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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B조 <나비와 전사 - 2차시>안은숙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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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화노인 작성일13-06-11 23:11 조회2,64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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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B조 <나비와 전사 - 2차시>
- 조별 토론 및 씨앗문장 암송
마음 한 조각이 바뀔 때 우주가 바뀐다.
재앙도 대단한 행운도 이런 차이가 가다보면 천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천리도 사실 그런 호리(작은 차이, 가을 터럭, 미세한)에 있다. 거대한 것이 만드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실제로 인과가 안 된다.
거대한 무엇이 잦아들면 극소의 것으로 바뀌어 있다가 차이가 되었다 다시 거대하게 다가온다.
다음에 읽을 <마음> <카프카의 단편집>은 한 단락이상 암송해야 한다.
무오, 기미 두 달을 버텨야 한다.
(전력난) 부가 공공 서비스가 되고 나서 이젠 정말 허세구나!- 신체적으로 무력해 지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할 것인가? 20세기 병리학이 주는 풀리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전체의 양을 너무 크게 쓰기 때문에 약간만 실수해도 크게 다가온다.
의역학적으로 보면 이게 자업자득이다.
<반야심경>에서 舍利子(사리자) 是諸法空相(시제법공상) 不生不滅(불생불멸) 不垢不淨(불구부정) 不增不減(부증불감): 사리자여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생긴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며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니라.
우리가 좋은 점은 역사가 해 볼 것을 다 해 본 것을 본다는 것이다.
역사의 종언을 봤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망상에 들어가지 않아서 좋다. 우리가 어떤 시대든 자기 시대가 주는 혜택이 있고 문턱이 있는 것이다.
병리학이 육체와 정신을 나누면서 ‘마음’이라는 영역이 급부상 했다.
근대 계몽주의의 한계가 디지털의 조건과 자멸해 가고 있다.
명문대냐 아니냐를 떠나서 대학은 배치를 달리해서 몸을 바꾸는 것이다. 스팩으로 관리하게 때문에 자발성이 없는 것이다. 이제는 지성에 대한 것을 자발적으로 발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늘 중독되어서 사람을 만나면 공허하고 불안해한다.
자연은 무자비하다. 배려가 없다. 자연은 흘러가는 만큼 준다. 가차 없이 떠밀려 갈 수 밖에 없다. 더 이상 ‘나는 상처 받았어!’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기도는 자연의 섭리와 맞는 것을 간구 할 때만 통하는 것이다.
계몽, 병리학의 파탄. 현장에 가면 끔찍하다.
아직까지 대학이 남아 있는 것은 계몽에 대한 미래들을 못 놓고 있는 것과 대학의 농간(숫자화하여 움직이는)들 사이에서 국가가 결탁하는 것이다. 탈학교의 새로운 비젼으로 보면 일터에서 공부하는 것은 어찌보면 더 좋은 것이다. 그러면 대학은 사멸된다.
과거를 돌아보는 건 부질없다. 다 거짓말이고 실상을 확인 할 수 없다.
크리슈나무르티의 과거로부터의 단절은 과거를 현재로 본다. 모든 것들을 같이 받아들이는 것이 없는 것이다.
양으로 재는 것은 파탄이 났다. 그런 것으로 볼 때 척도다. 몸이 달라진다.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을 하지 않아도 된다. 진솔해져야 된다. 이것이 몸을 가장 배려하는 것이다.
지식과 감정 사이에 간극이 있는 것은 조폭, 동물보다 못하다. 이것을 내려놓고 자기가 공명의 창을 만드는 게 근대적 앎이다.
(글쓰기)
지성의 창출은 문장이다. 또 인간적 활동이다.
문장은 인간이 도달 할 수 있는 소인격이며 어떤 이치가 담겨 있어야 한다.
글쓰기는 지속성을 갖는다. 인간은 유한한데 유한함을 돌파한다. 구술로써 암기하는 신체적인 힘을 빠뜨린다. 언어 사용 즉 말로 기호화하면 한번 걸러 실상이 되지 않는다. - 언어를 쓰면서 언어로써 자유로워져야하는 역설.
말(언어)는 자연의 신체가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을 더 묶어 놓아야겠다는 것이 문자이다.
후대에 나를 무엇으로 평가하는가? 바로 문자이다.
구술의 원리와 문법(문장)의 원리는 전혀 다르다. 말을 잘 한다고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다.
문명의 진화는 지금 인간을 새롭게, 인간을 당황하게 하는 게 아니고 언어를 인간이 창안하면서이다.
결국 진보가 있다기보다는 어떤 조건(배치)이 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앞의 것을 전제하지 말고 지식, 지성을 어떻게 유동시킬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제는 편집, 가공(PPT등 제대로 된 것들이 나오지 않는다)의 시대다. 그러면 가공 능력을 키워야 한다. 가공능력을 키우려면 글쓰기 밖에 없다.
몸의 에너지를 재배치하는 공부를 찾아야한다.
정화스님이 주문을 외우게 하는 것은 무슨 뜻이기 모르기 때문에 그 순간을 내려 놓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뜻은 모르고 마음을 쉬는 것 그 효과가 있다.
외워야 한다(학습의 엑기스) 그래야 평소에 쓰던 분별력을 안 쓰게 된다.
무지한 스승요법은 선생이 다 알지 못해도 가르칠 수 있다. 동기 유발만 하면 된다.
어느 시대든 조건을, 과거를 갖고 재판하지 말고 그것과 내가 신체성이 어떻게 결합을 해서 바뀌어야 하겠다.
자기 존재와 연동된 글이 이 시대와 만나 움직이면서 써야 한다.
rd 다음 주 과제
- <마음> 나스메 소세키 읽고 꼭 한 단락 씨앗문장 암송하기.
- <홍루몽> 5권 열심히 읽어오기.
댓글목록

생각통님의 댓글

생각통 작성일

암송이 힘들어지는 요즘 같은 때 읽으면 좋은 내용이네요~ 저번 곰샘 강의를 못 들어 무척 기다렸던 후기였네요. ^^ 감사합니다~ (공휴일 강의;; 업자들에겐 허용이 되지 않는다는 점, 매니저분들이 알아주셨으면.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