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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주차 수업 후기 - 2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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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씨앗 작성일16-04-02 00:53 조회1,8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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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29 / 2조 수업후기 / 전미령
 
출석과 함께 오행배속 시험이 있었다. 지난주 64괘 시험보다 수월해서인지 다들 통과하였다. 이어 입정을 낭독하는데 7주째이건만 입에 잘 붙질 않아서 제대로 소리 나질 않는다.
 
1교시; 의역학 수업. 주제: 이제마, 몸에서 길을 발견하다
인간은 백지상태로 태어난다는 전제하에 교육이나 환경의 영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던근대 서양학문이 최근에는 인간의 기질은 바뀌지 않는다고 연구,발표된다고 하셨다. 이 지점이 태어날 때 주어진 명()에 관해 오랫동안 사유해온 동양학과 만나는 지점이 아닐까 싶었다.
사실 사상의학에서 말하는 체질분류는 한의원을 다닐 때 많이 듣던 거라 그리 낯선 게 아니다. 하지만 『동의수세보원』을 저술하게 된 시대적 배경과 선생의 개인적인 노력 그리고 의학적인 계보를 공부하면서 예전의 피상적인 분류마저도 제대로 아는 게 아니었음을 알았다. 선생은 병이란 각자의 소유와 집착에 의해 감정조절을 잘 못해서 기운소모가 많아져서 발생한다고 보았다. 이에 대한 처방이 체질에 따라 다른 것임은 밝힌 것이 사상의학으로, 그것은 병증(양명, 태양, 소양, 태음, 소음, 궐음)하고는 다른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의 4가지 체질로 분류하였다. 의사란 환자를 자신의 몸처럼 꿰뚫어 본 듯 진료하고 처방해야 하기에 수많은 이에게 그렇게 하지 못함에 대한 방편으로 이 책을 저술 하셨다는 말씀에는 현대의학의 현실과 오버랩 되어 공부에 더 분발해야겠다 싶었다. 사상체질이 천기, 인사로 세분화되는 장금샘의 강의가 이어질수록 난도는 더해갔고, 그만큼 나는 제대로 알아 들을 수 없었다. 아마도 쪼그라든 나의 머리 위로 휙 지나갔으리라. 뭐라도 잡으려 눈과 손만 부지런히 움직이다 수업이 끝났다.
 
점심 그리고 산책:
오늘 전체적인 분위기가 조용하고 차분하다. 점심식사 후 산책을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길 나누다
다들 힘 든다말하는 걸 들으니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 쬐끔 위로가 되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닌가 벼!
 
2교시 토론수업
 낭송이 먼저 시작되었는데, 침 맞으러 병원 가느라 참석 못한 은숙샘을 제외한 많은 조원들이(
부터) 암송준비를 재대로 해 오질 못했다. 새로운 기운들이 펼쳐지는 봄은 우리들 몸과 마음을 바
쁘고 힘들게 한다. 지친 탓인지 조원들 얼굴이 까칠하다.
 기꺼이 자신을 잊고 헤맴으로써, 자신을 찾을 수 있다는 구절에 대한 토론. ‘우주 속에서 45억년
을 거슬러 올라가는 자신의 역사에 고정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하지만 현실 삶 속에
선 고정화, 주체화된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불안할 수 밖에 없으며, 그래서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자아를 고정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공부를 하는 것은 이런 현실과 공부를
통한 배움의 간극을 깨치고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에 다들 공감하였다. 남은 시간은 흥선
샘의 개인사주풀이로 이전수업 내용을 다시 복습하였다. 맥락과 관계 속에서 해석해야 된다는데
난 여전히 헛갈리고 참 어렵다.
 
3교시 글쓰기 수업. 주 교재:. .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길진숙샘께서 발그스름한 얼굴로 강의실로 들어 오셨다. 앞선 수업이 에세이 발표였다는 말씀을
들으니 곧 에세이구나 난 어쩌누싶어 걱정부터 앞섰다.
작가는 남성적, 동성사회가 지배하는 시대(군국 제국주의)와 근대 서구계몽의 그물을 벗어나 자
신만의 방식으로 개인의 자유를 사유하는 자기본위의 인물들을 창조한다. 그의 작품들은 동아시아 근대소설의 표준을 보여 주며, 중국의 루쉰, 우리나라의 이광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씀하셨다.
 앞 시간 루쉰의 소설들은 시대를 짊어진 자의 의무로 세상과 싸우니 내용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으나, 나쓰메의 그것은 제국주의 내에서 자행되는 금권 자본주의 세태로부터 탈주하려는 개인을 대상으로 한, 철저한 자신의 본위위주의 글이라 가벼워서 읽기가 한결 수월할거라 하셨다. 하지만 글 속의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말씀도 하셨다. 이광수평에 이르러 길샘은, 같은동아시아에서 근대서구의 힘을 직면한 나쓰메 소세키와 루쉰이 시대 상황을 직시하고 성찰을 통해 새로운 인물들을 창조하며 시대를 헤쳐 나가려 한 데 반해, 춘원은 그 출중한 글재주에도 불구하고 그들처럼 조선의 상황을 직시, 통찰하지 못하고 연애소설에 집중하고 그 결론이 항상 근대 서구의 계몽주의식 구호로 끝나고 마는 점에 애증을 함께 할 수 밖에 없다 하셨다.      
도련님 속 도련님은 부모 형제와도 좌충우돌하는 철이 없고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행동파 막
무가내형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주위의 이런 평가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스스로 용기는 있는데 지혜는 없다고 거리낌없이 밝히기까지 한다. 근대교육을 받은 뒤 어쩌다 교사가 된 뒤에도 도련님은 사회적 위상에 대한 의식이 없는 충동적인 행동으로 학생들과 충돌을 계속한다. 신사의 규율 지키기를 강요하는 교직사회가 금권 자본주의에 포획된 이면을 드러낸 위선과 거짓에 대해, 도련님은 자신의 의사를 철없는 행동으로 반박한다. 즉 이해관계를 따지는 자기검열로 한 순간도 미적거리지 않고, 사회망이란 외부검열에도 주눅들지 않는 행동을 앞 세운다. ‘에도인이라 명명한 자신의 행동결과에 대해 책망하거나 변명, 합리화도 하지 않는다. 여기서 에도인이란 서구 근대인도, 유신 메이지인도 아닌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나는 자유인으로 작명된 것 같다고 길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도련님이란 인물은 어떤 프레임에도 잡히지 않고 거리낌 없이, 망설임 없이 행동하는 철부지지만, 그는 어디에도 굴하지 않고 기꺼이 어느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자로서 온전한 자유인이 아닐까하셨다. 항상 다음을 걱정하며 주변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나로서는 엄두도 안 나는 선택들이다. 이러한 인물은 우리 시대에도 모던하게 다가 온다는 길샘의 말씀은 내 자신 속에 감춰져 있던 위선과 비겁함을 들여다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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