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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그몸 세미나] 한의학은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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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약선생 작성일13-02-08 14:00 조회3,7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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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정투쟁”이란 정기와 시기의 투쟁을 가리킨다. 사정투쟁의 승부는 질병의 발생과 관계될 뿐만 아니라, 질병의 발전과 예후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정투쟁과 발병의 관계는 두 가지 상황으로 나뉜다. 첫째, 정기가 사기를 이기면 발병하지 않는다. 둘째, 정기가 사기를 이기지 못하면 인체 음양의 실조를 초래하여 발병한다. 예컨대, <소문, 생기통천론>에서 “천기가 맑으면 사람의 의지가 다스려지고, 천기의 변화에 순응하면 양기가 튼튼해지므로 비록 해로운 사기가 있더라도 해치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일반적인 정황에서 인체의 정기는 언제나 사기와 투쟁하는데 정기가 능히 사기를 이기므로 발병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 즉 <영추, 적풍>에서는 “그러므로 사기가 머물러 발작하지 않고 있다가, 마음에 싫어하는 것과 흠모하는 것이 있음으로 인해 기혈이 내부에서 역란하고 두 기가 서로 엉켜 발병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미세하여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므로 마치 귀신과 같다”고 하였는데, 이는 복사가 체내에 잠복하여 정기가 비록 사기를 제거하기에는 부족하나 사기의 발전을 막아 발병하지 못하도록 하는 능력이 있음을 설명한 것이다. (<기초한의학> 397쪽)
 
  
기(氣)는 '통상적인 물질, 물체'도 아니고, 물질, 물체 아닌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것들 사이에 있다. 차라리 잠재적인 층위에서 운동하는 그 무엇이라고 해야 더욱 옳을 듯하다. 그것은 여차하면 '우리가 흔히 아는 물질-물체'로 순간적으로 전화하며 가시적인 상태로 변화하면서 존재한다. 그것들은 항상 일촉즉발의 상태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순간적인 돌발이다. 그리고 그 돌발이 어떤 모습으로 현실화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특히 사기(邪氣)는 신체에 들어오면서 피부와 장부 사이[표리의 경계]에 머물다가, 어느 한 순간에 발병으로 현실화되기도 하고, 기회를 못 탄 경찰처럼 잠복해 있기도 하고, 천천히 통과하여 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사기는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유동하는 기운이다. 이 유동이 신체와 어떻게 관계 맺느냐에 따라 아주 다양한 국면을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사기는 바이러스나 세균과는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포착된다. 예를 들면 정기의 강약에 따라 사기는 그 움직임이 다르고, 발병의 형태가 달라진다. 만일 음평양비(陰平陽秘)의 상태, 즉 음양이 평형을 이루고 협조하는 상태라면 사기는 ‘부정지기’로서의 움직임을 보이지 못한다. 즉 병사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 순간은 잠잠하지만, 표리의 경계에 잠복하여 있다가 ㅡ 이 경우에도 실체론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데, 왜냐하면 여전히 유동의 상태로서 항상 자신과 다른 어떤 상태로 전화될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태의 사기를 복사(伏邪)라 한다 ㅡ 호시탐탐 병사로 바뀔 기회를 노린다. 이것이 바로 사기유련(邪氣留戀)이다. 사기가 신체를 사랑하여[戀(?!)] 계속 머문다. 복사는 그런 잠복 속에서 정기가 일시에 허해진 틈을 타 순식간에 병사로 바뀐다. 보다시피 이건 거의 전쟁에 가까운 기의 전변들이다. 이런 전변 자체가 어쩌면 한의학이 바라보는 세계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정기와 사기 사이의 무수한 운동들이 일으키는 순간적인 전변들이야말로, 잠재적 장의 알 수 없는 투쟁들이고 전쟁들일 것이다. 바로 이것을 사정투쟁이라고 한다. 보이지 않는 장에서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그래서 그것은 귀신과 같다. 이런 의미에서 보이지 않는 전쟁을 이야기하는 것이 한의학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의학은 그것을 현미경으로 실체화시키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징도 아니고 상상도 아니며, 오로지 보이지 않는 잠재적 실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감각되지 않는 실재이다. 기(氣), 그것은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투쟁 중이다.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한의학은 항상 이 전쟁에 개입하는 공부여야 한다. 이 전쟁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모든 사태를 어떻게 이해하고 개입할 것인가? 그것은 매우 순간적이고, 매우 유동적이기 때문에, 예기치 않는 결론을 갖는다.. 즉 그때 그때 다르다. 그래서 한의학을 오해한다. 정답이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오로지 이것에 의해 의사는 의사일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정답없는 전쟁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말이다. 일촉즉발에 개입하는 공부, 그리고 자신도 일촉즉발의 생명상태에 뒤엉키는 공부, 그래서 매우 위험한 공부이면서, 매우 모험에 가득찬 공부이다. 따라서 한의학이야말로 그 자체로서 전쟁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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