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세이] 뭣이 중한디? – 삶의 리듬을 타라! > MVQ글소식

MVQ글소식

홈 > 커뮤니티 > MVQ글소식

[감성에세이] 뭣이 중한디? – 삶의 리듬을 타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3-01-24 09:23 조회343회 댓글0건

본문


뭣이 중한디? – 삶의 리듬을 타라!

김 승 환(감이당)

2012년 12월. 나는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다. 졸음운전이었다. 10여 일 동안 병원에 있으면서 다이어리에 적힌 강의 스케줄을 하나하나 취소해야 했다. 수입이 줄어듦의 안타까움보다 “나 대신 강의할 강사가 더 실력이 뛰어나면 어쩌지…”라는 불안한 마음을 마주해야 했다. 이슬비 내린 겨울 날씨를 탓할 수도, 달려오던 고속버스를 탓할 수도 없었다. 퇴원 후, 2주 동안은 강의를 받을 수 없음을 억울해 하며 보냈고 차는 폐차를 해야 했다. 새 차와 함께 사고 후 첫 강의를 홍천 비발디 파크로 향했다. 그런데 나는 또 졸았다. “죽을뻔하더니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구나.”라는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몸은 1년에 46,000km의 운전을 견뎌내야 했고, 졸음운전으로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몸이 쉬라는 메시지임을 그때 나는 무지했고 무시했던 것이다. 소위 잘나가는 것이 잘 살고 있는 것이었고, 자랑스러워했지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고라는 변수 앞에 내 삶의 리듬은 깨지고 몸은 여기저기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세상엔 없는 것이 없다. 건강을 챙기고 싶다면… 몸을 만들고 싶다면… 돈을 벌고 싶다면… 그리고 사랑을 하고 싶다면… 대한민국에선 뭐든지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한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안 되는 게 어디 있니!”이다. 하고 싶고, 먹고 싶고, 가고 싶고, 갖고 싶은 욕망의 끝이 어디인지 확인하려는 듯… 자본주의의 거대한 산을 정복하려는 듯… 우리는 돈의 증식에 혈안이 되어있다. 원룸에 살아도 외제차는 타고 다녀야 하고, 잘나가는 사람은 배움의 대상이 아니라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어간다. 결국 소유와 쾌락의 리듬 속에서 헤매게 된다. 그렇게 쌓인 스트레스는 또 어떠한가? 쾌락의 불금에 온 마음과 몸을 던지고 그런 뒤 월요병을 맞이하고 또 아무 일 없었던 듯 그렇게 일주일을 보낸다.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 걸까?

모든 사람은 자기의 몸을 탐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몸의 토대인 생명과 자연에 대한 앎의 비전을 가져야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내 안의 자연성이 회복되면서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삶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거죠. 그러면 예기치 않은 재난이나 고난에 처하더라도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몸에서 자연으로, 마음에서 우주로』 -고미숙, 북튜브 P29

그랬다. 생명과 자연에 대한 앎의 비전은 우리의 삶 어디에 있을까? 연봉 얼마에 어느 아파트에 살아주어야 함이 비전이 되었고 몸의 망가짐보다 타인의 인정이 더 중요했으며, 예기치 않은 재난이나 고난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적금을 넣어 놓는 것이 삶의 비전인 줄 알았다. 이러한 모든 것은 삶의 리듬을 끊는 것이다. 모든 생명은 자연과 더불어 함께함이며 내 몸 또한 자연과 하나이니 자연과 함께 흘러야 하는 것이다. 하여, 1년의 생명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리듬을 타고 있듯, 하루 24시간의 생명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리듬을 타야 함이었다.

  『동의보감』 내경 편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절제하여야 하는데 절제할 줄 모르고 끊어야 하는데 끊지 못하면 생명을 잃게 된다.” 삶의 리듬을 잘 표현한 대목이다. 즉, 끝없는 쾌락을 절제하여야 하고 끝없는 소비와 소모를 끊어야 하는 것이다. 영화 ‘곡성’의 명대사 “뭣이 중헌디?”를 새겨두어야 한다. 완벽하고자 졸린 눈을 비벼가며 버틴다고 좋은 성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눈을 비비지 않아도 좋은 성과는 충분히 나올 수 있다. 하여, 눈의 피로함을… 그러한 나의 몸의 신호를 탐구해야 절제할 수 있고 내 삶과 생명의 리듬을 탈 수 있는 것이다. 멈춤과 휴식이 주는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젠 멈추어야 한다. 내 몸도, 내 삶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내 것이므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