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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씨나 지중해]색색의 스페인, 빛바랜 로마, 반가운 친구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22-02-25 16:59
조회 : 499  
김 해 완

뉴욕이나 아바나에 도착했던 첫 해에는 유달리 바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노느라고 그랬다(^^). 내가 노는 방법은 여행이었다. 해외에 있으면 여행 욕심이 났다. 한국에 있을 때는 옆 도시에 가는 것도 귀찮아했으면서 말이다. 이 마음은 연애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새 애인을 사귀면 하나부터 열까지 그 사람에 대해 궁금해지는 것처럼, 새 장소에 가면 그곳의 색다른 모습들을 하루빨리 발견하고 싶다. 가령 아바나는 내가 쿠바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장소였지만, 틈틈이 방문했던 인근 ‘플라야 히론’ 해변이나 ‘산타클라라’ 소도시는 내가 쿠바에 대해 더 입체적인 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여행 한 번 가기 힘들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어떨까? 지방색이 뚜렷하다. 스페인은 이곳저곳 여행 다니기 딱 좋은 장소다. 한 나라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색깔들이 강하다. 그러나 정작 스페인에서 나는 몸을 사리고 있다. 여지껏 바르셀로나 밖의 도시를 두 군데밖에 방문하지 못했다. 바르셀로나 시내 자체를 돌아다니는 일도 적다. 팬데믹이 여전히 진행 중이니 당연한 일이려나?

아니, 사실 그보다 더 개인적인 이유가 있다. 내 짝꿍 제프리가 절대로 코로나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나는 온갖 통계를 들어서 이제 코로나바이러스는 그렇게 위험한 게 아니라고 설득을 시도했지만, 이 친구는 확률이 아무리 낮더라도 만약 우리 둘 중에 바이러스에 전염되어서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남은 사람이 그 마음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며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소심한 건가, 철저한 건가? 아니면 상상력이 풍부한 건가?) 여행을 자제하자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있었지만, 바르셀로나 시내조차 나가기를 거부하는 자세는 내게는 과해 보였다. 그렇지만 같이 사는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으면 일상이 평화롭지 않다. 크리스마스, 연말, 새해를 보내면서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기숙사 방에만 머무르거나 사람 한 명 없는 캠퍼스 산책길을 걸어 다녔다.

제프리랑 연말 연시에 아무도 없는 캠퍼스 걸어다닐 때 모습

물론 나라고 해서 무조건 내 의견을 포기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틈이 생길 때마다 제프리에게 행동반경을 넓힐 필요성에 대해서 다양하게 어필했다. 우리 둘이서 스페인에 함께 시간을 보내는 기회가 얼마나 자주 올 것 같은가?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나? 기숙사에 마냥 조용히 있는다고 해서 코로나에 안 걸릴 것 같은가? 기숙사 안에서도 코로나 발병 환자가 속속들이 나오는 마당에?

결국 상황이 뒤집혔다. 제프리가 여권을 갱신하기 위해 마드리드의 말레이시아 대사관에 가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사람과 스치기만 해도 코로나에 걸릴 수 있다는 제프리의 주장에 의한다면 그가 이번 여행에서 코로나에 걸릴 확률은 100%였다.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마드리드 중심지나 바르셀로나 중심지는 나가기만 해도 코로나에 걸린다고 네가 계속 주장했지? 어차피 걸릴 거라면 그냥 겸사겸사 우리 다 나가자!

이번에는 제프리가 한 발 물러섰다. 계속 고집부리면 결혼생활에 위기가 올 것 같다나 뭐라나. 나는 드디어 기숙사를 떠난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이 친구가 뭐라고 중얼거리든 내버려뒀다. 정말 팬데믹이 맞다. 여행 한 번 가기 너무 힘들다. 애써 찾아온 기회가 무의미하지 않도록 열심히 놀아야지! (미리 스포를 하자면 우리는 여행 갔다 온 후에도 코로나에 안 걸렸다 ㅎㅎ.)

사라고사, 돈키호테가 못 가본 도시

여행지는 금세 정해졌다. 사라고사였다. 사라고사는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도시다. 까딸루냐 주의 수도가 바르셀로나라면, 사라고사는 아라곤 주의 수도다.

하지만 아라곤 지방에 가서 볼 게 뭐가 있단 말인가? 그곳은 바르셀로나처럼 지중해 바다를 끼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라나다처럼 훌륭한 건축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사라고사를 알고 있는 것도 순전히 책 <돈키호테> 때문이다. 돈키호테는 원래 사라고사에서 열리는 기사 무술 대회에 참가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가짜 돈키호테가 벌써 사라고사를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방향을 틀어서 바르셀로나로 간다.

사라고사 풍경

생각해보니 내 행보도 돈키호테를 닮았다. 나는 지금 바르셀로나에 있지만 원래는 사라고사에 갔을지도 몰랐다. 사라고사 의대 편입 전형에 응시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목표는 시종일관 세비야 의대였다. (내 사랑, 안달루시아!) 그러나 뽑아만 준다면 내 처지에 사라고사 의대도 감지덕지였다. 나는 큰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사라고사에 가게 될 것이라고 속으로 짐작했다. 사라고사 의대의 전년도 편입생 합격 기준 점수를 참고해보니 내 점수가 그보다 웃돌았기 때문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불합격이었다. 점수는 모자라지 않았으나, 사라고사 의대에는 휴학생은 편입이 불가하다는 독특한 규칙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나를 받아준 유일한 학교인 바르셀로나자치대로 갈 수밖에 없었다. 사라고사에 ‘갈 뻔’ 했지만 결국 바르셀로나와 연이 닿게 된 또 하나의 이야기다.

내가 들어가지 못한 사라고사 의대의 행운은 내 친구가 대신 잡았다. 아드리안이다. 아드리안은 아바나의과대학 동기다. 입학식 첫날부터 알게 되었고, 그 후로도 교류가 잦았다. 성격 좋은 그는 스페인어가 서툰 나와 현우를 곧잘 챙겨주었다. 내가 의과대학에 무사히 적응할 수 있었던 것에는 아드리안의 적극적인 도움이 크다.

아드리안은 나와 같은 해에 스페인 의과대학 편입전형을 준비했다. 덕분에 우리는 서로에게 동지가 될 수 있었다. 아드리안이 스페인에서 홀로 살다가 슬럼프를 겪으면서 아무것도 손에 잡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나는 그가 편입 접수 시기를 놓칠까봐 한국에서 전전긍긍했다. 그리고 당장 편입 전형이 열린 대학들 중에서 접수비를 받지 않는 곳만 골라서 아드리안에게 문자로 보냈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돈도 안 받고 서류만 제출하라고 편의를 봐주고 있는데, 이것도 안한다면 넌 정말 바보다! 내 재촉에 아드리안은 결국 응시 마지막 날 사라고사 의대에 편입 서류를 제출했다. 그런데 바로 그 학교에 그가 떡하니 붙은 것이다!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나는 아직도 그날 아침을 기억하고 있다. 필동 커피당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샐러드빵을 사서 곰숲으로 가는 길에 아드리안이 보낸 메시지를 읽고 길에서 소리 지를 뻔 했다.

아드리안과 해완

이번에 사라고사에 여행가기로 결정한 이유도 이 친구 때문이었다. 아드리안이 아르바이트 때문에 도통 바르셀로나에 놀러올 시간을 뺄 수가 없다고 슬퍼했기 때문이다. 그가 오지 못한다면 우리가 가면 되지 않겠는가? 아드리안은 나와 제프리가 온다는 소식에 뛸 뜻이 기뻐했고, 자기 집에서 마음 편히 지내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사라고사에 머무는 2박 3일 동안 가이드를 자처했다.

사라고사에서 내가 받은 첫 느낌은 정갈하다는 것이었다. 길들은 널찍했고 깨끗했다. 사람들이 많이 북적거리지도 않고 한산했다. 총 인구가 100만이 되지 않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뭐랄까, 젊은이들이 살기에는 심심하지만 젊은 부부가 아이를 낳고 키우기에는 딱인 장소? 가장 매력적인 것은 물가였다. 월세가 바르셀로나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도시의 쾌적함이나 교육 수준, 생활환경 모두 준수했다. 아드리안도 그런 점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학업을 마친 후에도 아예 사라고사에서 자리 잡고 살고 싶다고도 했다.

사라고사는 규모가 작아서 반나절만 돌아다녀도 주요 명소를 다 볼 수 있었다. 스페인의 주요 도시가 다 그렇듯이 사라고사도 과거 로마 제국이 맨 처음 기틀을 닦았다. 라틴어로 “Caesaraugusta” 불리던 곳이 현재 스페인어 “Zaragoza”로 변환된 것이다. 로마 제국의 흔적을 간신히 찾아볼 수 있는 구 시가지는 강을 끼고 세워져 있었다. 오래된 공간이지만 활기가 넘쳐났다. 좁은 골목마다 사람들이 가득했다. 낡은 건축물에 최신 카페와 바,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었다. 겨울바람이 아직 매서운 데도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술을 마셨다.

그라나다, 세비야,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사라고사까지 방문한 후 내가 한 가지 발견한 공통점이 있다. 스페인에 있는 도시의‘다운타운’은 대부분 로마 제국이 세운 구 시가지를 끼고 발달한다. 처음에는 관광객을 모으기 위한 수법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라고사처럼 관광업으로 먹고 살지 않는 도시에서도 구 시가지는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었다. 어쩌면 사람들도 나처럼 놀고 싶을 때마다 여행을 하고 싶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권태기 연인처럼 너무 익숙해서 지겨워진 자신의 도시를 새롭게 재발견하기 위해서 로마 제국의 흐릿한 기억에 잠시 기대는 것이다. 그래서 자동차를 타고 좁은 아파트에 사는 오늘날에도, 제대로 놀기 위해서 몇 천 년 전에 로마인들이 세운 흔적을 일부러 찾아 나서는 게 아닐까?

사라고사 풍경

사라고사의 또 다른 명물은 만테리아 성당이다. 외부 규모부터 내부 장식까지 모든 게 압도적이다. 스페인 내전 때 폭탄이 하나 떨어졌는데 불발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다들 신의 가호가 아닐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성당은 이 폭탄을 보란 듯이 벽에 걸어 놓았다. (폭탄을 품은 세계 유일한 교회가 아닐까 한다.) 저절로 경건한 마음이 드는 성당 내부에서 나는 돈키호테를 떠올렸다. 성당이 17세기 중반에 세워졌다고 하니, 설령 돈키호테가 사라고사에 왔더라도 이 성당을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볼 수만 있었더라면 뛸 뜻이 좋아했을 것이다. 성당의 자태에 크게 감명 받고 산초에게 신심에 대하여 끝나지 않는 연설을 늘어놓거나, 무릎 꿇고 한동안 말없이 기도를 드렸으리라.

아드리안이 준 선물

사라고사에서 가장 크게 마음에 남았던 것은 아드리안이 사는 모습이었다. 아드리안은 현재 스페인에 혈혈단신으로 홀로 지낸다. 친할아버지가 스페인인이어서 아드리안도 스페인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만, 쿠바에 있는 어머니까지 스페인으로 모시고 오려면 아직 법적 절차가 많이 남아 있다. 아르바이트, 의대 공부, 변호사와의 상담까지 아드리안은 외국에서 홀로 해내고 있었다.

사라고사에 도착한 첫날 나는 아드리안의 쇼핑을 도와주러 갔다. (스페인은 겨울 끝 무렵에 세일을 거하게 하기 때문에 이때 아울렛에 가면 많은 아이템들을 건질 수 있다.) 열심히 발품을 팔고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간이식당에 들렸다. 5유로짜리 인스턴트 파스타를 시켜먹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아드리안이 사라고사에 와서 처음으로 해보는 외식이라고 말을 했다.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에게 배달 아르바이트를 해서 얼마를 버느냐고 슬쩍 물었다. 답을 듣고 나는 더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어떻게 최저 임금이 한국보다 더 낮을 수가 있는가? 아드리안의 방세와 식비를 얼추 계산해보니 빠듯해도 너무 빠듯했다. 그가 왜 지금까지 한 번도 외식을 안 했다고 했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놀라운 것은 아드리안이 이런 녹록치 않은 현실 앞에서 짓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쿠바에서처럼 여전히 쾌활했다. 배달 아르바이트가 쉽지는 않지만, 의대생인 자신의 사정을 이해해주는 상사를 만나서 유동적으로 근무하게 된 건 행운이라고 했다. 학교 사무실에 매일같이 전화를 해서 자신이 받을 수 있는 국가 장학금도 알아냈다고 했다. 이제 적게나마 저축도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그렇게 돈에 쪼들리면서도 나와 제프리가 놀러온다고 휴가는 또 이틀이나 냈다! (놀기 좋아하는 이놈의 쿠바 본성!) 또 외국인으로 겪는 외로움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런 감정이 올라올 때면 흘러가게 내버려둔다고도 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니까 오히려 누리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편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아드리안

예전이었다면 참 긍정적인 친구라고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긍정적인 태도의 뒷면이 보인다. 아드리안은 거친 상황 속에서 자신까지 거칠어지지 않도록 스스로의 마음을 지키고 있다. 그의 말마따나 “삶은 원래 고난으로 가득하니, 나까지 이 삶을 일부러 더 힘들게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순응이 아니라 강인함이다. 대부분의 쿠바인들이 이 삶의 기예를 본능처럼 해낸다. 쿠바에서 보낸 지난 삼 년 반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이 기예의 가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사라고사에서 지내는 삼일 동안 우리는 아드리안의 좁은 방에서 낑겨 자고, 간단한 식재료로 집에서 밥을 해먹었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더 기운이 났다. 1년 만에 스페인에서 조우한 오랜 친구 덕분에 간만에 큰 힘을 받았다. 다음번에 바르셀로나에 놀러오면 성심성의껏 대접해줘야겠다!

아드리안 집에서 룸메이트들과 함께 한 쿠바식 식사

타라고나, 로마의 사진첩

사라고사 외에도 가본 도시가 한 군데 더 있다. 오미크론발 팬데믹이 퍼지기 직전에 잠깐 기차를 타고 교외 나들이를 다녀왔다. 까딸루냐 주의 남서쪽에 있는 도시, 타라고나다.

타라고나는 규모가 사라고사보다도 작은 도시다. 하지만 지중해를 끼고 있는 지리적 이점과 로마의 옛 건축물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사실 덕분에 방문객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 도시이기도 하다. 특히 로마 제국의 빛바랜 풍경을 물씬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는 추천할 만하다다. 바르셀로나와 사라고사의 구 시가지에서 찔끔찔끔 느낄 수 있는 과거의 흔적을 타라고나에서는 사방에서 만날 수 있다. 콜로세움과 성벽, 무기 저장고와 성당, 돌로 깔린 골목길과 그곳에서 술 마시며 시끌벅적 떠뜨는 사람들의 활기. 그리고 도시의 고지대로 올라가면 갑자기 사방이 탁 트이면서 지중해가 펼쳐진다. 이 지중해 항구를 통해 로마의 함선이 얼마나 자주 들락날락 거렸을까?

제프리와 정처 없이 타라고나의 길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앞으로의 여행 계획이 떠올랐다. 앞으로 여행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돌아야겠다. 내가 <메디씨나 지중해>를 연재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고, 마음이 가는 도시들이 죄다 지중해에 몰려 있다. 남쪽으로는 그라나다와 세비야를 다시 방문하고 싶고, 스페인을 넘어서 모로코와 알제리, 이집트까지 가보고 싶다. 동쪽으로는 이탈리아를 우선 돌고 그 다음엔 그리스를, 특히 히포크라테스가 태어난 코스 섬을 가보고 싶다. 의학사를 배워보니 중동도 빼놓을 수가 없다. 그곳의 가이드가 되어줄 친구들도 벌써 알음알음 알아가고 있다. 두고 봐라, 팬데믹만 끝나면! 여행에 다시 시동을 걸 것이다.

타라고나의 길거리를 걷고 있는 제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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