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4학기 3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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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혀녹 작성일24-10-11 18:42 조회15회 댓글0건본문
2024.10.09. 수요일 후기
1교시
니체의 안티크리스트 낭송에서 니체는 계급으로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나눈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불교를 온화한 풍토와 매우 부드럽고 관대한 관습이며 이런 운동의 진원지는 높은 계급층, 학문을 하는 계급층이 존재하는데 그들은 평정, 무욕, 명랑을 최고의 목표로서 지향하고 성취한다. 반면 그리스도교에서 구원을 얻으려는 자들은 최하층 계급이며 이 종교에서는 권태를 물리치는 일이자 수단으로서 죄에 대한 결의론, 자기비판, 양심의 심문이 행해진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두 종교가 서로 다른 길을 가지만 결국 추구하는 방향은 같지 않은가. 굳이 높은 계급과 낮은 계급으로 나눌 필요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2교시
신의 역사에서는 새로 접한 단어들이 많아 책을 읽기가 힘들었지만 강의를 통해 잘 알지 못했던 이슬람 종교를 조금이나마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지난 시간에 배웠던 이슬람이란 단어는 ‘내어줌’, ‘항복’이다. 무슬림은 자신의 존재 전부를 창조자에게 내어주는 사람이었다.
이슬람교의 실천 교리: 신앙고백(샤하다), 기도(살라트), 순례(하지), 금식(사움), 희사(자카트).
이슬람에서 국가는 정치와 종교가 결합 된 체제이다. 이번 시간에는 ‘움마’라는 이슬람 공동체의 탄생 이야기다.
쿠라이시족과의 불화 이후 무함마드는 정치적 위기 타게 방법으로 70가구를 이끌고 메카에서 메디나로 향했다. 이들과 이전에 유대인들이 서로 적대시 하는 아랍 부족들 사이에서 어느 한쪽과 연합함으로써 오아시스에서 세력을 합쳐서 새로운 무슬림 공동체 ‘움마’를 형성했다. 624년 1월 메디나 유대인들의 적대가 계속되리라는 것이 분명해지자 알라의 새로운 종교는 독립을 선언했다. 무함마드는 무슬림에게 예루살렘 대신 메카를 향해 기도하라고 명했다. 무함마드는 수준 높은 정치적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632년에 오래된 아랍 이교의 의례인 ‘하지’를 이슬람화해 이른바 ‘고별 순례’라는 것을 만들었고, 이를 아랍인들에게 너무나 소중한 다섯 번째 ‘기둥’으로 삼았다. 모든 무슬림은 한 번은 하지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전통적 순레 복장을 입고 카바에 모일 때, 순례자들은 일상의 자기중심적 집착에서 해방되어 하나의 중심과 방향을 지닌 공동체 안으로 이끌리는 느낌을 받는다.
632년 6월 무함마드는 갑작스럽게 죽었다. 아라비아의 정치적 일체성은 굳건했다. 알라의 종교는 더 진보한 종교의 특징인 동정심의 에토스를 도입, 형제애와 사회 정의가 중요한 덕목이었다. 강력한 평등주의는 계속해서 이슬람의 이상을 특징짓는다.
다수파인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
무함마드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그의 절친 아부 바크르가 다수의 지지로 수니파의 지도자가 되었고, 656년 무함마드의 사촌 동생이자 사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가 4대 후계자(칼리파)가 되었고 시아파는 그를 최초의 ‘이맘’(지도자)로 부르게 된다. 지도자와 관련한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은 교리적이기보다는 정치적 문제였다.
수니파는 토라와 비슷한 법규인 샤리아 법이 만들어지고 시아파는 기독교의 성육신 교리와 가까워 보이는 사상을 발전시켜 나갔다.
‘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앗살라무 알라이쿰)’
3교시
토머스 머튼의 일기는 일기에서 1부는 1939~1941년의 기록이 담겨 있다. 머튼은 하느님을 만나기 전 자만심과 이기적이고 지칠 줄 모르는 분노와 탐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머튼은 일기를 쓰며 자신을 반성하며 성찰하였고, 자서전을 완성하였고 간간히 소설도 쓰지만 재미가 없었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머튼은 트라피스트 회원이 되기 위해 필로테우스 신부님을 찾아가 의논하지만 신부님은 수도원 보다 작가가 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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