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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살라 유학기] 티벳의 독립을 기원하며; 롭가 랑쩬 활동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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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6-08-31 14:45 조회10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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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의 독립을 기원하며; 롭가 랑쩬 활동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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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윤 하

 

 

올해 7월로 다람살라에 온 지 만 2년이 되었다. 캐리어 두 개를 들고 친구들과 함께 다람살라에 발을 딛었을 때가 이제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유학생이라는 신분은 내가 왜 이곳에 와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이름표가 되어주었고, 그에 걸맞게 티벳어를 열심히 배웠다. 작년 7월 사라학교에 입학한 이후로는 정말 학교의 학생이 되었는데, 몇 달이 지나자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학업을 열심히 하는 학생이라는 것으로는 무언가 충분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학교 수업의 진도가 내 욕심만큼 빠르지 않아 덜 배우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사라학교라는 작은 공동체에 내 자리가 없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이 느낌은 급작스럽게 바빠진 일정 때문에 뒤로 밀려났고, 새 학기가 시작된 지금 다시 나의 머리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번 7월부터 사라학교에서 새로운 공부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지난 한 해 동안은 ‘불교 과학과 철학’이라는 외국 학생들을 위한 불교 개론 수업을 들었다면, 올해는 오명학(五明學) 중 ‘내명(內明)’이라고 불리는 과목, 즉 불학(佛學)을 겔룩파(티벳불교의 주요 4대 종파 중 하나) 방식으로 배우기 시작했다(오명학 중 다른 네 가지는 공예학, 의학, 언어학, 논리학이다). 지난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새롭다.

우리 반 학생은 25명, 이 중에 세 군데 정도의 사원에서 온 10대 초중반의 스님들이 9명, 작년에 같은 반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이 10명, 사라에서 어학과정을 마치고 들어온 친구들이 6명이다. 이제 이 과정에는 정말 ‘티벳’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없다. 10대 스님들은 과거 티벳의 문화권 아래에 있었다고 여겨지는 인도 북부 출신들이시다. 거기에 더해 학생들 중 일반인이 출가자만큼 많아진 실정이라 최고의 사원 지성을 길러낸다는 이 과정의 명성은 많이 퇴색되었다. 오직 우리를 가르치는 담임선생님이신 스님만이 티벳인이시고, 이 공부의 무게를 체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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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의 수업 현장

 

지난 7월 2일, 뉴욕의 유엔본부 앞에서 티벳 활동가 롭가 랑쩬이 티베트 국기를 들고 분신하셨다. 중국이 26년 3월 의결한 ‘민족단결진보촉진법’(이하 민족단결법)이 시행된 다음날이었다. 롭가 랑쩬 활동가는 중국 점령 하의 티벳 캄 지역에서 태어났고 인도로 망명, 이후 미국으로 이주하여서도 티벳 독립운동에 헌신하셨다. 망명 티벳인들의 단결과 공동체 지속을 도모하고, 티벳의 인권과 주권 문제를 국제사회에 가시화하기 위한 활동들이었다. 티벳 독립 운동에 집중하기 위해 유동적으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우버 기사로 일하면서도 더욱 많은 시간을 그에 할애할 수 없음에 늘 애탔다고 하신다. 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세계나 본토의 티벳인이 아니라 망명 티벳인들에게 향해 있었다. 자신이 괴롭거나 배고프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티벳과 티벳인을 위한 운동이기에, 자신의 죽음에 슬퍼하지 말고 계속해서 티벳의 독립과 자유를 위한 투쟁에 힘써달라는 것이었다.

중국의 티벳 점령 이후 분신한 티벳인이 170명이 되어간다. 나는 그날 다람살라에서 롭가 랑쩬 활동가의 분신 소식을 매체가 아니라 사람을 통해 듣게 되었다. ‘뉴스’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전해지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것은 더욱 나와 밀접한 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어째서 이것을 내가 클릭하고 터치해서 열고 닫을 수 있는 뉴스기사에서가 아니라 이렇게 사람에게 들어버리게 된 것일까 하고. 중국이 자국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시행할 것을 공포한  민족단결법은 중국 영토 내 소수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서서히 말살해버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영토 밖의 민족 운동도 위축시킬 수 있었다. 다람살라 망명 정부 역시 그 법에 의하면 처벌 대상이 된다. 거기에 “자금을 조달”하는 이들도 법적 대상이 될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공적 발화자인 해외 연구자와 언론인들도 예외가 아니니, 중국의 한민족 세탁이 더 세심하고 집요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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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2일 뉴욕 유엔 본부 앞에서 분신한 활동가 롭가 랑쩬(Lobga Rangzen)을 추모하는 꽃. 출처 https://tibet.net

 

롭가 랑쩬 활동가는 그날 병원으로 이송된 후 돌아가셨다. 같은 날 사라학교는 개강 첫 주의 돌마 기도를 마무리하는 날이었다. 예정되어 있던 마지막 저녁 회향 기도에 공양물과 함께 그의 사진이 앞에 놓였다. 마지막 날이라 전교생뿐 아니라 선생님들도 모두 기도에 참석하셨는데, 역시 티벳에서 인도로 망명하신 그 스님들의 묵직한 표정과 고개를 돌려 사진을 한 번씩 쳐다보는 시선에서, 내가 절대 가늠할 수 없을 그 심경을 전해받는 것 같았다. 기도가 끝나고 우리는 학생회에서 준비한 촛불을 들고, 학교의 작은 법당을 돌며 평상시에도 밥 먹듯 읊는 보리심 회향 기도를 함께 외쳤다. ‘보배로운 보리심, 일어나지 않았다면 일어나기를, 일어난 것은 약해지지 않고, 더욱더 증장하기를.’ 왜 애도의 기도로 이 기도가 선택되었는지는 나는 모르겠다. 법당을 도는 나의 심경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 기도가, 그가 우리 마음에 일으킨 파동이 있다면 그것이 보리심으로 전환되기를 기원하는 기도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보리심을 낼 수 있을까. 그가 스스로를 불에 태운 것과 같은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그 기도를 정직하게 읊기가 어려웠다.

이후 티벳 망명인들의 정착지들에서 롭가 랑쩬 활동가의 마지막 메시지에 응답하는 듯한 시위가 이어졌다. 얼마 전은 그의 49일 추모제 날이었다. 세계 곳곳의 티벳 망명 공동체가 각자의 자리에서 모여 추모식을 열었다. 다람살라 공동체는 메인 템플에서 기도회를 열었다. 한 시간 반 가량의 기도가 이어지고 다람살라의 도로를 따라 평화행진이 있었다. 티벳에서의 제노사이드를 멈추라. 티벳의 주인은 티벳인. 롭가 랑쩬을 위한 정의를.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 등이 구호였다. 사라 내의 티벳 학생회 친구들은 피켓을 만들고 행진 트럭 한 대를 담당했다. 그날 친구는 SNS에 사진을 올리며 자신이 티벳인이라서 자랑스럽다고 썼다. 그 말이 친하게 지냈던 티벳계 미국인 친구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미국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티벳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자기는 오직 티벳인이라며 어렸을 적에 어머니에게 배우지 못한 티벳어를 배우러 다람살라에 왔다. 그는 외가 가족들을 비롯한 티벳 사회에 연결감을 느꼈으며 어쨌든 국적은 미국인이지만 자기는 미국인이 아니라며 국제 사회 이야기가 나오면 늘 미국이 망하기를 기원했다(우리가 만났을 즈음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납치하고 이란과 전쟁을 벌였다). 티벳인은 주권을 빼앗겼지만 자신이 티벳인인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 말이 말 그대로 이해가 된다.

이번 일로 인해 네타냐후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이후 미국에서 분신한 사람이 세 명이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제노사이드를 규탄하며 이스라엘의 대사관이나 영사관 앞에서 분신했다. 이에 이스라엘 대사관측은 이스라엘을 향한 증오와 선동이라고 발언했다. 하지만 증오는 절대 자기를 이런 식으로 희생하게 하지 않는다. 나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하며 분신한 학생들과 전태일 열사를 떠올리게 되었다. 분신은 종교탄압의 시대에는 순교의 방법이었고, 이제는 강력한 정치적 저항의 의미를 가진다. 증오는 상대를 해치지만 분신은 탄압에 대한 강력한 공적 저항, 정상적 대화가 불가능한 압도적인 상대(중국 등의 국가권력)를 향한 최후의 발화이다. 또한 스스로를 희생한 사람의 주변 사람들이 그 죽음에 대한 강력한 응답의 책임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니 그것은 증오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와 자기 사람들에 대한 자해의 형태를 띤다. 오직 미래에 도래할 더 많은 이들을 향한 사랑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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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에서 작게 진행된 롭가 랑쩬 활동가 추모식 

 

며칠 전 우리 반을 전담해 가르쳐주시는 N스님이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중국의 민족단결법으로 티벳에서 태어나는 앞으로의 세대는 티벳어를 점점 잃어버리게 될 것이고, 해외에서 태어나는 세대는 (지금도 그렇듯이) 영어를 쓰며 서구문화 속에서 자랄 것(인도를 제외한 티벳 망명 정착지는 주로 미국과 유럽에 있다)이며, 인도 망명 티벳인들의 거취와 입지는 14대 달라이라마 존자님이 부재하실 경우 매우 불명확하다. 달라이라마 존자님께서 자신의 네 가지 책무(Four Principal Commitments)라고 말씀하신 것 중 네 번째가 고대 인도의 지혜를 회복시키시는 것인데, 즉 인도 사람들 특히 인도의 북부 히말라야 사람들에게 티벳사람들이 인도로부터 전해 받아 지금까지 소중히 지켜온 법을 전하도록 하시겠다는 것이다. 지금 다람살라의 사원 뿐 아니라 남인도의 큰 사원들에도 티벳인이 거의 없고 히말라야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더 이상 티벳에서 넘어올 수 있는 티벳인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자리에 있는 너희 히말라야 사람들(우리 반의 아홉 명의 십대 스님들)이 앞으로 이 법을 지키고 이어나가야 할 사람들이다.

이전에 이 코스를 채우던 이들은 전부 티벳의 출가인들이었다. N스님 역시 같은 코스를 밟으셨다. ‘티벳 사람들이 더 이상 부처님의 법을 지킬 수 없다면, 앞으로는 히말라야 사람들이 지키면 된다. 그러니까 얘들아, 공부를 제발 열심히 해주렴.’ 이런 말씀을 하시는 선생님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 시대에 진정한 수행자를 얼마나 길러낼 수 있을까. 티벳 사람들이 그 온 삶으로 지금까지 지켜내 온 가르침을 또 누가 살아낼 수 있을까. 커다란 과도기 앞에 사람들은 두려움과 희망을 동시에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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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람살라의 메인템플에서 열린 49일 추모 기도회에 참석한 티벳 사람들. 사원 안에서 행진을 기다리며 한 티벳인이 외친 ‘뵈걜로!(티벳에 승리를!)’에 사람들이 함께 ‘뵈걜로!’를 외칠 때 정말 슬픈 마음이었다.

 

 

나는 유학생이다. 그런데 그 말로 나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한국의 친구에게 ‘인도에서 유학한다’ 라고 말했을 때 그들이 떠올릴 그 무엇도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말을 붙이기에는 내가 부족하다.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더 이상 어린 시절의 나처럼 나의  영달을 꿈꾸던 시기는 지나버렸다. 그렇다고 무엇에 헌신할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무슨 결론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몇 마디 쓰다 보니 글이 이렇게 되었다. 그럴 듯한 결론을 맺어 있어 보이는 글을 전하고 싶지만, 그럴 형편이 안 된다. 그저 써야만 하는 이야기를 썼다. 신형철 작가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 실은 한 글에서 쌍용 희망버스 이야기를 쓰며 미안한 마음을 글로 덜고 싶어서가 아니라 더 미안하기 위해서 그 글을 쓴다고 했다. 나도 응답의 책임을 덜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더욱 응답의 책임을 지도록 촉구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나는 티벳 사람들이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 지킨 법을 배우는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 링크

중국이 공포한 민족단결진보촉진법 영문 전문 https://www.chinalawtranslate.com/en/ethnic-unity-and-progress-law/
Four Principal Commitments of His Holiness Dalai Lama  https://www.dalailama.com/the-dalai-lama/biography-and-daily-life/three-main-commitments

 

댓글목록

수지니님의 댓글

수지니 작성일

윤하야, 고맙다. 그분들의 마음의 울림이 너의 글을 타고 와서 지금 내 마음까지 떨리게 하네. 뉴스가 아니라 아는 사람에게 듣는 이야기는 이런 것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