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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0고전학교 시즌2) 1학기 에세이 / 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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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유화 작성일23-04-23 20:44 조회2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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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0고전학교 시즌2 씨앗문장글쓰기 /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북드라망 2023.04.26. / 서수경

 

                                                                               질병이 내게 준 선물

 

      살아 있는 한 누구나 아프다.

우주에서 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는 없다. 질병은 오히려 생명의 능동적 전략이다.

아픔을 통해서 삶의 새로운 질서가 창조된다.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고미숙 지음, 26~27

 

 인간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질병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내게 질병은 출산과 의료과실이라는 특별한 형태로 찾아 왔다. 그리고 그것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어린 시절, 그리 병약하지는 않았는데 막상 학교에 입학해 보니 다른 친구들에 비해 체력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달리기를 비롯한 체력장의 8종목이 거의 최하위급이었다. 그래서인지 진작에 운동은 나와 인연이 없다고 여겨졌고 자연히 멀리하게 되었다. 학업 외에 즐기는 취미도 독서, 음악, 영화감상, 친구와 앉아서 담소하기 등 비활동적인 것이 대부분 이었다. (이번에 사주를 공부해 보고 내 사주에 그런 비활동성 기운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생활 양식과 기질이 양생의 차원에서 볼 때 이미 불통의 싹을 틔우고 있었던 것 같다.

삼십 대 초반 출산을 하면서 병원의 과실로 뜻하지 않은 수술을 두 차례 하게 되었다. 그 이후 내 몸의 균형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위 무력증, 만성 빈혈 등에 시달리며 내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가는데도 나는 여전히 내 몸에 무심했고 그것을 개선해 보려는 어떤 시도(운동, 식이 등)도 하지 않았다. 병원에 가도 증세에 따른 일시적 처방만 내려지니 그것을 당연시하며 그때까지의 습관대로 계속 살아갔다.

오십 대 중반, 내 몸은 또 한 차례의 반란을 일으켰다. 이어지는 두 번의 수술 후 내 몸은 일상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피폐해졌다. 혈액 순환 장애로 앉아 있는 것이 힘들어지면서 가벼운 여행은 물론이고 그동안 내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일들을 지속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점차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어갔다. 병원을 가도 수술과는 무관하다는 입장만 표명할 뿐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는 말밖에는 들을 수가 없었다. 아무런 해결책도 찾지 못한 채 무력감과 우울감에 젖어 지내던 어느 초가을 날 아침,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불현듯 내 안의 무언가가 산으로 가라고 내게 말을 했다. 그리고 어느새 내 발걸음은 저절로 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업식을 바꾸려는 대 결정심’ (하기로 했으면 무조건 한다는 마음 )은 생존의 본능과 직면할 때 생겨난다고 한다. 막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내 무의식은 이미 답을 찾았는데, 다만 내 오랜 습관과 게으름이 그것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산행은 그 뒤부터 매일 계속되었다. 어느덧 산행은 나의 일과의 중심이 되었고 내 생활은 그것을 중심으로 모두 재편되었다. 더우나 추우나 궂은 날에도 살기 위해 산을 오르내렸다. 이제 내게 산행은 하루를 온전하게 보내기 위한 통과의례가 되었다. 매일 산을 오르내리며 나의 지난 삶을 성찰해 볼 수 있었다. 모든 결과엔 원인이 있는 법이다. 나의 가장 큰 패착은 내 몸이 계속 보내는 신호들을 무시하고, 내 몸의 주인이 나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오로지 병원에만 맡긴 나의 무지와 무심함이었다. 이런 뒤늦은 자각을 통해 이제는 내가 내 몸의 주인이 되어 탐구하고 공부해 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되었다. 그렇게 십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이젠 나름의 양생법도 어느 정도 터득하였다. 관심을 가지는 만큼 몸도 응답해 주는 듯 조금씩 건강도 회복 되어갔고, 그에 따라 마음의 변화도 느낄 수 있었다. 건강이 무너지면서 부정적으로만 보이던 모든 것들을 다시 긍정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몸과 마음은 따로가 아니고 하나였다.

인간은 누구나 태과불급의 팔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래서 팔자는 원초적으로 평등하다고 한다. 따라서 누구나 감당해야 할 자기 몫의 무게가 있다. 다만 형태와 시차가 다르고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각자의 운명이 달라질 뿐이다. 나의 십자가는 일찍이 질병이라는 형태로 내게 다가왔고, 나는 그것을 통해 지난 삶을 돌아보고 성찰해서, 재편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질병이 내게 준 크나큰 선물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혈액 순환 장애, 발가락 관절염, 골다공증, 고지혈증 등 불편한 지병들이 있고, 아마도 나이 들면서 조금씩 더해 갈 것이다. 내 삶이 지속되는 한 그것들은 때론 나를 불편하게 하고, 위협하고, 흔들어 깨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지금, 여기 깨어 있으라는 내 생명의 능동적 전략임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이제 나의 인생도 어느덧 수렴의 때로 접어들었다. 지난 삶을 통해 얻은 교훈과 앞으로의 공부를 통해 더욱 비우고 비워, 정수만을 남겨서 가벼운 무게로 남은 삶의 여정을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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