 사랑하며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며 입으로만 떠드는 것이 아닌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눈이 마주치며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사랑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쪽에서도 서쪽에서도 외치는 오래된 대답이며 실천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지혜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그대들 중 누가 정의의 이름으로/악한 나무에 도끼질을 하려 한다면

  그 나무의 뿌리를 살펴보게 하십시오/그러면 분명 선한 것과 악한 것,

  열매 맺는 나무와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의 뿌리가

  침묵하는 대지의 가슴 속에서

  함께 뒤엉켜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칼릴지브란, 예언자, 물병자리, 135)

   권선징악.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선을 찾고 악을 징벌하려 했다. 드미트리의 지지리도 못난 행동을 비난하며 나는 그보다는 낫다고 위안도 얻었다. 그렇지만 세상은 자기를 패륜아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무죄를 믿는 사람들이 있고 진실로 사랑하는 연인을 가진 드미트리는 결코 못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앞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고, 아버지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나도 그렇다. 이제까지 나의 삶은 내가 바라는 대로 되지는 못했으나 사랑을 품고 여기까지 왔다고 본다. 에어컨 실외기 앞에서 일하던 노동자에 대한 연민도, 강아지 사랑이 심한 딸에게 느끼는 서운함도 결국 나와 타인을 사랑하며 살아온 온 모습들인 것이다.

   나는 권선징악적 사고에서 해방되어 삶을 확장 시키는 지름길은 흑백논리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본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생각은 드미트리를 이해할 수 없게 한다. 그의 갱생을 믿을 수 없고 나아가 인간의 존엄함도 사라지게 한다. 그리고 자비를 행할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양지와 음지가 얽혀 있기에 그 뿌리는 하나다. 이 뿌리는 나에게 세상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살라고 한다. 두 개의 심연 이 느낌이 없다면 우리는 불행하고 만족을 얻지 못하며, 우리의 존재는 충족되지 못할 것이다.(같은 책 3, 377)그러나 우리가 이 거대한 뿌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부활하여, 틀림없이 서로 보게 될 것이고 (같은 책 3, 524)대지와 같은 너그러움과 생명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부단한 노력은 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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