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주역 5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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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프로방스 작성일25-03-18 23:51 조회72회 댓글1건본문
5주차 후기 2조 최승천
天地相遇 品物咸章也
天風姤괘는 ‘우연한 만남’이라는 문장을 읽으며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라는 유행가를 떠올리며 가벼운 의미로 읽었다가 姤괘를 함께 공부하며 혼자 얼굴 붉혔다. 하늘과 땅은 서로 만나서 만물을 지어낸다. 서로 만나지 않고서야 비롯하고 형통하겠는가? 만나지 않고서야 어떻게 元亨利貞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姤괘의 만남은 우연한 만남을 말하지만 기약하지 않은 만남이며 창촐 간 느닷없는 만남, 홀연히 생겨난 돌발상황에서 맞닥뜨린 만남, 사건이다. 이 상황에서 대응하는 모습들을 姤괘에서 일러준다.
羸豕孚蹢躅의 초구
양기를 보충해주는 소와 달리 돼지의 속성은 음기를 보충해준다. 그리고 돌발적이고 탐심을 나타내며 성격이 급하고 부산스럽다. 반면에 음의 기질로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며 여성스러운 속성도 가지고 있다는 복희씨 설명에 강의실은 잠시 웃음... 羸豕孚蹢躅에서 孚는 이런 특성이 확실하다라는 뜻. 어쨌든 초구는 돌발적 날뛰고 싶은 마음이 가득인 파리한 돼지가 초구인 것이다. 나에게도 羸豕孚蹢躅모습으로 기억되는 순간이 있었음에 그리고 그런 나를 품어 주었던 얼굴들이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殺身成仁- 구이효의 의로움
구괘의 특수상황으로 초구는 구사효를 만나야 함에도 예기치 않은 변수로 구이효가 이를 품는다.파리하고 나대는 돼지를 품어야 하는 것이다. 姤之時義大矣哉 즉 구괘가 드러내는 때와 의미는 크다. 이러한 때를 맞이하여서는 그 時의 적절함을 제정해야하는 것이다. 의로움으로써 이로움을 제어하고 예로써 욕구를 제어하며, 경건함으로써 태만함을 제어해야 하는 것이다. 상투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고 그때그때 상황을 살펴 정확히 살펴 초기에 빨리 차단해야 하는 것이다. 구이의 자리가 중하기 때문에 굳셈으로써 초기에 사악함을 대응하는 것이다. 구이효는 불행히도 초육효와 딱 마주치게 되었으니 의기가 솟아올라 주저함이 없이 초육효를 어루만지며 통제해야 할 책임을 몸소 떠맡는다. 이것이 구이효의 의로움이다. 공자님의 고국 선왕의 허물을 감추어 주기 위한 알맞은 때와 상황판단으로 스스로 과업을 무릅쓰게 되었다는 설명은 나에게 ‘왜 공부하느냐?’라는 질문을 주었다. 이제부터의 공부는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서 무엇을 품을 수 있느냐? 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을 얼마만큼 품어야 하는지, 공부를 한다는 것은 내가 품은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고민을 안게 되었다.
以杞包瓜 含章
오이는 쉽게 상하는 물건이지만 잘 싸서 보관하면 썩지 않는다. 구오효는 구석까지 세심하게 살펴서 이루어내는 덕을 갖춘다. 망령되게 일어나고 망령되게 만나게 된 구괘의 음(초육효)을 품에 안아주고 있다. 포용함의 도로써 그 음의 썩어 문드러짐을 거두어들여 아름다움으로 변화시킨다. 비록 올바르지 않음에서 시작되었지만 음의 性을 다할 수 있도록 품어 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끝이 올바름으로 맺게 되는 것이다. 이는 창촐한 만남을 피할 수 없음에 건의 덕성으로 오랑케조차 품는 함장으로 구오효의 공력이 하늘로부터 떨어짐(有隕自天)이다. 음으로써는 생각지 못한 것을 얻었을 따름이지 오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천풍구괘는 말한다. 위험하지만 배제하지 않고 품어 주는, ’내침이 능사‘가 아니라는 건의 덕성을
< 동의보감 > 정·기·신의 세 번째 시간 ‘神’
‘神’이란 모든 곳에 있고 정신이 곧 나다.
‘神’이란 실체가 아니고 ‘상징’이라는거, 그래서 볼 수 있지는 않다. 우리가 볼 수 있다면 이다지도 끄달리지 않을텐데...라는 생각을 잠시해본다. 心은 神을 저장하여 일신의 군주가 되고 칠정을 통솔하고 온갖 일을 다 맡는다. 혼·신·의·백·지는 神을 주인으로 삼기 때문에 모두 神이라고 한다. 몸이기도 하고 마음이기도 하기에 몸 마음 따로 있지 않다. 정·기·신은 유형과 무형의 상태로 합쳐지기도 하고 서로를 변화시키기도 하면서 우리의 몸과 정신에 깃들어 있어 꼭 잡고 싶은 것이 ’정신차려‘가 아닌 ’정기신차려‘라는 발제자의 샘의 설명이 와닿는다. 또한 오장은 칠신을 저장하고 칠정을 거느리며 상하면 병이 된다. 그러므로 신과 관련된 병을 오지상승으로 치료한다는 말인즉 오지에 화가 몰려서 담이 되면 전광이 되므로 인위적으로 억제하는 것이 좋은데 나를 극하는 것으로 나를 살리며, 나를 극하는 것으로 눌러주고 내가 생하는 것으로 풀어준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현명한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하니 칠정을 다스리는 일은 역시 쉬운 길은 아닌가 한다.
정·기·신은 ‘하나이면서 셋’이다.
정·기·신은 따로 보지 않아야 하며 경계 짓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이 말은 이들이 각각 생명의 에너지, 생명력, 생명의 빛으로서 우리 몸에 모든 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곡으로 나의 생명을 살리는 精, 혼·신·의·백·지를 다스려주는 神, 호흡을 통해 정과 신의 근본이 되는 氣를 잘 살리는 것 모두가 나의 명을 빛나게 하는 길임을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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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스님의 댓글
길스 작성일"위험하지만 배제하지 않고 품어 주는,내침이 능사가 아니라는 건의 덕성" 후기를 읽으며 다시한번 새겨봅니다. 저에게 꼭 필요한 덕성이네요~후기 잘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