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6, 서양 별자리(5강)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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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희 작성일18-07-02 20:57 조회1,229회 댓글0건본문
재의 선생님은 소제 “1. 사람과 처지”에서 행성과 하우스를 떠올리는 서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재의샘의 강의안은 매력적이다. 어쩜 이렇게 맥락에 쏙쏙 맡는 발췌문을 골라오는지 놀랍다). “그 사람의 처지에 대해서는 무심하면서 그 사람의 품행에 대해서관여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폭력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의 일부이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의 욕망과 신체 뿐만 아니라 그의 처지, 즉 가족, 환경, 직장, 친구 등 성장배경과 현재의 조건을 함께 아는 것이라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몇 주 전 신문 기사인 ‘망치 든 세입자, 쫓기는 건물주’ 사건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에게 망치를 든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 하지만 상황을 알고 보면 망치를 든 세입자 만큼이나 건물주 또한 돈을 망치처럼 휘둘렸다는 사실에 경악을 하게 된다. 세입자의 행동만 떼어놓고 볼 때, 우리는 사람도 사건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지금껏 얼마나 많이 ‘망치 든 세입자’만 보고 열을 올렸을까?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앙꼬 빠진 붕어빵임을 떠올려야 하겠다.
다시 별자리 이야기로 돌아가서 “우리는 욕망과 현장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면 좋을까?” “각자의 몫”이란다. 명리학 기초를 접하고, 별자리를 배우면서, 자꾸 얽매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재의 선생님은 운명학의 기초는 먼저, 나와 타인을 규정하지 않는 것, 둘째, 규정과 금기를 깨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가령, 예를 들어, 손이 없는 날 이사하는 것을 선호한다면, 이것을 알고도 손 있는 날에 이사를 한다는 것이다. 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도 한다는 것이다. 알 듯 말 듯하다. 강의안에서 인용한 일본 선승의 예도 마찬가지로 아리송하다.
“상대가 내리치는 검을 한 번 보고 그곳에서 그대로 검을 막으려 한다면, 상대의 검에 마음이 머물러 이쪽의 움직임이 둔해져 상대의 검에 베이고 만다, 이것을 마음이 머문다고 한다. … 그 칼날로부터 어떻게 몸을 피할 것인지, 그건 것을 깊이 사고하는 것은 칼에 ‘머무는’ 것입니다. 칼에 결박 당해 심신의 자유를 잃은 상태가 바로 주지번뇌인 것이지요.
이에 반하여, 온전한 자유를 성취한 상태를 ‘석화지기’라 말합니다.”
주지번뇌와 석화지기, 어떤 상태인지 잘 가늠하길 어렵다. 일단, 행성과 하우스를 안다는 것이, 별자리와 명리학을 점점 알아간다는 것이 ‘주지번뇌’가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물론 주지번뇌를 가져올 정도로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은 안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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