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불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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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영순 작성일24-06-10 19:12 조회24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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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2 문영순 렉쳐 준비 장자 24.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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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0강감찬 고전학교 시즌4 렉쳐 준비 장자 24.6.12. 문영순
무지의 불편함
자래가 말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동서남북 어디로 가라 해도 자식은 그 명에 따르는 것. 음양과 자연의 관계는 부모 자식 간의 정도가 아닐세. 음양이 나를 죽음 가까이 가게 하는데 듣지 않는다면 나는 고집스런 자식. 음양에 무슨 죄가 있나. 대저 대지는 내게 몸을 주어 싣게 하고 삶을 주어 힘쓰게 하고 늙음을 주어 쉬게 하지. 그러니 삶이 좋다고 하면 죽음도 좋다고 할 수 밖에.” 오강남 풀이 『 장자 』 현암사 297쪽
위의 글은 사생존망이 일체임을 터득한 네 벗 자사·자여·자려·자리 중 자래가 죽게 되었을 때 문병 온 자려에게 자래가 한 말이다. 대지는 큰 부모이므로 대지가 만든 삶과 죽음에 순종해야 한다. 삶과 죽음은 자연변화의 한 부분이며 그 자연변화에 순종해야 한다는, 삶에 대한 무한긍정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윗글을 처음 대할 때는 평이한 서술로 삶의 과정과 삶과 죽음의 동일성을 말하고 있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러나 거듭 읽을수록 ‘늙어서 편안하다, 삶을 좋다.“고 나도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자래처럼 사생존망의 일체를 깨닫지 못했으니 말할 수 없다. 나는 삶과 죽음의 관계를 모르는 ’무지의 불편함‘ 속에 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무지의 불편함이 무엇일까? 하나는 자래 만큼 깨닫지 못함이고 다른 하나는 남편의 죽음 후 내게 닥친 불안한 정서 탓으로 혼자 해야 할 땅 구입을 지인과 함께 해서 지금까지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는 땅 문제 때문이다. 그 때 어디로 가서 살 것인가 하는 막막함이 있었다. 살던 집을 팔아 은행 빚을 정리하고 함께 집을 지어 마을을 이루자는 권유에 응했던 거다. 이제 돌이켜 보니 남편과 함께 살았던 의존적 삶이 그대로 이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습관을 인식하지 못했던 ’무지‘에서 생겨난 ’불편함‘이었다.
2년 전 새로 산 땅으로 이사를 했다. 컨테이너에 짐을 정리하고 임시 거처로 농막을 마련했다. 농막이란 농사를 짓기 위해 신고하고 살 수 있는 작은 집이다. 방열과 방음은 잘 되어 있어 살기엔 불편하진 않았다. 마을과 떨어져 있는 외딴 곳이어서 밤이면 어둠과 적막이 날 힘들게 했다. 다음 날부터 집 가까이에 있는 염전 해안로에 가서 걸었다. 2키로 남짓 쯤 되는 해안을 따라 거대한 갯벌이 펼쳐져 있었다. 갈매기 떼가 먹이를 찾고, 이름 모를 새들이 날아 다녔지만 나는 허공만 보면서 걸었다. 비가 와도 걷고 눈이 와도 걸었다. 얼마 후부터인가 무거운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듯했다. 혼자 사는 불안, 어둠의 공포, 애도의 슬픔 들이 조금씩 흐려지는 듯 했다. ’나는 살아 있어.‘ 라는 말이 들렸다. 그런데 ’나도 죽을 거야‘ 하는 말도 들렸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지?‘ 라는 물음도 내 속에서 들려 왔다.
그 후 내 속의 어두운 것을 찾아 하나씩 버리기로 했다. 맨 처음 어둠의 공포를 버렸다. 해는 지구 저편에 있잖아, 아침이면 언덕 위로 솟아오를 거야. 그 다음 엔 애도의 눈물을 버리기로 했다. 땅 문제의 불안도 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결말이 잘 날 텐데 뭘.
그즈음 감이당에 와서 장자를 만났다. 장자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다시 삶으로 이어진다.‘ ’삶과 죽음은 자연 순환의 한 과정이다.‘를 가르쳐 주었다. 우리 삶의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롭게 살아야 함도 알게 해 주었다.
이젠 밤의 어둠도 편안하고 홀로살이도 좋다. 자래가 이룩한 ’앎의 편안함‘을 배우기 위해 걷고 또 걷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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