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클 3> 금의환향(錦衣還鄕)은 없다- <오딧세이아 13권~24권> 발제 > 세미나

세미나

홈 > 세미나 > 세미나

<로클 3> 금의환향(錦衣還鄕)은 없다- <오딧세이아 13권~24권> 발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양파 작성일14-11-16 23:55 조회3,454회 댓글0건

본문

                                                        2014년 11월 7일 박경옥
머리가 허연 한 남자가 온 힘을 다해 활시위를 당긴다. 그의 목숨은 그가 쏘는 활에 달려 있다.『오뒷세이아』책의 첫 장에 나오는 그림이다. 20년의 타향살이 끝에 돌아온 고향, 오딧세우스가 그토록 목매여 돌아가고 싶던 그 곳은 또 다른 전쟁터와 같았다. 이제 내부의 적을 처치해야만 가족의 품에 돌아갈 수 있다. 거창한 명분과 명예는 땅을 디디는 현실에 내려오면 큰 소용이 없다. 매일 밥을 먹고 살아야하고 추위를 피하는 집이 있어야 한다. 『오뒷세이아』13권~24권은 돌아온 이타케섬에서 오딧세우스가 그의 아내를 둘러싸고 매일 재산을 축내는 구혼자들을 어렵게 물리치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나이 들어가며 내면의 세계를 잘 갈무리하라는 메시지다. 낮은 신분인 돼지치기를 먼저 찾아가는 여정은 민(民)의 인심을 얻지 못하면 과거의 명성은 아무 소용도 없으며 민의를 들어라는 뜻일 것이다.
 
오뒷세우스는 그가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파이아케스족의 나라에서 충분한 대접을 받는다. 그들은 오딧세우스를 위해 큰 세발솥과 가마솥을 선물한다. 솥은 곧 밥과 일상생활을 의미한다. 이야기는 잘 들었지만 귀족들(원로들)도 아무런 보상이 없는 일은 자기 힘으로 주는 게 아니라 백성들에게 받아낸다. 알키노오스왕도 귀족들이 반대하면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는 게 두려웠을 것이다.
 
전쟁과 높은 파도을 헤치고 수많은 고초를 겪은 오딧세우스의 귀환은 화려하지 못했다. 그는 이타케의 한 포구에 도착한다. 파이아케스족이 준 선물은 동굴 속에 숨겨 놓지 않으면 안 된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오딧세우스를 안전하게 배로 호송해준 그 종족들에게 벌을 내린다. 무조건적인 호의를 경계하는 신의 계시이다.
이타케는 사실 살기 좋은 풍족한 섬이 아니다. 바위투성이에 말을 키우기에 적당하지 않다. 염소와 돼지 소와 곡식들이 나오는 정도이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 오뒷세우스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다. 그리스 본토에 비해 작은 섬 출신인 그가 전쟁에 나가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환경도 작용했을 것이다. 세상에서 써먹을 수 있는 장점을 많이 가진 그도 오랫동안 떠났던 집으로 돌아올 땐 거지꼴로 돌아온다.
 
오뒷세우스에게 아테네신(神)의 조언은 거침없다. “가혹한 자여! 꾀 많은 자여, 계략에 물리지 않는 자여! 그대는 그대 자신의 나라에 와 있으면서도 그대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기만과 교언(巧言)을 그만두려 하지 않는구나.” 아직 왕으로 돌아갈 마음의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 어깨에 힘을 많이 빼야 한다. 돌아간다고 해서 자동으로 왕이 될 수 없다. 교만한 마음과 뛰어난 언변만으로 훌륭한 왕이 될 수 없다. “그대가 그대의 잘 지은 집에 가서도 얼마나 많은 고난을 참고 견디어야 할 운명인지 그대에게 말해주기 위함이다 그대는 억지로라도 꾹 참고 남자든 여자든 어느 누구에게도 그대가 떠돌아다니다가 왔다는 말은 하지마라. 그대는 오히려 남자들의 행패를 감수하며 많은 고통을 묵묵히 참도록 하라”(297p)
화려하게 돌아왔더라면 아마 그 이후의 삶은 더 팍팍했을 것이다. 그는 어려운 통과 의레를 통해 다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한편, 라케다이몬의 메넬라오스와 헬레네 부부는 오딧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진기한 옷과 황금을 선물로 주며 귀향을 환송한다. 오딧세우스는 돼지치기에게 그의 충성심을 시험해본다. 왕의 아들이었던 돼지치기는 유괴를 당해 이타케에 끌려와 돼지를 치며 살고 있다. 신분은 전쟁이나 해적질에 의해 한 순간 바뀔 수 있다.
 
인간은 안정된 의식주를 원한다. ‘먹고 마시는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 기본적인 욕망도 쉽게 얻을 수 없다. 더 좋은 조건을 위해 인간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벌인다. 명분은 다르지만 근본은 욕망충족을 위해서다. 그 점은 일리아드와 오딧세우스에서 계속 보여준다. 텔레마코스는 돼지우리에서 나그네로 보이는 오딧세우스를 만난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구혼자들을 물리치는 전략을 짠다.
 
그 당시는 예언자나 질병을 고치는 의사나 재목을 다루는 목수나 노래로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신적인 가인(歌人), 장인(匠人)들은 어딜 가나 환영 받았다. 신들은 온갖 모습을 하고 낯선 나라에서 온 나그네처럼 도시들을 떠돌아다니면서 인간들의 교만과 바른 행실을 굽어보고 있다.(388) 바꿔 말하면 초라한 행색의 사람도 차별하지 않고 존중해서 대해주라는 말이다. 인간의 마음은 행, 불행에 따라 바뀐다. 행복할 때는 오만하고 불행할 때는 소심해진다.(400)또 인간이란 덧없는 존재이다. 손님을 잘 대접하는 것은 그의 명성을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퍼뜨리고 고귀한 자로 불릴 수 있는 방법이다. 오딧세우스의 유모는 나그네의 발을 씻겨주며 흉터를 보고 오딧세우스인 줄 알아챈다.
 
거지로 변장한 채 시내로 나온 오딧세우스에게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이로스라는 거지가 권투 시합을 제안한다. 텔레마코스는 점점 용감해지고 대담무쌍해진다. 그의 말에 힘이 있어 구혼자들도 덜덜 떨게 된다. ‘그도 성년이 되어 가정을 돌볼 수 있게 되자 구혼자들이 그의 살림을 먹어치우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 그의 가정을 지키고자 한다.(419) 정확히 말하면 그의 재산을 지키고자 애를 쓴다.아들은 독립할 나이가 되었다. 이기적인 것처럼 보이나 솔직한 인간의 모습이다. 지금 애들은 너무 오랫동안 부모랑 사는 게 독립을 못하는 걸림돌이다.
 
오딧세우스는 이제 아무리 격분하는 일이 있어도 마음을 다스리고 인내한다. 내면을 다스리는 힘이 점점 쌓인다. 심사숙고하며 용의주도하게 구혼자들을 없앨 궁리를 한다.(439)
구혼자들은 주지육림에 빠져 전조를 읽지 못한다. 나그네가 그렇게 힌트를 주건만 아직도 자신의 헛된 욕망에 허우적거린다. ‘단련되지 않은 연약한 손으로 힘이 많이 달려 활을 당기는 일도 못하게 된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지 않는 자 앞에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오딧세우스와 텔레마코스는 활과 창을 휘둘러 구혼자를 죽인다.’구혼자들의 머리가 깨어졌을 때 끔찍한 신음소리가 일었고 바닥은 온통 피가 내를 이룬다. 구혼자들의 죄는 지상의 인간들 누구도 존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자신의 몸조차 욕망에 방치했다. 그에 비해 텔레마코스는 열심히 일한다. 시체를 치우는 것도 열심이다.
 
다른 한편 페넬로페는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남편을 처음에 냉정하게 대한다. 오랜 세월 떨어져 있던 남편에게 무조건 달려가서 안길거라는 생각도 우리의 고정관념이다. 자주 보던 사람도 며칠만 떨어져 있어도 서먹하다. 옮길 수 없는 침상은 무얼 상징할까?
 
마지막권에선 죽은 자들의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아가멤논의 혼백은 아킬레우스혼백에게 말한다. “그대는 죽어서도 이름을 잃지 아니하고 모든 인간들 사이에서 언제까지나 훌륭한 명성을 누리게 될 것이오. 나는 전쟁을 이겨냈건만 그것이 내게 무슨 즐거움이 되었지요? 귀향하자마자 아이기토스와 나의 잔혹한 아내의 손에 죽은 끔찍한 파멸을 제우스께서 나를 위해 생각해내셨으니 말이오”하고 탄식한다. 아가멤논의 솔직한 말을 들으면 인간은 신이 만들어 놓은 운명의 연기자다. 그런데도 인간은 명예, 평판에 목마르다. 오딧세우스 또다시 텔레마코스를 부추긴다. “텔레마코스야! 용기와 남자다움으로 존경받던 우리 선조들의 가문에 치욕을 안겨주지 않도록 하라”고 등을 떠민다.그렇게 피를 보고도 어리석음은 반복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