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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 3] 택산함(澤山咸), 부부의 시작은 ‘발가락[拇]’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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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3-06-07 08:59 조회2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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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산함(澤山咸), 부부의 시작은 ‘발가락[拇]’에서부터!
고 영 주(나루)

 澤山咸(택산함)

咸, 亨, 利貞, 取女. 吉. 함, 형, 리정, 취녀. 길.

함괘는 형통하니 올바름을 지키는 것이 이롭고, 여자에게 장가들면 길하다.

 

初六咸其拇초육함기무.

초육효엄지발가락에서 감응한다.

六二, 咸其腓, 凶, 居, 吉. 육이, 함기비, 흉, 거, 길.

육이효, 장딴지에서 감응하면 흉하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길하다.

九三, 咸其股, 執其隨, 往, 吝. 구이, 함기고, 집기수, 왕, 린.

구삼효, 넓적다리에서 감응한다. 지키는 바가 상육을 따름이니 나아가면 부끄럽다.

九四, 貞, 吉, 悔亡, 憧憧往來, 朋從爾思. 구사, 정, 길, 회망, 동동왕래, 붕종이사.

구사효, 올바름을 굳게 지키면 길하여 후회가 없어진다. 초육에게 왕래하기를 끊임없이 하면 친한 벗만이 너의 생각을 따를 것이다.

九五, 咸其脢, 无悔. 구오, 함기매, 무회.

구오효, 등에서 감응하니 후회가 없으리라.

上六, 咸其輔頰舌. 상육, 함기보협설.

상육효, 광대뼈와 뺨과 혀에서 감응한다.

“리좀은 n차원에서, 주체도 대상도 없이 고른판 위에서 펼쳐질 수 있는 선형적 다양체들을 구성하는데, 그 다양체들로부터는 언제나 <하나>가 빼내진다(n-1), 그러한 다양체는 자신의 차원들을 바꿀 때마다 본성이 변하고 변신한다. (질 들뢰즈·펠리스 가타리, 「리좀」, 『천개의 고원』, 김재인 옮김, 새물결, 2001 47쪽)

리좀이란, ‘뿌리줄기’다. 어디서부터 출발했고,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이 여러 갈래로 엉켜 있는 리좀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존재의 ‘다양성’이다. 삶이란, 수없이 많은 존재의 연결과 접속이 이루어지는 n 차원적 시공간이다. <하나>란 시대가 부여한 ‘지배적인 배치물’이다. 존재는 결코 <하나>로 예속되거나 귀속되지 않는다. 『천개의 고원』의 저자들은 말한다. “n-1 하라!” 다양한 삶이 공존하는 n 차원에서 절대적인 <하나>가 빼내어질 때, 이때가 바로 본성이 변하고 변신하는 삶의 ‘변곡점’이다.

2021년 1월, 나에게 아주 중요한 삶의 변곡점이 찾아왔다. 약 3년간의 연애 끝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약속한 것이다. 내 인생에 결혼이라니! 솔직히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다. 나와 다른 이성(異性)을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는 것이 무척이나 설레기도 했지만, 아버지로부터 독립해 가정을 꾸리고 책임져야 할 용기가 아직은 나에게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연인에서 부부라는 차원으로 들어선다는 것은 기존의 ‘나’와 전혀 다른 내가 되어야 하는 문제다. 망설임은 짧게! 이제 결혼이라는 변곡점을 통과해야만 한다. 이때를 『주역』은 어떻게 길을 열어줄까.

『주역』에도 ‘변곡점’이 존재한다. 『주역』 64괘는 중천건(重天乾)과 중지곤(重地坤)으로 시작해 서른 번째 괘인 중화리(重火離)까지가 상경(上經), 서른한 번째 괘인 택산함(澤山咸)부터 예순네 번째 괘인 화수미제(火水未濟)까지가 하경(下經)이다. 상경에서는 천도(天道), 즉 하늘의 순행이 펼쳐진다면 하경에서는 본격적으로 인간의 윤리, 인사(人事)가 펼쳐진다. ‘택산함(澤山咸)’괘는 상경에서 하경으로 전환되는 ‘변곡점’인 셈이다. 정이천 선생님은 함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하늘과 땅은 만물의 뿌리이고 남편과 아내는 인륜의 시작이니역의 상권은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와 땅을 상징하는 곤괘로 시작하고 하권은 남자와 여자가 교감하는 것을 상징하는 함괘로 시작해서 관계의 지속성을 상징하는 항괘로 받았다.”(정이천주역글 항아리, 631) 함(咸)괘와 항(恒)괘는 한 마디로 부부의 괘다. 함괘가 남녀의 내적 교감을 이야기한다면, 그다음 괘인 항괘는 부부의 외적이고 관계의 지속적인 항상성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택산함괘가 왜 남녀의 교감인지 각각의 소성괘(小成卦)가 상징하는 인간관계를 살펴보도록 하자.

건괘(乾卦)는 아버지(父), 택괘(澤卦)는 소녀(小女), 리괘(離卦)는 중녀(中女), 진괘(震卦)는 장남(長男), 손괘(巽卦)는 장녀(長女), 감괘(坎卦)는 중남(中男), 간괘(艮卦)는 소남(小男), 곤괘(坤卦)는 어머니(母)를 의미한다. 즉 함괘는 소남과 소녀, 젊은 남녀가 부부의 인연을 맺고 교감하는 때다. 『주역』이 말하는 인륜의 시작이 남편과 아내라니, 어쩌면 내 인생의 진짜 인간다운 삶은 결혼이라는 변곡점을 통과하는 지금부터가 아닐까.

새로운 삶의 시공간으로 들어서는 이때, 나는 존재의 어떤 전환이 필요할까. 그 답은 함괘의 괘상(卦象)이 말해주고 있다. 함괘는 기쁨을 상징하는 택괘(澤卦)가 상괘(上卦)에, 멈춤을 상징하는 간괘(艮卦)가 하괘(下卦)에 있다. 젊은 남녀가 교감하려면 제일 먼저 남자가 아래로 내려와 여자에게 기쁘게 멈추어야 한다. 남자로써 여자에게 자신을 낮추어 내려가는 것은 화합의 지극함이다.”(같은 책, 635그녀의 엄격함(^^)에 나는 폭주하는 관계들을 하나씩 정리했고, 방만하고 피곤한 습관들을 하나 둘 씩 고쳐 나갔다. 그럴수록 그녀는 내 공부에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공부는 내 삶의 가장 큰 ‘올바름’이다. 그녀의 응원으로 내 공부가 더욱 올바르고 굳건하게 지켜진다면 이보다 이로운 일이 또 있을까. 그녀에게 지극히 나를 낮추고 공부를 바탕으로 새로운 소통[亨]의 길을 열어갈 수만 있다면, 어찌 그녀에게 장가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함괘의 괘사(卦辭)도 말해주고 있다. “咸, 亨, 利貞, 取女. 吉.”(함괘는 형통하니 올바름을 지키는 것이 이롭고, 여자에게 장가들면 길하다.) 그녀에게 장가드는 것은 나에게 길(吉)한 길(路)이라 확신했다.

자!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결혼이라는 문턱을 어떻게 넘느냐이다. 이번 생에 결혼은 처음이라, 모든 것이 어설펐고, 미숙했다. 대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막막함에 유명한 결혼 전문 업체에 의뢰했고, 얼마 후 웨딩 매니저와 미팅을 가졌다. 강남에 있는 높고 화려한 빌딩, 그곳에서는 대규모 웨딩 박람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요즘 2030은 비혼을 추구한다고 들었는데, 빌딩 안으로 들어서자 많은 예비 부부들이 줄지어 있었다. 매니저에게 원하는 예식장과 날짜를 확인해 계약을 진행했고, 식순에 대한 안내를 마쳤다. 이 정도면 결혼식 자체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진짜 결혼 준비는 지금부터였다.

매니저의 안내를 받고 들어간 또 다른 공간을 보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입구부터 출구까지 결혼식 이외에 준비해야 할 예물이며 예단, 가구와 가전들이 회사별로 빽~빽하게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각 나라 별로 신혼여행을 추천하는 여행사와 신혼집 인테리어까지! 브랜드와 기능, 그리고 화려함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매니저에 따르면 필요할 때마다 혼수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채워 넣고 시작하는 것이 요즘 결혼의 트랜드라고 한다. 그곳에 모인 예비부부들과 우리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전시된 상품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중 내 발을 멈추게 한 곳은 가전제품 코너였다.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청소하는 로봇 청소기, 미세먼지 시대에 공기를 맑게 해주는 공기 청정기, 주름진 옷을 깔끔하게 펴주는 스타일러, 더 이상 설거지 고민을 필요 없게 만드는 식기세척기까지! 특히 워시타워라는 기계가 내 시선을 끌었는데, 빨래와 건조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빨랫감을 건조대에 널지 않아도 되고, 해가 쨍쨍한 날을 고려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아무리 가사에 시간을 쓰지 않는 시대라지만, 이 모든 것이 결혼의 필수 조건이라니! 결혼이라는 변곡점 앞에 자본이 우리에게(2030)에게 부여한 단 <하나>의 배치물들이 이곳 웨딩 박람회에 응집되어 있었다. 각 커플들에게 배치된 웨딩 매니저는 어느 것 하나 생략할 수 없도록 서비스들을 제공하고 홍보했다.

젊은 남녀가 교감하려면 제일 먼저 남자가 아래로 내려와 여자에게 기쁘게 멈추어야 한다.

매니저는 흔히 선택하는 필수 품목을 체크한 계약서를 내밀었다. 예상치도 못한 금액에 우리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결혼은 현실이다.’, ‘돈 없으면 결혼은 꿈도 못 꾼다.’라는 말이 실감 나던 찰나, 옆 테이블에서 한 커플의 다툼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부터 듣지는 않았어도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짐작이 갔다. 분명 결혼의 필수 조건인 박람회의 상품들과 현실의 상황이 맞지 않았을 것이다. 옆 커플의 다툼을 들으며 아내와 나는 서로의 기분을 연신 살폈다.

생각해 보면 참 쉽고 편리한 시대다. 우리같이 직장인인 경우 번거롭게 발품을 팔 필요없이 계약을 할 수 있고, 박람회에 있는 상품이 신혼을 시작할 때부터 구비되어 있으면 편리한 생활을 누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서비스 중 하나라도 생략한다면 관계의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 결혼의 현실이다. 충돌을 피하고 싶어서였을까. 편리한 결혼생활을 누리고 싶어서였을까. 매니저가 내민 계약서에 우리는 결국 싸인을 했다. 시대가 부여한 절대적 <하나>의 배치물 앞에서 관계의 충돌을 피하고 외면해 버린 것이다. 돌아선 자리에는 부부의 교감이 아닌 자본의 상품이 자리 잡아 버렸다. 박람회를 나온 후 마음 한구석 어딘가 허무하고 헛헛한 느낌이 들었다. 내 삶의 중요한 변곡점을 지나는 지금, 우리는 올바르게 교감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택산함(澤山咸)괘에서 이야기하는 남녀의 교감은 ‘감응(感應)’이다. 상괘의 연못물이 하괘의 산을 촉촉하게 적시고 스며들며 감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감응하다’의 감(感)이 아닌 마음(心)이 없는 함(咸)이라고 이야기할까. 이는 성인이 의도적인 마음을 가지고 사람에게서 감응을 구하지 않는데도 사람들은 저절로 감응하니또한 하늘과 땅 두 기운이 저절로 교류하여 통해서 만물이 화생하는 것과 같다즉 성인은 의도를 가지지 않고 교감한다는 의미다무심(無心)하게 교감한다는 것이다.”(같은 책, 650그렇다. 함괘에서 무심(無心)이란,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심(私心)이 없음을 말한다. 부부로서 감응하는 이때, 『주역』은 채우기보다는 오히려 비울 것을 말한다. 『천개의 고원』의 저자들이 왜 존재의 다양성을 ‘n-1’이라고 했던가! 시대가 부여한 절대적 <하나>를 뺐을 때 느끼는 존재의 충만함이 바로 본성이 변하고 변신하는 삶의 변곡점이기 때문이다. 즉 부부의 감응이 내 삶의 변곡점이 되려면 자본의 서비스를 사심으로 채워 넣는 것부터가 아닌 비우고 감응하며 부족한 것을 채워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함괘의 초효는 ‘발가락에서 감응[咸其拇]’한다. 초효는 함괘의 시작이자, 양(陽)의 자리에 음(陰)이 왔기 때문에 깊이 감응하지 못해 엄지발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다. 咸其拇(함기무)의 감응이란 부부의 윤리를 하나하나 고민해 가며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웨딩 매니저가 내민 계약서에 싸인을 한 순간 결혼의 중심도, 감응의 양식도 자본의 서비스가 중심이 되어 버렸다.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 자본이 규정해준 상품에 끌려가기만 했을 뿐, 우리가 중심이 되어 과정을 끌고 갈 수 없었다. 부부의 시작이 엄지발가락에서 감응해야 하는 이유는 함기무의 감응이 비록 깊지는 않지만, 필요하다 생각될 때 천천히 하나씩 채워가며 감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결혼이란 부모의 둥지를 떠나 새로운 삶의 시공간이 아니던가! 아이가 두 발로 서고 걸으려면 기고, 넘어지고, 다치는 차서(次序)를 밟아야 하듯, 어설프고 미숙함에서부터 차근차근 감응할 수 있는 과정을 겪어야만 한다. 관계의 충돌은 삶의 양식이다. 부부의 윤리는 여기서 탄생한다! 자본의 서비스 앞에서 갈등을 외면해 버리고, 편리함에 가려 남편과 아내의 윤리를 꾸려가지 못한다면 진정한 부부의 감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돌이켜 보니 결혼 전문업체에 의뢰했을 때부터 우리는 부부간의 작은 감응[咸其拇]조차 쉬운 방식으로 해결해 버리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싶다.

부부로서 감응하는 이때, 『주역』은 채우기보다는 오히려 비울 것을 말한다.

결혼 후 1년이 지난 지금, 집에 배치된 서비스 상품들은 모두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더 이상 가사 노동에 시간과 마음을 쏟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편리함은 좋은 것일까. 아니면 나쁜 것일까. 뜻 밖에도 함괘 초효의 엄지발가락에는 길(吉)도 흉(凶)도 없다. 어쩌면 함괘의 진정한 감응은 배치된 서비스 상품들과도 감응하며 부부의 윤리를 만들어 가는 마음이 아닐까. 이 마음으로부터 새로운 부부의 윤리를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 내 삶의 진정한 변곡점이 될 수 있으며 함기무 뒤로 길(吉)한 길(路)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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