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의 시련] 1차시 후기: 두 개의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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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임 작성일26-03-07 19:32 조회30회 댓글0건본문
두 개의 미로
경칩
3월 5일 종교 인류학의 개강일은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었다.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리도 겨울 동안의 쉼과 회복의 시간을 마치고 이제 공부를 시작한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이 리듬이 좋다. 시작의 설렘과 공부를 마쳤을 때의 충만함의 경험은 매듭을 짓고 문턱을 넘는 수련의 장이다. 12월의 충만함을 위해 종교 인류학 팀은 시작한다.
두 개의 시선
처음 우리가 공부하는 책은 미르체아 엘리아데(1907~1986, 루마니아)의 『미로의 시련』이다. 달님은 두 개의 미로에 관해 얘기하며 이 책의 제목으로는 미궁이 더 적당하다고 한다.
* 미로(迷路, maze): 갈림길이 계속 나와서 길을 잃게 만들고, 방향을 잃고 헤매게 하는 장치이다. 도달해야 하는 진리나 목적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헤매는 과정만이 있다. (예: 카프카의 성(城))
* 미궁(迷宮, labyrinth): 한가운데의 ‘근원, 원형, 본질’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이다. 핵심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시련을 겪어야 한다. (예: 엘리아데의 통과의례)
이것과 연결하여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1854~1941)의 『황금가지』를 똑같이 연구하고 다르게 해석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2009)와 엘리아데를 비교했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진리나 원형은 없다.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이분법으로 사고하는 인지구조를 만들었다. 신화는 대립 구조를 통해 세계를 조직하고 이해한다.
*엘리아데: 근원, 원형, 본질은 실재한다. 통과의례의 전과 후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 통과의례를 통해 경계를 넘어서는 경험을 한 사람은 자기다움을 창조하고 인간다움을 찾을 수 있다.
이런 구도를 보면 우리는 무엇이 정답인지 알기를 원한다. “헤매는 것은 시간 낭비야. 정답을 알려줘. 그러면 정답대로 할게.” 효용성의 논리에서는 ‘헤매는 과정’이 손해라 평가된다. 곧바로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삶에 있어서 그런 왕도(王道)는 없다. 삶의 미로에서 헤맨 후에야 우리는 정답을 알 수 있다. 엘리아데는 헤매는 과정에서 우리는 진리에 가닿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헤매기만 하면 도달하게 되는 것일까? 시련을 겪기만 하면 근원에 다다를 수 있을까?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방향이 없고, 목표가 없고, 의미를 모른다면 ‘개고생’이다. 미로의 과정은 미궁의 방향성으로 의미를 갖게 되지 않을까? 헤맨다는 것은 무언가를 찾는 과정이므로 미로에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우리는 진리를 찾기 위해 자발적으로 공부라는 ‘미로의 시련’을 통과하고 있다.
통과의례로서 글쓰기(달님의 글쓰기 팁)
1. 씨앗 문장 : 새로 알게 된 내용으로 글을 써라.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정리하지 말아라. 내 생각이 아니라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라.
2. 5분 머물기 : 그래서 내가 여기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한다. 책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그것을 해낸다.
3. 목차 짜기 : 목차가 글쓰기의 전부이다.
달님은 책을 읽고 우리가 분투하기를 바란다. 매번의 과제마다 책과 싸워서 문턱을 넘어가 보길 바란다. 그것이 통과의례로서의 글쓰기이다. 우리는 매번의 과제를 통해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자기다움과 인간다움을 창조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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