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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토요주역 2학기 6주차 후기 - 지풍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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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웃집도토리 작성일25-06-02 22:08 조회5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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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풍승(地風升) - ‘올려줌’의 의미를 돌아본 시간


   작년 처음 지풍승을 공부했을 때 받았던 느낌과 오늘 수업에서 받은 느낌은 사뭇 달랐다. 마치 소개팅 상대를 큰 기대 없이 두 번째로 만나게 되었는데 갑자기 대화중에 ‘어? 뭐지 이 느낌?’ 상대방에게서 감춰진 매력을 포착한 순간 심쿵하는 느낌이었달까? 이전 지풍승의 의미는 작은 요소들이 쌓아올려지며 높아지는 모양새로 사소한 일상의 습관을 잘 쌓아가야한다는 정도로 기억되었다. 그러나 이번 공부에서는 괘상, 괘사, 효사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따뜻한 기운으로 서로를 끌어 올려주는 에너지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학인들과 모여 택지췌를 이루며 지풍승으로 자연스럽게 국면이 전환된 느낌도 들었다.

   첫 발제를 맡은 윤희샘은 그동안 지풍승(地風升)의 ‘승(升)’을 ‘쌓다, 오르다’로 생각했다가 올해 처음으로 ‘올리다’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했다. 직장에 얽힌 에피소드를 곁들여 설명했던 '올리다’의 의미는 구이효와 육오효와의 관계에 대한 해석이기도 했다. 단순한 쌓여짐과 올라감이 아니라 숨겨진 '포용'과 '순종'이라는 덕목이 중요한 포인트였다. 불현듯 지난주 조모임에서 나눴던 대화내용이 생각났다. 내가 겪고 있는 문제가 화제로 떠올랐을 때 조원들은 쉽지 않았을 용기를 내어 내게 도움이 될 사례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 이야기들은 마음에 강하게 와 닿았다. 지금 쥐고 있는 고민을 어떻게든 하루빨리 놓아버려야겠다. 상헌샘이 말했던 ‘활자시(活子時)’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때 주고받았던 것은 소소했지만 따뜻한 배려와 포용이었다. 지풍승괘의 '올려줌'이라는 의미와 묘하게 겹쳐졌다. 학인들은 때로 이미 누군가에게 대인의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승화샘이 발제하는 ‘올곧음’을 듣다가 ‘어머, 지풍승에 이런 내용도 있었나?’ 잠시 멈춤상태가 되었다. ‘올곧음’은 혼자 있을 때에도 두려워할 만큼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돌아봄이 전제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덕목이었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승(升)’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승화샘의 똑 부러지는 문제의식과 차원이 다른 질문, 치열한 고민도 놀라왔지만 항상 문제의식을 완전연소시키는 태도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공부방식과 사고패턴마저도 불순물을 남기지 않으려는 방식이야말로 진정으로 인류와 환경을 생각하는 '찐'삶의 태도로 느껴졌다. 명쾌하게 정리된 발제를 들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주역신동 영수샘, 주역영재 승화샘같은 훌륭한 청년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보니 생각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된다. 같이 공부하는 것이 뿌듯하고 흐뭇하게 느껴졌다.

   현지샘의 ‘악마는 일상의 디테일에 있다’라는 글쓰기는 마치 내 이야기를 현지샘 버전으로 듣는 것 같았다. 제목선정이 신의 한수였다. 내가 발표했으면 자칫 숙연했을 내용이었는데 현지샘이 하니까 캐쥬얼하면서도 명랑한 버전이 되는구나. 늘 큰 것만 추구하다가 매번 소소한 것을 놓치며 살아가는 1인으로서 '여러모로 철저함이 엿보였던 현지샘도 나와 비슷했구나' 하는 생각에 적잖이 위로가 되었다. ‘적소(積小)’는 한순간 한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명상에서 매순간 호흡의 들고남을 느끼는 것처럼 ‘깨어있음’이야말로 적소를 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방법일는지도 모르겠다. 늘 글쓰기를 염원하고 있으면서도 그럴싸해 보이는 어떤 것을 만들 욕심에 생각만을 거듭하다가 하루 단 한 줄도 쓰고 있지 못한 나를 생각해본다. 그래, 이제부터 장황한 이야기 필요없고 그냥 ‘적소(write)’하는거다. 

   씨앗이든 묘목이든 나무를 심을 때 그 크기에 비례하는 두께의 흙을 꼭꼭 눌러 둔덕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상헌샘의 이야기는 지풍승 괘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힘껏 눌러 밀착된 흙은 씨앗을 품는 일종의 포(胞)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씨앗이 안정되게 자리잡고 움트기 위해서는 반드시 감싸줌 즉 포용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또 지풍승을 택지췌로 지산겸으로 수풍정으로 이리저리 변형시켜나가며 관련된 효사를 읽어내는 과정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착종을 어떤 기준으로 어느 시점에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것인지 늘 궁금했었는데 지풍승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변용괘?(무어라 불리는지 잘 모르겠음)의 활용으로 주역의 묘미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담임샘은 토요주역 학인들에게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기회의 씨앗을 나누어주었다. 이 씨앗을 받아 키워나가는 것은 학인들의 몫이다. 누구나 씨앗을 심을 때 자라날 나무의 최종모습은 알 수 없다. 그저 씨앗을 심고 기름에 힘쓰며 추후 필요할 때 가지치기를 하면 될 것이다. 군자로 거룩하게 변모된 상헌샘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을사년의 천지운기가 시작되고 토요주역의 기운과 맞물리면서 감이당 토요주역은 학인들(精)과 향학열(氣)과 배움정신(神)이 삼위일체가 되어 나날이 오르고 있다. 지풍승(地風升)은 포용력으로 배움의 씨앗을 서로 북돋우는 학인들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포(胞)- 생화의 근원 / 충(蟲)-안팎으로 제압력 기르기

 

   에너지의 중심부에 위치한 포는 여성에게는 임신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생명을 기를 수 있는 가장 깊은 샘물의 근원이다. 인체 안에서도 정기를 잘 받을 수 있는 임맥과 충맥이 만나는 명당자리에 위치해있다. 12운성으로 따져볼 때 이승과의 끈이 끊어진(絕) 연후에 태(胎)가 생겨난다. 주역괘로 생각해보자면 지뢰복인것이다. 작년 간호학원에서 임신과 출산에 대한 수업을 들으면서 태아가 자라는 경이로운 과정을 공부했던 적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포안에서 태(胎)와 양(養)의 충분한 시간을 거쳐 나온 것을 생각하면 생명체는 그 자체로 참 놀라운 것이었다. 이렇게 놀라움을 주는 근본 자리가 바로 포인 것이다.

   동의보감의 내경편 중에서 재미있는 주제 중 하나가 ‘충(蟲)’이었다. 삼시충(三尸蟲)을 다룬 부분은 의학서라기보다 민담을 읽는 듯 했다. 실제인지 허구인지 비유인지 모를 삼시충의 설명에서 호랑이 민화와 같은 해학성이 느껴졌다. 외부에서 들어온 기생충만 생각했었지 몸 자체에서도 열이 생기면 충이 생긴다니. 온도와 습도와 공기가 충족되면 미생물이 생기게 되는 현상이 떠올랐다. 천지운기가 맞물려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 낸 모습이기도 했다. 천지만물은 역의 법칙 아래 생극제화로 적절한 힘의 균형을 끊임없이 만들어 가고 있다. 인체내부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마무시하게 많은 균과 벌레가 공존했음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충과 균이 몸속에서 유해한 적군이 되어 막강한 힘을 발휘하지 않도록 늘 외부와 내부의 소통이 정체되지 않아야 한다. 그렇기에 정기신의 원활한 운행을 통해 내보낼 것과 가지고 있을 것의 균형잡힌 삶의 태도를 강조했던 것이다. 

   미균샘의 글쓰기에는 알고보니 고뇌가 담겨있었다. 내용을 사수하고자 문단나눔을 포기했던 결단 덕에 우리는 모두 ‘포(胞)’에 대해 깨알같이 정리해놓은 대왕엑기스를 수령하게 된 것이었다. 처음엔 읽기가 어려운 듯 했지만 워낙 내용이 빠짐없이 빽빽하게 정리되었기에 포에 관한한 미균샘 글쓰기를 다시 읽으며 복습해 보기로 한다. 감사한 마음이다.

   지난 시간 형진샘의 "오장육부가 ‘나’이다!" 라는 정리가 강렬하게 와닿았었는데 오늘은 ‘폐가 왜 양중의 태음인가’에 대한 설명이 와닿았다. ‘소문’에서는 폐를 양중의 태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오장전체를 음으로 여기지만 오장 각각을 또다시 음양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폐와 심은 삼초 중 상초에 해당한다. 상초에 해당하는 것은 '양'장이 된다. 폐는 몸의 앞쪽에 위치해서 태'음'이라고 한다(몸의 앞쪽이 음, 뒷쪽이 양). 오장육부의 양과 음에 대한 구분을 다시 상기해보는 시간이었다.

   토요주역공부 시간이 참 소중하다. 기가 잘 돌고 있는 감이당에서의 공부를 놓지 않고 있다면 외부의 충(蟲)이든 내부의 충(蟲)이든 힘의 우위에서 확고하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호흡으로부터 시작된 기의 연결이 오곡의 정미로운 기운과 하나되어 오장육부로 골고루 퍼지며 생화하는 작용은 천지의 모습이다. 천지의 다른 이름이 다름아닌 ‘포(胞)’다. 이는 언제든 새로운 창조물을 잉태할 수 있는 생명의 원천인 ‘명문(命門)’이다. 우리는 감이당 ‘토요주역’이라는 ‘포(胞)’안에 머물고 있지 않은가! 이 안에서 학인들은 글쓰기와 말하기와 암송을 생활화하면서 '적소이고대(積小以高大)'의 자세로 공부하며 차곡차곡 삶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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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운삶님의 댓글

조화로운삶 작성일

어쩜 후기를 이렇게 정갈하면서 깊이있게 ~ 샘의 내공이 느껴지는 후기였습니다!
깊이 공감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