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 [기고] 엄마는 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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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6-07-30 00:33 조회51회 댓글0건본문
[창이지 장현숙]
엄마는 처음이라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일이다. 열 달 동안 배 속에 있다가 처음 만난 아기가 너무 낯설었다.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 같은 아기. 급기야 친정엄마에게 물었다. “모성애는 언제 생겨?” 엄마는 크게 웃으셨다. 그러면서 아이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프게 여겨질 날이 금방 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모든 게 변했다. 내 몸은 더 이상 나만의 몸이 아니었다. 여성의 매력을 상징하던 가슴은 아기 젖이 나오는 곳이 되었고, 가늘고 예쁜 팔뚝은 아기를 안아 올리기 좋게 근육이 생겨야 했다. 시간조차 내 것이 아니었다. 모든 시간이 아기 위주로 흘러갔다. 심지어 잠도 내 마음대로 잘 수 없었다. 밤잠을 설치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밤을 새우기 부지기수였다. 아이가 처음 세상에 나올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친정엄마였다. ‘날 이렇게 아프게 낳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기르면서 또 친정엄마가 생각났다. 누군가를 기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여자가 아닌, 자신도 아닌, 엄마가 된 나. 그렇게 나는 처음 엄마가 되었다.
주역의 64괘에도 이런 ‘엄마’의 모습을 닮은 괘가 있다. 바로 중지곤이다. 중지곤(重地坤)은 땅이 중첩되어 있다는 뜻이다. 주역에서 땅(地)은 유순함을 상징한다. 그러니 중지곤은 유순하고 또 유순하다는 것이다. 유순하다는 건 무슨 뜻일까? 별 저항 없이 남의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곤괘에서 말하는 유순함은 그저 순종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며 자신의 할 바를 묵묵히 한다는 것이다. 앞서 나가지도 않고, 자랑하지도 않고, 묵묵히 해야 할 바를 해나가는 것. 이 후덕한 유순함을 만나면 세상 만물은 신기하게도 자기 모습대로 자신을 성장시킨다. 대상전에서는 땅의 이런 모습을 후덕재물(厚德載物)이라고 했다. 땅의 덕이 두터워 만물을 품어 기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땅의 후덕함처럼 나도 엄마의 후덕함으로 아이를 길렀다면 좋았을 텐데, 처음부터 그렇게 잘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첫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무언가를 길러본 적이 없지 않은가. 동생을 살뜰히 챙겨본 적도, 반려동물을 길러본 적도, 하물며 화분 하나도 키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기라니.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없어져 버리는 느낌이었다. 세상의 주인공은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를 돌보고 기르는 자로서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그 어색하고도 낯선 몇 주가 지나서 일어났다. 여전히 몸도 시간도 잠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공간조차 야금야금 아기 위주로 변하고 있었지만, 어느 사이 그 모든 일에 기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금방 모성애가 생길 거라는 친정엄마 말이 난감했었는데 그 금방이 언제인지도 모르게 왔었나 보다. 핏덩이 같던 아이는 옹알이하고, 뒤집기를 하며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나’를 잃은 자리에 작은 생명이 충만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그 기쁨. 이 마음이 땅의 후덕함일까? 자신보다도 생명을 길러내는 데 모든 기쁨이 있는 땅. 그 후덕함으로 만물을 품을 수 있는 땅. 그 후 나는 아이를 하나 더 낳았다. 두 번째는 처음보다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친정엄마가 날 길러주셨듯 나도 묵묵히 우리 아이들을 길러냈다. 어쩌면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다는 건 이렇게 초고속으로 땅의 후덕함을 배우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그 후덕함을 알게 해준 ‘엄마’라는 존재, 고맙습니다.
/장현숙(인문고전공간 창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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