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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희씨가 들려주는 동의보감이야기]‘명의(名醫)’는 반쪽짜리 의사다?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22-05-05 22:06
조회 : 251  
복희씨(감이당)

내 마음이 문제라고?

오랜 시간 병을 앓다 보면 병 자체가 주는 고통 이외에 거기에 따라오는 괴로움들이 있다. 물론 처음에는 일단 좋다는 약과 용한 의사를 찾아다니느라 다른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런데 온갖 치료를 다 해봐도 차도가 없을 때, 문제의 그 ‘마음’이라는 놈과 마주치게 된다. 나 역시 류머티즘 발병 이후 수년간 온갖 치료를 다 해봐도 나을 기미가 안 보이자 가족들은 나에게 영적인 힘에 빌어보자고 했다. 치유의 은사를 받았다는 신부님, 영발이 세다는 부흥회 등등. 그런데 문제는 영발이 먹히려면 환자 스스로가 온전히 믿어야 한다는 거였다.

신부님의 손이 내 머리를 감싸는 순간 모든 관절이 멀쩡해진다는 걸 믿으려 애를 써 본다. 애석하게도 표면으로만 용을 쓸 뿐, 마음 깊은 곳에는 기별도 가지 않는다. 부흥회에 갔을 때는 용을 쓸 기회조차 없었다. 충격적인 광경 앞에서 저렇게까지 하면서 낫고 싶지는 않다는 저항감이 올라왔다. 순간 옆에 있는 언니를 보았다.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모은 채 정말 간절하게 기도하는 표정이다. 아, 내가 덜 답답해서, 가족들의 보살핌 속에서 아직은 살 만해서 이런 건가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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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수술 후 걷기 시작한 뒤에도 류머티즘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변함없이 약을 먹어보지만 통증이 이쪽저쪽 자리를 바꿀 뿐 몸이 전체적으로 나아진다는 느낌은 없다. 주기적으로 불안이 불쑥불쑥 올라오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어딘가 명약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문득 문득 뭔가 내가 할 일을 안 하고 있는 것 같은 불안과 초조함이 올라온다. 그럴 때면 ‘마음을 바꿔 먹어야 병이 낫는다’거나 ‘모든 병은 마음에서 생긴다’ 하는 말들과 자주 마주치게 된다. ‘내가 마음을 잘못 먹어서 이런 병에 걸렸다는 얘긴가?’ ‘낫고 안 낫고도 다 내 책임이라는 건가?’ 싶어서 듣기가 싫었다. ‘아픈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마음까지 돌봐야 하나?’ 이런 생각들이 투덜투덜 올라왔다. 그러다가도 기분이 나쁘면 몸이 더 아픈 것 같아서 진짜 그런가 싶은 순간도 있었다.

물론 마음의 병이야 마음을 바꿔먹으면 나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사진을 보면 관절이 변형되고 닳아 없어진 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 이게 어떻게 마음으로 나을 수가 있단 말인지 도무지 인정할 수가 없었다. 뼈가 부러져도 마음의 힘으로 붙일 수가 있다는 말만큼이나 허황되게 들렸다. 이런 저런 잡념들로 마음이 복잡해질수록 이 모든 걸 한방에 해결해 줄 명의가 절실했다. 그런데 그런 명의는 어디에 숨어있는지 나타나질 않고 모든 걸 내 마음 탓이라고 하는 것 같아 억울했다.

의사들이 문제였어!

무릎 수술 후 걸어 다니게는 되었지만 병이 다 나은 건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언젠가부터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힘이 들었다. 그럴 때면 일기장에 그런 마음을 쏟아놓았다. “의사들은 왜 나의 병만을 치료하려는 어리석은 짓을 할까? 내 병이 나라는 인간과 동떨어져 생각할 수 있는 문제란 말인가? 그들은 병으로 인한 심리상태엔 조금도 관심이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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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진통소염제로 통증을 눌러두고 간간이 수술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렇지만 이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걸 몸도 알고 있다. 죽을 때까지 약을 먹어야 하는 병들이 얼마나 많은가. 수술을 할 때조차도 끊으면 안 되는 약들이 있다니. 이건 뭐 약에 매달려 사는 꼴이다. 우주선을 타고 화성에 가느니 복제인간을 만드느니 하는 첨단과학이 발전한 이 시대에 이딴 류머티즘 하나 해결을 못하나 싶어서 다시 의사들에 대한 원망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그 끝에 내 몸을 내가 관리해야겠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고, 감이당에 왔다. 발병 35년만에 처음 내 몸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동의보감』에서 다음 구절을 읽고 감탄과 한탄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수양하는 방법으로 병을 치료한다[以道療病구선(臞仙)이 말하기를, “옛날의 신성한 의원들은 사람의 마음을 다스려서 미리 병이 나지 않도록 하였다그러나 지금의 의원들은 단지 신체의 질병만 치료할 줄 알았지 사람의 마음을 다스릴 줄은 모른다이것은 근본을 버리고 지말(枝末)을 좇는 것과 같은 것으로그 근원을 궁구하지 않고 지류만을 다스려 질병이 낫기를 바라니 또한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는가비록 일시적인 요행수로 나았다 하더라도 이것은 시속의 용의(庸醫)에 불과하니 족히 취할 것이 못 된다라고 하였다. _신형 16목 (허준 지음동의보감동의문헌연구실 옮김법인문화사, 2012, 209)

내 마음을 이리도 콕 집어 알아주다니! 이런 의사야말로 진정한 의사야!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동시에 세상에 이런 의사가 없어서 그렇게도 많은 환자들이 고생고생하고 있다는 게 한탄스러웠다.

『동의보감』에는 환자의 마음을 살펴서 치료해주는 사례가 심심찮게 나온다. 2년 동안 돌아오지 않는 약혼자를 그리워하다가 급기야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만 있는 여자 환자가 있었다. 환자의 화를 돋우어서 울게 하여 맺힌 기를 풀어주어 치료한 의사가 있는가 하면, 늘 성만 내고 욕만 해대는 부인에게는 광대들을 시켜 실컷 웃게 함으로써 기를 풀어주는 의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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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이치를 모르는 건지 “류머티즘은 아직 원인이 안 밝혀져서 난치병에 속한다. 병명은 하나지만 진행 상황이 매우 다르다. 몇 퍼센트는 그냥 둬도 저절로 낫고, 또 몇 퍼센트는 나았다 더했다를 평생 반복하고, 얼마는 평생 악화일로를 걷는다.” 등등의 지식을 늘어놓는 의사도 있고, 어깨 관절이 몹시 아파서 물리치료를 받으러 간 사람에게 엑스레이 사진을 걸어놓고 “이 관절은 다 망가져서 아예 못쓰게 됐다”는 막말을 하는 의사도 있었다. 심지어 어느 치과의사는 임플란트 네 개를 심어야 하는 상황에서 치료 과정을 물어보자 “많은 환자들한테 똑 같은 설명을 하자니 정말 피곤하다. 그러니 묻지 말고 믿고 따라오면 안 되겠냐고 했다. 의사들이 보기에 환자들은 오로지 치료만을 위해서 늘 스탠바이하고 있는, 아예 일상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면 의사가 내 몸, 내 병을 정말 알고 처방을 하나 싶은 의구심이 올라온다. 그러나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답답한 건 환자이니 그냥 꾸역꾸역 다니는 수밖에.

인식의 지평을 넓혀라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치료라는 게 꼭 병 자체를 고쳐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감이당에 와서 『동의보감』을 배우면 금방이라도 내 몸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게 그리 쉽지가 않았다. 몸을 보는 관점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었다. 몸에 수십 년 병을 달고 살았지만 온통 의사와 약에 의존한 채다 보니 정작 내 몸의 생리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치료 행위는 전문가만이 할 수 있다는 인식은 또 얼마나 확고한지 배운 내용을 내 몸에 적용해보려고 하면 뭐가 잘못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겁이 났다.

그러는 중에도 떠듬떠듬 『동의보감』과 함께 동서양의 고전을 공부했다. 세미나도 하고 암송도 하고 글도 쓰고 산책도 하면서 차츰 공동체 운영에도 참여를 했다. 어느새 공부가 일상의 중심에 놓이고 공동체 활동이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저절로 류머티즘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줄어든다. 통증을 호소해올 때만 조금씩 관심을 가져주면 된다. 통증도 끝없이 지속되는 게 아니다. 더 아프다 덜 아프다 한다. 그러니 아플 때, 『동의보감』 치료의 대원칙인 ‘통즉불통(通則不痛), 즉 통하면 아프지 않다’를 명심하고 아픈 부위에 티침을 붙이거나 혈자리를 찾아 뜸을 뜨고 침을 놓는 등 고때고때 기혈을 통하게 해주는 정도로 하면 일상을 별 불편 없이 꾸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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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상에 새롭고 다양한 활동들이 들어오다 보면 병 자체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히 줄어든다. 인식의 지평을 넓혀 병 이외의 활동들을 일상속에 배치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병의 권위를 축소시키고 일상에서 미미한 지위를 갖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병은 그대로라 할지라도 그걸 생각하는 시간이나 강도가 훨씬 줄어든다. 그리고 사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못할 정도로 아픈 질병이 그리 흔하지 않다. 보통 평생 달고 살아야 하는 병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일상을 꾸리면서 살아갈 수 있다.

아무리 사소한 병이라도 질병을 삶의 중심에 놓으면 삶 전체가 병에 휘둘린다. 환자가 달리 있는 게 아니라 최대의 관심사가 자기가 앓고 있는 질병인 사람이다. 아무리 소소한 병이라도 그 병을 가장 중심에 두고 살면 그 사람은 환자다. 반대로 아무리 중증의 질환을 앓고 있어도 삶의 현장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으면 그 사람은 환자가 아니라 생활인이다. 사실 우리가 고통스러운 건 통증 그 자체보다도 거기에 달라붙는 망상들 때문에 더 괴롭다. 수술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행여 이러다가 수술 시기를 놓치면 어쩌지? 약을 이렇게 오래 먹다가 다른 부작용이 생기면? 약을 끊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온갖 망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진다. 통증이 있을 때는 통증 때문에, 없을 때는 병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결국 일상을 온통 질병으로 가득 채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마음이 병을 만드는 게 맞다. 마음을 바꿔야 병이 낫는다는 소리가 그렇게도 듣기 싫었던 이유가 그 말 속에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 담겨 있어서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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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바꿔야 병이 낫는다는 소리가 그렇게도 듣기 싫었던 이유가 그 말 속에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 담겨 있어서였나 보다.

새해 들어 『동의보감』의 눈으로 내가 겪은 투병 과정을 해석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의보감』 완역본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가다가 다음 글이 눈에 띄었다. 감이당에 처음 왔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 읽혔다.

태백진인은 말하기를, “병을 치료하려면 먼저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데반드시 그 마음을 바로 잡으려고 하면 수양하는 방법에 의지해야 된다즉 환자로 하여금 마음속에 있는 의심과 이런저런 생각일체의 망념과 불평나와 남을 분간하는 마음을 버리고평생의 과오를 참회하여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자기의 생각이 자연의 이치에 부합되도록 한다. (앞의 책 209)

그때는 이 글에서 말하는 치료의 주체가 의사라고 생각했다. 의사가 환자의 마음을 알아서 잘 다스려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주체가 환자라는 게 확연히 보였다. 환자는 마음을 바로잡는 수양을 해야 하는데 마음에서 의심, 잡생각, 망상, 괜한 불평, 등등을 비우는 것이 수양의 내용이다. 그런데 이걸 억지로 물리치려 하면 그게 또 하나의 미션이 된다. 그저 다른 활동들을 일상으로 끌어들이기만 하면 그것만으로도 일단은 병이 가벼워지고 치료가 시작된다.

온전한 명의가 되는 길

마음을 바꿔야 병이 낫는다는 말이 듣기 싫었는데, 결국 돌고 돌아서 지금 가고 있는 길은 세상이치를 공부함으로써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쪽으로 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발병하고 한참 동안 복잡한 상념들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가 그것을 하나로 꿸 수 있는 이치 탐구가 없어서였다. 그러니 그 모든 문제들이 제각각 산만하게 마음을 어지럽혔다. 마음이 그러니 몸이 편안할 리가 없다.

최근 <아인슈타인의 삶과 우주>를 읽다가 브라운 운동이라는 걸 알게 됐다. 물이 담긴 잔잔한 시험관에 꽃가루 입자가 쉼 없이 움직이는 게 관찰되었다. 물은 잔잔히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풀지 못하다가 아인슈타인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움직임으로써 입자를 움직이도록 할 것이라는 상상을 했고 보이지 않는 물 분자의 움직임이 꽃가루 입자를 움직인다는 걸 입증했다. 동양학에서는 몸에 나타난 모든 현상은 마음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마음이 몸에 불안정한 힘을 지속적으로 가하고 있다면 그 몸이 성할 수가 없다. 그런 상황을 그대로 두고 약을 처방해봤자, 요행수로 일시적 효과를 볼 수는 있겠지만 불안정한 마음의 요동은 이전과 같은 패턴을 만들어낼 것이고, 그것이 몸의 병증으로 드러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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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작년 가을에 이어서 올 봄에 걸쳐 두 무릎을 인공관절로 교체한 언니에게 말을 해 주고 싶었다. 그 분야에서는 내가 대 선배였기에 가끔 통화를 하면서 이런저런 문제를 공유한다. 수술 부위 염증이 잘 낫지 않아서 재활을 맘껏 하지 못하고 있고 여기에 대해 걱정도 많은 편이다. 언니가 마음을 편히 먹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과정을 다 겪은 나로서는 언니의 말이나 표정 속에 그 마음속의 불안이 읽혀진다. 그럴 때면 마음을 편안히 먹는 게 가장 지름길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밖으로 뱉을 수가 없다.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환자에게 그 말이 얼마나 큰 부담으로 가 닿을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언니가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지름길이자 유일한 길이니 모른 척할 수도 없다. 언니를 편안하게 해 주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글을 마무리하다가 문득 생각지도 않은 작은 깨우침을 얻었다. 그 당시에 내가 겪고 있던 고통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리고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마음이 병을 만든다거나 마음을 바로 쓰면 병이 낫는다는 말이 그렇게 고깝게 들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오히려 마음과 몸의 관계를, 그리고 마음의 힘을 탐구하려 애쓰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아프면 일단 찾아가는 명의는 반쪽짜리 의사에 불과하며, 진정한 의사는 나 자신이라는 걸 일찌감치 알았을 것 같다. 마음을 바꾸면 병이 낫는다. 내가 겪는 고통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 그러니 모두가 함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탐색해 가야 한다. 그게 스스로 진짜 명의, 온전한 명의가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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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는 고통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 그러니 모두가 함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탐색해 가야 한다. 그게 스스로 진짜 명의, 온전한 명의가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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