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4.10 의역학수업후기[유마경]- ④ > 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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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10 의역학수업후기[유마경]-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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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나비 작성일14-04-14 19:08 조회2,410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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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반 2조
수업후기를 쓰기로 미리 정하고서 수업을 들었는데도, 살짝 졸았습니다손은 졸지 않아 열심히 필기한 덕분에 후기를 쓰겠다는 약속을 허술하게나마 지키게 되었습니다.^^ 
 
정화스님은 과학스님입니다.  매번 인사하시고서, 웃옷을 벗으시고서 수업 첫 마디는 유전자, 인간의 뇌, 과학계의 최근 연구 동향 등 이었습니다.
그런데 네번째 수업에서는 팔정도의 정념에 관한 설명으로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1.正念- 바른기억을 주시한다  (주시에 관하여)
  
정념은 주시입니다. 무엇을 주시하는가? 바로 자신의 몸입니다. 얼굴도 자신의 몸 이지만 얼굴을 주시하는 정념은 100%(!)실패합니다. 왜냐하면 얼굴은 자신이 볼 수 없습니다. 얼굴을 주시한다는 것은 남의 눈을 빌려 자신의 얼굴을 본다는 것이므로 상대방이 보는 내 얼굴입니다. 상대방이 평가하는 내 얼굴은 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아도 영원히 지속되는 아름다움이란 없기 때문에 결국에는 실패하는 주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늙으니까요. 늙은 얼굴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ㅠㅠ
그러므로 상대를 신경 안쓰고 자신의 얼굴을 좋아하는 사람은 일생동안 실패한 얼굴을 갖지 않으므로 100%(!)성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
그런데, 진짜 주시는 얼굴이 아니라 몸을 주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몸 속 장기는 우리가 볼 수 없기로는 얼굴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몸 속의 운동을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호흡입니다. 호흡은 쉬지 않고 운동하는 몸속 장기의 운동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몸은 운동합니다. 호흡은 그 운동을 나타내 줍니다. 그러므로 호흡은 곧 몸이고, 호흡을 주시하는 것은 몸을 주시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여기저기 호흡법을 가르쳐주는 곳에서 짧게 들이쉬고 길게 내쉬라든지, 두번 들이쉬고 세번 내쉬라는 등의 구체적 호흡법을 가르쳐주는데,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숨의 길이를 결정하는 것은 의식이 아니고 무의식입니다. 우리가 인위적으로 길게 또는 짧게 하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지금 자신의 숨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싫어하니까 고치려는 거지요. 고치려는 의지는 현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냥 몸을 곧게 세우고 몸이 원하는대로 호흡을 하면 몸이 저절로 보상을 받게 되고 기뻐합니다.
 => 네 얼굴을 그냥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훈련을 계속해라.
 => 호흡을 주시하되, 특정한 호흡이 되려하지 말 것. 이것은 실패한다. 몸이 원하는 대로 호흡하라
 
사실 스님께서는 '내가 좋아하는 얼굴'이라고 하셨지만, 얼굴은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으니 그 얼굴을 좋아하고 말고 할 것도 없죠. 얼굴은 잊는것. 남들이 뭐라고 하건... 남들 눈에 보이는 내 얼굴이 마음에 드는지 어쩐지 그런 것은 아예 잊어버리고 자신의 몸에 집중하고 자신의 몸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게 아닐까라고 혼자 해석해봅니다.
 
2.무엇을 기억해야 할 것인가 - 안횡비직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어떤 이가 물었습니다. 어떤 얼굴이 부처의 얼굴입니까? 어떤 얼굴이 최상의 아름다운 얼굴입니까? 답은 안횡비직. 눈은 가로로 코는 세로로 붙어 있는 얼굴이다.
어떤 이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사는 것이 최상의 삶입니까? 어떤 삶이 부처의 삶입니까? 답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오 이런! 우리 모두는 부처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내 얼굴이 바로 부처의 얼굴이오, 내 행동이 바로 부처의 행동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여 사건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야 하고, 그것을 전제로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해야 합니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정념입니다.
   전제 - 우리의 마음은 내용없는 인지능력임을 지난시간에도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은 '광고'입니다. 그것이 항상 우리의 마음에 전제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누가 시키는 대로 하는 생각과 마음은 물론 잘못된 전제이겠죠.
    벌과 보상 -우리는 감각대상에 흔들리지 않게 훈련을 해야합니다. '대상'은 내가 만든 이미지입니다. 주시에는 보상과 벌이 따르는데, 어떤 사물을 볼 때 마음이 불편하다면 벌을 받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보상을 받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나 남편을 볼 때 이렇게 저렇게 살아줬으면.. 하고 바랄때가 있는데, 그때 우리의 정신은 벌을 받는 것입니다.  전제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벌을 받는 것입니다. 이때의 전제는 무엇일까요? 바로 상대를 바꾸려는 마음입니다. 상대가 너무 부족해보이고, 못나보이는 전제로 바꾸려는 마음이 들고, 그것으로 인해 괴로움이라는 벌을 받는다는 것!
또 예를 들어볼까요? 담배를 피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봅시다. 담배가 몸에 안좋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피우는 마음은 담배를 피우는 그 순간을 위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문리스샘이 치양지강의때 예로 드신 폐암환자와 담배도 떠오릅니다^^) 담배로 위로받던 사람이 담배를 끊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위로없이 살아보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 100% 실패합니다. ^^ 왜냐하면 꾹 참으면서 '내가 지금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있어'라고 생각하니까요. 보상을 못받으니 얼마 못가 포기하게 됩니다.  담배를 끊는 방법은 담배가 위로라는 전제를 바꾸는 것입니다. '담배는 우리의 폐와 피에 독소물질을 뿜어넣는 것' 이라고 하면 될까요...? 담배를 끊고자 하는 지인들과 말해보면 다 알고 있지만, 머리로만 알지 계속 피우더라고요. 그것은 전제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려주는 것 아닐까요? 스님께서는 쉽게 말씀하시지만... 저도 아리까리 합니다. 내 마음이 아직도 괴로움인것은 전제를 바꾸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스님께서는 사회적성공의 척도-성공과 부-를 흔히 말하는 좋은 일이라고 보는 것은 담배를 통해 위로받는 것과 똑같다고 하셨습니다. 좋은 일(좋다고 하는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성취한 사람이나 성취하지 못한 사람이나 모두 스트레스 상태에 처해 있는 것. 이것은 성공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하면서 현재의 행복을 지연시키는 행위인데, 담배를 끊으려는 사람이 담배를 위로라는 전제하에 끊어도 괴롭고 못끊어도 괴로운 상태와 꼭 같은 것입니다.
 
무엇이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인가? 나를 위해 사는 것. 나를 바꾸려하지 않는 것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 정견正見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주시,몰입 하고 있으면 신체가 변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바뀐 신체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로 정업-거기에 맞는 행동을 해야합니다. 정업은 조건없는 사랑입니다. 바로 유마거사가 말한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부모조차도 자식이 아플 때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고 하면서도 "네가 내말대로 안해서 이렇게 아픈것 아니냐 !" 또는 "이렇게 다쳐서 공부를 못하게 되었으니 이를 어째!" 등등의 원망의 마음이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성인들의 조건없는 사랑은 감동의 축을 움직여서 2천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것입니다.(부처님처럼,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내용은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 정견을 바로 세워서 ->정업(거기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
     '우리에게 주어진 수많은 전제가 진정 나를 편안하고 고요하게 했던가' 라는 질문을 남기시며 수업을 끝마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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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건강하지 못한 늙은 몸, 병든 몸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해야 하나요?
답      : 배고플 때 밥 먹듯이 몸의 불편을 해소하려고 하는 것은 옳습니다. 하지만 그 몸을 미워하거나, 20대의 그것으로 바꾸려는 마음은 안됩니다.
 
질문 : 사유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답     : 사유는 '의심'에서 시작합니다. 논리의 근거 즉 내가 세운 전제를 의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몸과 마음에 대해 기본적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화와 뇌과학에 대한 공부를 해야합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전제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전습록이나 성경, 불경과 같은 책들도 쓰여진 시대를 보면 지금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이 신비롭게 여겨지던 시대이기 때문에 근거가 옳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만시간의 법칙.
전제에 대한 의심은 하고자 한다고 바로 되는 것이 아니고, 시간이 누적되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들이 있는데 이것으로 전제를 의심하는 힘이 생긴다고 합니다. ^^
 
질문 : 자기를 보라고 하는 데 잘 안보인다. 일상에서 자신을 잘 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답     : 다른 어떤 자기를 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뭔가 그럴듯한 자기를 찾는 것은 지금의 나를 부정하는 생각이 스며드는 것입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것이 바로 납니다.  "지금 나의 감정과 행위, 그것을 하는 것이 바로 나다!!" 이 행위를 보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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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쉬운것 같은데 알쏭달쏭합니다. 사실은 어렵습니다. 이것을 놓아야 저것이 잡힐텐데... 나의 전제를 놓기가 불안하여 아직도 꽉 쥐고 연연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나를 바꾸려는 마음이 잘못된 것이니 그런 나도 사랑해야 하는 건지....
아니겠지요. 잘못된 전제를 쥐고 있다는 것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남이 내게 심어준 전제들이니 그런 전제를 쥐고 있다면 진정 자유롭게 나를 긍정하지 못하겠지요.
전제에 대한 탐구... 이 화두를 머릿속에 남기며 후기를 마칩니다.
 
 
댓글목록

생각통님의 댓글

생각통 작성일

마치 샘 말하는 것처럼 명쾌한 느낌의 후기네요~ 존 거 맞아요?  ^^ 정화스님 강의가 끝났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서운하네요. 과학스님이 많이 그리울 것 같아요~ 스님 강의가 그리울 때마다 다시 찾아와 읽어야쥐~ ㅋ

필벽성옥님의 댓글

필벽성옥 작성일

허술하지 않습니다. 해남아낙네로 그 많은 일을 하시고 후기도 이렇게 엽엽하게 올려주시니 대단합니다. 너무 완벽하면 손 떨리는 법인데.... 헤^^

동춘년님의 댓글

동춘년 작성일

강의를 들을땐 그렇게 해봐야지 하다가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게 잘 안 되잖아요 ㅋ  그래서 지행합일이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러니 쉬임없는 공부와 훈련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전제를 바꾸는 공부!! 확 끌리는 데요^^

정화스님이 자연과학으로 강의를 해 주실거라 기대하고 희진샘이 후기작성해주시기로 했는데 그래서 살짝 졸으셨나봐요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