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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주역 2학기 나의 삶 나의 몸 스토리텔링 - 2조 한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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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거름 작성일25-06-20 23:57 조회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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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취약하다. 그래서 변할 수 있다

 

 

도대체 내 똥은 왜 이럴까. 나의 오랜 고민이다. 별 생각 없이도 잘 생산하다가, 어느 때 부턴가 다 풀어진 똥을 누기 시작했다. 참 이상한 변화인데, 언제부터 그랬는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무엇 때문에 시작된 것인지는 더 모르겠다. ‘별 거 아니겠지, 원상복구되겠지’ 하는 무관심과 두려움으로 한참을 그냥 보냈던 것 같다. 그러다 가게 된 한의원에서 기억을 못하면 만성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천천히 오랜 시간을 두고 병이 깊어져서 특별한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큰 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동의보감을 읽으니, 다 내 얘기 같았다. 신장도 문제 있어 보이고 위장도 문제 있어 보이고, 양기도 고갈된 것 같고 음기도 고갈된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음기 양기에 다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나는 지금 꽤 잘 지내고 있었다. 밥도 맛있고 잠도 잘 자고 배우는 것도 재밌고 사람 만나는 것도 즐거웠다. 그렇다면 병이 깊더라도 두려워할 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워서 몸을 보려는 게 아니라 궁금해서 몸을 알고 싶었다. 왜 몸이 바나나 생산을 멈춘 것일까? 내 어떤 습관이, 오장육부 어디를 계속 힘들게 하고 있던 것일까? 예쁜 바나나를 만들도록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시작부터 문제라고?

출발점은 나의 최종 생산물, 똥. 가장 좋은 똥은 황금 색에 물 위에 동동 뜨는 바나나라고 한다. 왜 동동 뜰까. 물과 영양소를 쫙 뺀 껍데기만 뭉쳐 나오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나의 똥은 황토 색에 물 아래 가라 앉는 풀어진 설사 모양이다. ’뭉치지 않는다’가 제일 큰 특이점이다. 왜 이 현상이 벌어질까? 혼자 생각해 볼 때는 똥이니 당연히 대장 문제라고 생각했다. 대장의 금기가 약해져서 제대로 수렴을 못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사주에도 금이 있는데, 그렇게 발휘를 못하고 사나? 화가 너무 강해서 금을 녹이나? 마무리가 약한 게 수렴 기운이 약한 것 같긴 하지만, 똥도 풀어질 정도인가. 헷갈렸다.

동의보감을 조금 더 읽으니 한 단계 위, 소장으로 올라가게 됐다. 똥이 설사로 나오는 것은 물이 많기 때문인데, 그건 소장이 진액과 찌꺼기 구분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뭐가 맑은 액이고 뭐가 탁한 찌꺼기인지 구별을 못하고 대부분을 다 대장으로 내려보내는 것이다. 이해는 가지만 여전히 좀 이상했다. 그래도 나름 할 거 안 할 거 구별할 줄 아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좀 더 고민해보자 확신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매일 생활하며 아주 작은 것들에서 내가 정말 구별을 잘 하고 사나? 유튜브를 꺼야 할 때는 잘 구분하나? 이 책을 얼만큼 읽고, 저 책은 얼만큼 읽어야지 정하고 시간을 구분해서 쓸 줄 아나? 아, 이렇게 생각하니 전혀 아닌 것이 느껴졌다. 청탁의 구분은 내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 내 소장은 왜 맑고 탁한 것, 무겁고 가벼운 것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있을까. 동의보감은 몸이 습해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대체로 설사증은 다 습증을 겸하므로 초기에는 중초를 다스려 수액과 곡물이 잘 나누어지도록 해주고 하초를 삼리(소변으로 습사를 내보내기)시켜주며, 오래 되었으면 끌어올려주되…                                                (신완역 동의보감 내경편, 허준, 법인문화사, 389쪽)


습기가 꽉 차 있어서 중초, 비위와 장이 원활히 제 할 일을 못한다는 것이다. 열기가 없이는 습해질 수 없다. 그렇기에 몸에서의 습기라 함은 항상 습열이다. 한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습열의 답답함을 모를 수 없다. 여름철 비가 찔끔 온 뒤의 도시. 너무 습해서 가만히 서 있어도 몸에 물이 맺힐 것 같다. 그 물에 30몇 도의 뜨거움도 그대로 담겨 있어 숨 쉬기도 답답하다. 이런 습하고 더운 여름에는 공기도 잘 안 통하는지 바람도 안 불고, 바람이 어쩌다 불어도 시원해지질 않는다.

몸에 습열이 많다는 것도 그 상태일 것이다. 뜨겁고 무거운 습기가 꽉 차 있어 쉽게 움직임이 일어나질 않는다. 계속 돌아야 할 기와 진액이 상쾌하고 맑게 순환을 못할 것이다. 습기를 저장하고 있지만, 습열과다를 가장 싫어하는 것이 비장이라고 했다. 비장과 위장은 짝꿍이다. 소화기 시작부터 문제인 것이다. 비단 소화기의 문제만도 아니다. 동의보감에선 비위가 인간의 뿌리라고 했다. 설사똥을 보건대, 난 뿌리부터 이상이 있는 것이다.


내 능력으로 사는 게 아니다

나는 소화가 안 되거나 얹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들보다 많이 먹었고, 그에 비해 살이 안 쪘다. 수렴보다 발산하는 기운이 더 센 것이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비위가 건강하게 태어난 듯하다. 그리고 그게 문제였다. 미리 받아서 태어날 때 갖고 나온 것인데, 나는 원래 부자라고 착각하곤 마구 긁어 썼다. 어차피 소화는 잘 될테니 위가 팽팽히 늘어나 아프기 시작할 때까지 먹은 적이 많다. 음식의 조화같은 것은 관심 밖이었고 먹고 싶은 맛을 먹었다.

‘탄수화물? 설탕? 인스턴트? 괜찮아. 운동하면 돼.’ 독특할 게 없이 참 많이 본 패턴이다. 왜 이런 자기 과신의 패턴에 빠졌을까. 내가 지금 모습을 갖게 된 건 지금까지 만난 여러 환경조건들 덕이기에, 그 중 하나만 변해도 내 모습은 다를 것이라는 사실을 체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의 현재 모습은 다른 모든 것들의 영향이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살았고, 이런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자란 이런 부모님이 키웠고, 이런 동생들이 있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컸고, 이런 친구를 만났고, 하필 태어난 게 이때였고, 그때 세계는 이랬고, 그래서 가능했던 경험들을 했기 때문에, 나는 지금의 나로 살 수 있다. 나로 살도록 정해져있기 때문에 이렇게 사는 게 아니다. 인지도 못하는 새에 나를 형성한, 내가 알 수 없는 여러 환경들과 조건들 덕에 나는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다. 이번 계엄사태가 느끼게 해주었다. 하나만 달랐더라도 우리는 5.18 광주를 다시 살게 됐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운명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어떤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45년 전에 광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취약하므로 다시 변할 수 있다

이 원리는 내 몸 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물과 밥을 먹어서 산다. 내가 날 때 갖고 있던 게 아니라, 내 몸에 새로 들어오는 것이 내가 된다. 얼마 지나면 뭘 먹었나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밥이 나를 만든다. 정말 부지런하게 지치지도 않고 매일 세 끼를 챙겨 먹으며 내게 계속 새로운 걸 넣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원래 그래’라는 말은 몸에 있어서는 별로 통하는 얘기가 아닐 것 같다. 원래 비위가 강하게 태어났지만 그건 시작점이었을 뿐, 내 몸은 무얼 어떻게 먹었는지를 따라 점점 만들어지고 있던 것이다.

음식이 내가 된다는 것은 그 음식의 기운이 들어와서 내가 된다는 것이기도 하고, 그 음식이 내 오장육부를 거치며 오장육부 자체를 변하게 하기 때문에 내가 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구성품도 바뀌고, 그 구성품을 담는 장식장도 바뀐다는 것이다. 사실 오장육부는 장식장이 아니라 나 자체다. 감정, 생각, 의지, 뜻 등 우리가 보통 한 사람의 핵심이라고 여기는 부분이 다 오장육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은, 안 바뀌는 게 없다. 그 말은 내가 사실 굉장히 취약하단 것이다. 굳고 단단해서 절대 바뀌지 않는 어떤 것을 내 몸은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런 몸, 그런 단단한 건강을 갖고 있다는 나의 착각이 내 식탁을 정반대의 길로 가게 했고, 몸은 자연스런 원리에 따라 먹는 대로 만들어진 것 뿐이다.

무리한 식습관 덕에 비위가 과로하다 상했다. 비위는 점점 더 소화 기능이 약해지는데 먹는 건 그대로다. 어떻게든 열일하지만 제대로 처리가 안되니 막히거나 그냥 나간다. 습열은 가득해지지만 진액은 제대로 못 만든다. 자연히 살이 빠진다. 비위에서 넘쳐나온 습열이 점차 온 몸에도 가득해진다. 습열이 꽉 차니 진액도 기도 잘 못 돌아 막히고 열은 위로 오른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잠도 잘 안 온다. 비위에서 부터 처리가 안 되니 소장도 대장도 빨아먹어야 할 것을 다 못 빨아들이고 내보내게 된다. 진액이 부족해지고 기도 잘 안 통하니 장의 빨아들이는 작용 자체도 제대로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내 설사똥은 자연스런 것이지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다. 다만 과신의 세월이 내 느낌보다 길었던 것 같고, 과신이 내 생각보다도 지나쳤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취약하기에 또 변할 수 있다. 비위가 강하게 태어났지만, 그 타고난 것이란 것도 변화될 수 밖에 없기에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이 얼마나 취약하든 간에, 나는 또 변할 수 밖에 없다. 하나 달라진 것은 변할 수 밖에 없단 걸 내가 알게 됐다는 것이다. 나는 오장육부 중 뭐 하나라도 변치 않게 지킬 힘 없이 취약하다. ‘뭘로 배를 얼마나 채울까’라는 아주 작은 것 밖에는 결정할 수 없지만, 이 아주 작은 것이 내 오장육부를 만들게 된다는 걸 알면 나는 굉장히 강하기도 하다. 다 풀어진 똥을 바나나똥으로 만드는 청탁을 구분하는 힘은, 자기 과신에서 빠져나와 내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아는 데서 시작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한 끼를 먹는 아주 작은 순간에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는 데서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의 방향은 습열이 가득찬 비위를 쉬게 하고 통하게 하는 방향이어야만 할 것이다. 바나나똥은 그 결정이 쌓여 새로운 내가 됐을 때 나올 것이다. 그때 보자, 황금 바나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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