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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0 고전학교 시즌3]1학기2주차 후기/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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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수레바퀴 작성일23-08-31 13:31 조회1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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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학기 2주차 수업이 있는 날, 충무로역에서 내려 감이당으로 가는 언덕길을 오르며 생각했다. 학창시절에도 공부라는 걸 즐겁게 해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늘 수업진도를 따라가기 바빴고 과제에 부담을 느꼈다. 그렇다고 소심한 성격에 아주 놓아버리지도 못했다. 학교라는 제도권에서의 공부는 적성에도 맞지 않고 힘들었지만 남들도 다 하니까 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 이었다. 이런 내가 가방에 책을 세권이나 짊어지고 공부를 하겠다고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 이것은 무슨 끌림일까? 왜 스스로 공부지옥을 찾아든 것일까? 나는 욕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세간적인 욕망은 늘 비슷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돈은 항상 제일의 화두였다. 남들보다 더 좋은 것을 먹고 입고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이 지상목표였다. 나도 물론 뭇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어느 샌가 그렇게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게 다일까? 어느 날, 그런 의문이 섬광처럼 다가왔다.

용기를 내어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폴 발레리의 말도 생각났다. 이대로 안이하게 욕망에 중독되어 살다가 노화와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프로세스를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 그 의문이 지금 책가방을 메고 감이당 언덕을 오르게 했다. 그 의문을 해소하고 싶은 것이 나의 큰 욕심이 되었다.

 

낭송 동의보감 내경편을 낭송하며 수업이 시작되었다. 중학교 국어시간을 끝으로 소리 내어 책을 읽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소리 내어 책을 읽으니 신선한 재미가 느껴졌다. 다 같이 읽으니 속도와 리듬을 조율해야 삐걱거림 없이 좋은 낭송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아직은 이 정도이지만 앞으로 낭송을 계속 하게 되면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될 것 같아 기대가 된다.

2교시는 복희선생님의 동의보감 강의였다. 병이 명칭을 부여받게 되면 의학의 권위에 대한 엄중함 때문에 보다는 에 치중하게 된다고 하셨는데 체험을 바탕으로 하신 말씀이라 더 와 닿았다. 몸과 우주의 대칭성에 대한 손진인의 주석은 우리의 신체가 우주와 같은 질료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존재의 매트릭스인 정기신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웠는데, 정은 생명의 기초를 이루는 물질적 토대이고 기는 이 질료를 끌고 다니는 에너지이며 신은 정기의 흐름에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E=mc2 이라는 일반상대성이론에서 빛의 상수c2은 그 크기가 어마어마한 것이어서 물질에 갇혀있는 에너지의 양은 실로 엄청나다고 한다. 우리 몸에도 대형 수소폭탄 30개가 터질 때의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3교시는 이반 일리치 강의로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이반 일리치의 사상이 담긴 세 권의 저서 성장을 멈추어라,학교 없는 사회,병원이 병을 만든다를 기반으로 이희경 선생님이 강의하신 내용을 담은 책이었다. 공생적 도구와 조작적 도구, 버내큘러와 커먼, 의원병 등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개념들이 제시되었다. 소위 전문가들이 고안해낸 제도와 권력에 휘둘리면서도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삶에서 벗어나 내 삶을 내가 도탑게 하고 돌보고 조율하며 도구들을 적절히 이용하며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직은 마음이 가볍지 않다, 좋은 스승과 도반들이 있는 배움의 장이 펼쳐졌는데도 말이다. 생각한 만큼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버벅대는 내 자신의 한계를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이제 숨지 않기로 했다. 흔들리며 비틀거리면서도 사람들 속에서 배우고 실천하고 나를 단련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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