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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비 작성일24-11-18 19:46 조회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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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4학기_에세이_남동완

 

 

삶의 경제학 실험



숫자의 지배

600만 원. 매달 통장에 찍히던 숫자였다. 안정과 성공의 상징처럼 보였다. 이 숫자는 내 삶을 감싸는 따뜻한 담요였고, 동시에 나를 족쇄처럼 붙잡고 있었다. 겉으로는 부유해 보였으나, 마음 한구석에는 묵직한 공허가 자리 잡고 있었다. 풍요 속에 숨어 있던 불안이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IT 업계를 떠나고, 새로운 길을 걸었다. 한 가구 공장에서 월 130만 원을 벌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그 작은 돈은 내게 전혀 다른 세계를 열어주었다. 적은 돈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높은 수입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닌 자유였다.

그러나 내 안에는 여전히 물질적 성취에 대한 갈망이 남아 있었다. 나는 작은 가구 회사를 차렸다. 하루 12시간씩 온 힘을 쏟아부었다. 4년 만에 월 매출 1억을 달성했다. 그 순간, 성취감은 컸다. 그러나 그 기쁨은 짧았다. 숫자는 다시금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더 높은 매출, 더 큰 성공. 그러나 이상하게도, 삶은 점점 공허해졌다. 나에게 경제학은 없었다. 


숲의 경제학 : 자립과 자족

월든이라는 이름, 그 울림은 단지 하나의 지명에 머물지 않는다. 그 속에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삶의 본질이 자리하고 있다. 월든은 단순한 자연 속 생활의 기록이 아니다. 삶을 새롭게 정의하고 그 근본을 찾으려는 실험의 장이다. 소로가 말했듯이, "나는 삶의 본질적인 사실을 직면하고, 인생이 가르쳐주는 바를 배우기 위해 숲으로 갔다." 이 한마디에 그의 소박함, 자족, 그리고 물질의 포기가 담겨 있다.

소박함이란 무엇인가?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본질에 집중하는 힘이다. 단순히 가진 것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내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직시하는 것. 그리고 포기란 어떤가? 현대 사회에서 축적과 소비가 미덕처럼 여겨지지만, 소로는 그것이 오히려 삶을 무겁게 한다고 보았다. 자본주의의 흐름에서 벗어나 자신을 가볍게 하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길, 그것이 곧 포기였다. 자족은 남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기준으로 만족을 찾는 일이다. 소로의 삶은 그 자체로 그런 실험이었으며, 월든은 그를 위한 배경이었다.

소로의 경제학은 우리가 아는 경제와 결이 다르다. 월든에서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 않았다. 돈 대신,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한의 만족을 추구했다. 손수 지은 집, 직접 가꾼 밭, 그리고 거기서 자란 콩들. 그것은 그저 생존을 위한 노동이 아니었다. 그에게 경제란 단지 숫자가 아니라, 삶의 흐름을 조율하고, 자립과 자족을 실현하는 수단이었다.

그는 가계부를 통해 지출과 수입을 꼼꼼히 기록하며 경제적 독립을 통한 자유를 찾아갔다. 노동을 통해 얻는 물질적 수익보다 더 큰 가치는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터득한 지혜였다. 그의 손으로 만지고, 땀 흘려 다듬어낸 나무, 흙, 돌들. 그것은 단순한 자재가 아닌, 그의 삶의 일부였고, 그와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였다.

월든의 첫 장이 경제학으로 시작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소로가 보여주는 경제는 돈의 흐름이 아닌 삶의 흐름을 다루는 경제다. 그는 자급자족의 방식으로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한의 만족을 누리는 방법을 끊임없이 탐구했다. "무엇을 먹고 살지?"라는 질문은 그저 생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나아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소로는 그 질문을 통해 물질적 욕망을 줄이고, 진정한 자립의 길을 찾고자 했다.


신탁자 : 도덕적 경제학

숲 속에서 소로가 혼자 가계부를 기록했다면, 도시 한복판에서 공동체를 운영하며 가계부를 작성한 이는 바로 간디였다. 간디의 경제학은 단순히 수익과 지출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공동체의 자립과 나눔을 실천하는 장이었다. 그는 아쉬람 공동체에서 일상의 경제 활동 하나하나를 꼼꼼히 기록하며, 공동체 구성원들이 물질적으로 자립하고 동시에 삶의 본질을 추구하도록 이끌었다.

간디에게 가계부란 단지 돈의 흐름을 기록하는 장부가 아니었다. 그것은 각자의 필요와 소득을 조화롭게 맞춰가는 사회적 실험이었다. 그의 경제학은 자급자족을 기반으로 하며, 공동체 안에서 모든 구성원이 최소한의 필요만을 채우는 삶을 지향했다. 그는 종종 “우리는 지구의 자원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할 권리가 없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 말은 환경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을 절제하고,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는 자립의 원칙이었다.

간디의 경제학은 도덕적 경제학이었다. 자립과 나눔을 실현하는 도구이자, 공동체의 윤리적 원칙을 실천하는 장이었다. 경제란 개인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간디에게 경제란 공동체를 위한 봉사였고, 모두가 평등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공동의 노력이었다. 그는 “진정한 경제는 우리의 도덕적 성장과 분리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간디의 경제는 비폭력적 소비와 생산의 원칙을 바탕으로 했다. 그는 필요한 것만을 소유하고, 지나친 욕망을 경계하며 살았다. 이 태도는 공동체 전체에 깊이 스며들었다. 그의 경제 철학의 중심에는 '트러스티십(trusteeship, 신탁)' 개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트러스티십은 부유한 자들이 자신의 재산을 공동체의 신탁으로 보고, 그것을 모든 이들을 위한 자산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간디는 “나는 돈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 돈은 봉사하는 자의 손에만 있을 때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라고 말하며, 부유한 자들이 자신의 재산을 모두를 위해 쓰기를 요구했다.

또한, 그는 자립적 생산과 자급자족을 경제의 핵심으로 삼았다. 간디는 인도 국민들이 외국 상품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필요한 물품을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스와데시 운동을 펼치며 인도인들이 손수 물품을 만들고 소비하도록 독려했다. 스와데시는 단지 경제적 독립이 아니었다. 자존감 회복과 독립 의식을 고취하는 사회적 저항 운동이었다. 외국 상품을 버리고 손으로 실을 잣고 직조를 하는 행위는 경제적 자립을 위한 방법이자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었다. 간디는 “스와데시는 자립의 실현이다. 그대가 자신을 자립시키지 못한다면 진정한 자유는 없다”고 말했다.

간디의 경제학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배려하는 데에도 중점을 두었다. 그는 언제나 “가장 가난한 자의 얼굴을 보라”고 강조하며, 경제 정책이나 소비가 최하층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경제는 아무 의미가 없다”라고 말하며 약자를 보호하는 경제 구조를 지향했다.

간디의 경제학은 인간과 자연, 물질과 정신이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는 경제였다. 그는 돈을 쌓기 위해 애쓰지 않았고, 각자의 필요를 채우는 것에 집중했다. 이는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자존감을 갖고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공동체의 경제였다.


돈의 흐름을 본다는 것

기윤샘과 함께 간디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그의 가계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간디가 공동체와 함께 살며 그들의 재정을 관리했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가 단순히 돈을 계산하는 것을 넘어 돈을 통해 자신과 사회를 성찰했다는 사실에 놀라곤 했다. 그에게 돈은 단순히 숫자나 자산이 아니라, 그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방향을 비추는 도구였다. 기윤샘과 대화를 나누며 이런 깨달음에 다다랐을 때, 나도 스스로의 돈 사용 방식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간디의 발자취를 좇아 나도 가계부를 써보기로 했다.

가계부를 쓰기 시작한 첫 며칠 동안은 단순히 내가 소비하는 항목과 액수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매일 카드로 결제하며 소비한 항목들이 하나씩 쌓여갔다. 처음에는 큰 의미 없이 하루를 마감하며 ‘식비’, ‘교통비’, ‘기타 비용’ 등으로 분류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목록들이 단순한 소비 내역을 넘어 내 삶의 거울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소비 내역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어떤 욕망을 위해 돈을 쓰고 있는지, 그 지출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매일매일 쓰는 기록이 나의 무의식 속에서 매일 반복되는 욕망과 필요를 비추어주고 있었다.

한 달 정도가 지나자 내 지출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은 생각보다 ‘식비와 간식’이었다. 나는 내가 나름대로 검소하게 산다고 생각했지만, 가계부 속 숫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나의 일상은 어쩌면 조용한 만족을 위한 소비로 가득 차 있었다. 작은 즐거움을 추구하며 여유를 느끼는 것도 삶의 중요한 부분일 수 있지만, 나는 이내 이 소비가 진정한 만족을 주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소비를 들여다보며 스스로의 사치스러움을 조금씩 자각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부끄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기윤샘과 함께 나눈 간디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간디는 자신이 가진 재산을 공동체를 위한 신탁으로 여겼다. 그는 돈을 소유하기보다는 사회에 봉사하는 도구로 바라보았다. 그의 철학을 되새기며, 나 또한 그 의미를 되찾고자 작은 금액이나마 감이당 청년펀드에 기부해보았다. 그렇게 내 소비에서 일부를 나눌 때, 그 부끄러움은 약간 가벼워졌고, 내가 누리는 것의 일부를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마음 한구석을 채웠다. 나의 지출이 단지 나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큰 가치와 연결된다는 사실은 내 삶에 깊이 새겨졌다.

가계부를 쓰면서 내 소비를 ‘영성’과 ‘지성’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분류하게 되었다. 단순히 ‘식비’나 ‘교통비’ 같은 외적인 분류를 넘어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성을 담은 새로운 카테고리를 설정한 것이다. ‘영성’은 공동체와의 연결을 뜻하며, 친구들과 나눈 식사나 기부 활동처럼 나를 넘어서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지출을 의미했다. 반면, ‘지성’은 자신을 위한 배움과 성장의 기쁨을 담아내었다. 세미나나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으며 쌓아가는 지식과 통찰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자양분이 되었다.

이렇게 분류를 만들고 나니 내 소비가 단순히 돈을 쓰는 행동이 아닌,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과 가치를 담고 있는 행위로 변모했다. 가계부의 기록이 나의 일상 속 작고도 소중한 목표들을 비추어주고, 나는 점점 더 간디와 소로의 삶의 방식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실감을 했다.

가계부는 숫자로 이루어진 장부이지만, 간디와 소로가 말했듯, 그 안에는 우리의 가치와 욕망이 담겨 있다. 그들에게 돈은 단순한 자산이 아니었다. 그들은 돈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삶을 찾아갔다. 나 역시 가계부를 통해 내 삶의 흐름을 들여다보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되묻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지출이 단순히 일회성 소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해 갖는 태도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돈이란 내게 들어오고 다시 흘러나가는 존재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그 흐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이 내 삶 속에서 흘러가고 돌아오는 위치에 대해 균형 있는 태도를 유지하라는 소로의 말처럼, 돈이 나에게 자유를 주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주는 존재로 자리할 때 비로소 우리는 돈과 함께 살아가는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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