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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영순 작성일24-06-17 20:50 조회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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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0강감찬 고전학교 시즌4 2학기 렉쳐 준비 장자 24.6.19. 문영순

무지의 불편함

갑자기 자래가 병이 났습니다. 곧 죽을 것 같아 부인과 아이들이 둘러앉아 울었습니다. -중략- 자래가 말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동서남북 어디를 가라해도 자식은 그 명을 따르는 것. 음양과 자식의 관계는 부모자식 간에 관계정도가 아닐세. 음양이 나를 죽음에 가까이 가게 하는데 듣지 않는다면 나는 고집스런 자식. 음양이 무슨 죄가 있나. 대저 대지는 내게 몸을 주어 싣게 하고 삶을 주어 힘쓰게 하고 늙음을 주어 편안하게 하고 죽음을 주어 쉬게 하지. 그러니 삶이 좋으면 죽음도 좋다고 여길 수밖에.” 오강남풀이 장자 현암사 296,297

 

위의 글은 사생존망이 일체임을 깨달은 네 벗 자시.자여.자시 자래 중 자래가 갑자기 병이 났다. 문병 온 자려가 자래의 모습을 보며 위대하구나 저 조화....자네를 쥐의 간으로 만들려나? 벌레의 팔뚝으로 만들려나?’에 대한 대답으로 자래가 말했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정도보다 더 큰 자연과 음양의 관계이니 나는 음양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자연의 변화에 순종해야 하는 당위성을 말하고 있다.

윗글을 처음 읽을 때는 삶의 과정이 계절의 변화처럼 평온하게 느껴졌다. 무겁고 복잡한 삶과 죽음의 과정도 가볍고 단순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런데 거듭 읽을수록 나는 자래처럼 늙어서 편안하다’ ‘삶이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이 무엇일까?

4년 전 여름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간경화가 발견되어 이미 시골로 내려와 산 지 20년이나 지났을 때였다. 다행히 정년퇴직도 무사히 마치고 퇴직 후에는 마을 환경운동, 자신이 하던 인공지능 관련 연구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었다. 그의 나이 77. 갑자기 지병이 악화되어 입원한 지 30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인공지능 연구 활동은 빚으로 남았고 연구논문도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장례 후엔 남편이 남긴 유품을 정리하며 슬픔과 불안 속에서 집안 곳곳에서 보이는 남편의 환영과 함께 살았다. 다행히 2년 후 집이 팔려 은행빚도 갚았으나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함께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자는 지인의 권유에 동참하게 되었다. 바다가 가까이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했다. 집짓기는 시작도 되지 않아 컨테이너에 짐을 정리하고 임시거처로 농막을 마련했다. 농막은 마을과 제법 떨어져 외딴 곳에 있었다. 밤이면 어둠과 적막이 날 더 힘들게 했다.

다음 날부터 가까이 있는 염전해안로를 걷기로 했다. 2키로 남짓 해안을 따라 거대한 갯벌이 펼쳐져 있었다. 온갖 새들이 날아와 먹이를 찾고 날아다니는 풍경 위로 드넓은 허공이 있었다. 매일 그 곳으로 가서 허공만 바라보며 걸었다. 그 후 언제부터인가 슬픔과 불안을 헤치고 내 속에서 들려오는 말들이 있었다.

나는 살아 있잖아’ ‘그런데 나도 죽을 거야’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즈음 감이당으로 왔다. 장자를 만났다. ‘붕새의 우화’ ‘나비의 꿈에서의 변화의 웅장함과 꿈같은 조화의 세계들이 감동적으로 다가 왔다. ‘장자 아내의 죽음이 내게 더 끌렸다. 처음에는 장자가 질장고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이 우스광스러웠다. 다시 여러 번 읽어보니 자연의 변화와 순환의 이치를 깨닫게 해 주었다. 그리고 장자는 생명의 시작과 삶과 소멸의 과정도 자세히 알게 해 주었다. 그래, 그렇구나. 남편의 죽음도 그렇구나.

남편은 원래 삶이 없었어. 형체도 없었어, 기도 없었어. 흐릿한 어둠 속에 있다가 다시 기가 되고 형체가 되고 삶이 되었지. 그리고 다시 죽음이 된거야.’

치료 불가 판정을 듣고 나서 남편은 나는 괜찮아.’라고 말했었다. 월남전 참전 당시 함께 차에 타고 있던 세 사람은 죽고 자기만 살아남은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 후 열심히 잘 살았다고 말 했다. 이렇게 장자는 날 가르쳤다. 슬픔과 불안 등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듯했다.

 

그동안 날 괴롭힌 것은 애도의 슬픔과 혼자 사는 불안이 아니라 자연순환의 이치, 사생존망 일체를 알지 못했던 무지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내가 늙음이 편안하다

삶이 좋다라고 말할 수 없던 것도 깨닫지 못한 무지탓 이었다는 것도. 결국 자래는 그의 부인과 아이들처럼 울고 있던 나에게 사생존망 일체를 깨닫게 한 것이다.

이제는 자래처럼 나도 삶이 좋으면 죽음도 좋을 수 밖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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