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의 형이상학(4)] 타자가 사라지면 갈등도 해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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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현지 작성일26-07-14 02:50 조회91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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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6-07-14 02: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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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류학] 2학기/『식인의 형이상학』(4)
타자가 사라지면 갈등도 해소된다
유현지
(주의!『토이 스토리 5』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제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5』를 보러 갔다. 어린아이 보니는 평소 장난감을 가지고 신나게 놀지만, 다른 아이들이 전자기기로 온라인 상에서 놀다보니 결국 외톨이가 된다. 그러면서 마침내 보니도 전자기기(“릴리패드”)를 갖게 되는데, 보니가 릴리패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자 장난감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낀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이번 인문세의 과제인 ‘타자’에 대한 생각이 내내 맴돌았다.

(구식 전자기기들)
『토이 스토리 5』의 초반부에 릴리패드는 장난감들에게 명백한 타자였다. 릴리패드가 제공하는 ‘게임’은 ‘놀이’와 달라서, 상상력이 침투할 여지도 없었다. 보니는 점점 릴리패드에 빠져갔고, 급기야 친구를 직접 만나서도 각자 릴리패드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자 장난감들은 보니에게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들어주려 노력하는데, 이때 ‘구식 전자기기’와 힘을 합치게 된다! 그러면서 비록 서로 작동 방식은 다르지만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은 모두 같다는 걸 깨닫는다. 결국 장난감들은 릴리패드와 함께 힘을 합쳐서 보니에게 친구를 만들어준다. 장난감들과 릴리패드를 나누는 선이 사라지고, 릴리패드는 더 이상 타자가 아니게 된 것이다. 친구가 생긴 보니는, 릴리패드와 장난감들을 함께 갖고 놀며 ‘놀이’를 한다.
『토이 스토리 5』에서 갈등이 풀리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장난감들과 릴리패드 사이에서 갈등은 왜 생겼으며 어떻게 풀렸을까? 모두다 타자라는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달린 것이었다. 사실 릴리패드도 보니를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 뿐, 보니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려 애썼다. 하지만 장난감들은 릴리패드를 아이를 빼앗아가는 존재로 설정했다. 릴리패드는 그 자체로 타자인 것이 아니라, 장난감들이 자기 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타자가 된다. 다시 말해 타자는 처음부터 바깥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세계를 나누는 방식 속에서 만들어지는 자리일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라기보다 ‘해소’에 가깝다. 해결은 한쪽이 이기는 방식이다. 장난감이 릴리패드를 몰아내거나, 릴리패드가 장난감을 완전히 대체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해소는 애초에 싸움이 성립했던 구도 자체가 무너지는 일이다. 릴리패드를 적으로 세워두던 시선이 바뀌면, 장난감이 지켜야 할 것은 자기 자리의 독점이 아니라 아이와 관계 맺는 자신만의 방식임이 드러난다. 즉, 대부분의 문제는 타자를 어디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발생한다. 문제의 원인은 타자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타자와 나를 가르는 경계선에서 나오며, 이 경계선은 곧 잠재적 전선(戰線)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자가, 타자가 아니게 되는 순간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되며, 모든 문제 해결의 시발점은 우리가 누구를 타자로 여기고 있는지 인식하는 것에서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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