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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불편함 2 학기 글쓰기 문영순 (24.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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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영순 작성일24-06-23 16:19 조회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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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0 강감찬 고전학교 시즌4 2학기 렉쳐 글쓰기 24.6.26 수요일 문영순

 

무지의 불편함

 

자래가 갑자기 병이 났다. 숨이 차서 곧 죽을것 같아 부인과 아이들이 둘러 앉아 울었습니다. 중략. 자래가 말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동서남북 어디를 가라 해도 자식은 그 명을 따르는 것. 음양과 사람의 관계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 정도가 아닐세. 음양이 나를 죽음 가까이 가게 하는데 듣지 않는다면 나는 고집 스런 자식. 음양이 무슨 죄가 있나? 대저 대지는 내게 몸을 주어 싣게 하고 삶을 주어 힘쓰게 하고 늙음을 주어 편안하게 하고 죽음을 주어 쉬게 히지. 그러니 삶이 좋으면 죽음도 좋을 수 밖에

오강남 풀이 장자현암사 296, 297

 

자사,자여,자려,자래 네 사람이 모였다. “누가 없음으로 머리를 삼고 삶으로 척추를 삼고 죽음으로 꽁무니를 삼을 수 있을까?” 라고 말하자, 그 때 문병 온 자려가 죽어가는 자래를 보고 위대 하구나 저 조화!” 하며 자연의 변화 현상을 찬탄했다 그 말의 대답으로 자래는 음양과 사람의 관계는 부모자식 간에 관계보다 더 깊다고 말했다. 자연이 준 몸, , 늙음, 죽음으로 이어지는 삶이 좋으니 죽음도 좋다고 했다. 자연이 준 운명에 순종하며 삶과 죽음이 한 몸임을 강조했다. 처음 이 글을 읽을 때는 삶의 과정이 계절의 변화처럼 순조롭게 전개되는 듯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거듭 읽어 보니 늘음이 편안하다’ ‘삶이 좋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이렇게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이 무었인지가 궁금했다. 먼저 생각난 것은 나는 아직 자래처럼 사생존망일체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엔 남편의 죽음 후 내게 닥친 슬픔 불안 등의 우울함 때문이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집,건축 문제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20여 년전 간경화가 발견되어 시골로 이사했다 .무사히 정년 퇴직도 했고 퇴직 후에도 하고 있던 연구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병이 악화되어 입원한 지 30일만에 돌아갔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니 뜰에는 맘껏 자란 잡풀이 가득하고 집에는 주인 잃은 물건들만 가득했다. 함께 살던 50여 년 일상이 우울하고 불편한 일상으로 변하고 말았다. 깊고 어두운 슬픈 마음을 추스르며 유품을 정리했다. 2년 후 집이 팔려 빚도 정리했다. 그런데 그때 까지도 어디 가서 사나? ’하는 막막함이 있었다. 마침 함께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자는 지인의 권유가 있어 동참했다. 바닷가 가까운 새 땅으로 이사를 했다. 집짓기가 아직 시작되지 않아 컨테이너에 짐을 정리하고 임시 거처로 농막을 마련했다. 농막은 마을과 제법 떨어져 외딴 곳에 있었다. 밤이면 어둠과 적막이 날 더 힘들게 했다.

다음 날부터 가까이 있는 염전 해안로로 갔다. 2km 남짓 이어진 해안을 따라 거대한 갯벌이 펼쳐 저 있었다. 아주 가끔은 밀물이 가득 차서 시원한 바다를 보여주기도 했다. 매일 아침 걸었다. 비가 와도 걸었고 눈이 와도 걸었다. 조금씩 무거운 마음이 가벼워 지는 듯 했다. 어느날부터인가 무거운 마음을 뚫고 들려오는 말이 있었다. ‘나는 살아 있어. 나도 죽 게 될 거야..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 즈음 감이당 으로 왔다. 장자를 만났다. 처음 낭송한 글이 위의 씨앗문장 이었다. 시즌 3 낭송 대회에서 암송을 했었지만 그때는 그저 삶의 과정을 무한긍정으로 말하고 있다고 감상을 말했었다. 이번 시즌 4에서는 나는 왜 편안하다고 말할 수 없는가? 하는 질문이 생겼다. 자래도 죽음이 좋다고 했다. 더 죽음을 탐색해 보았다. ‘장자 아내의 죽음을 읽었다. 질장구 치는 장사의 모습이 재미있게 보였다. 아내가 죽었는데 질장구를 치고 노래를 부르다니? 그런데 장자는 생명의 시작, 소멸의 과정, 다시 죽음이 삶으로 이어지는 자연 순환의 이치를 알게 해주었다. , 그렇구나. 남편도 다시 삶으로 이어지는구나. 나는 자래의 부인과 아이들처럼 오랜 시간을 울고 있었구나! 마음 속 무거움이 가벼워지는 듯했다.

남편도 원래 삶이 없었어. 형체도 기도 없었어.흐릿한 어둠 속에 있다가

기가 되고 형체가 되고 삶이 되어 살다가 다시 변해 죽음이 된거야. 지금은

큰방에 편안히 누워 있지.

그래서 장자는 울기를 그만 두었다고 했다. 나도 울기를 그만 두어야겠다. 장자가 말한 자연 순환의 이치와 자래를 통해 가르치는 사생존망일체를 알지 못했던 무지때문에 불편했던거다.

장자는 춘추전국시대 전쟁의 아수라장 속에서 생명의 보존을 출발점으로 철학을 시작했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생명의 활력을 잃지 않고 일상의 기쁨을 충분히 누려야 한다고 했다. 우리도 끊임없이 생노병사의 고통과 만나며 살고 있다 .세속적 욕망이나 부귀의 생리에 휘말리지 말고 별일 없이 명랑한 삶을 목표로 살아야 할 것 같다. 이제 집짓기 문제가 해결되면 이젠 어느 곳에서도 살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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