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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의 형이상학] 나는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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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oolyule 작성일26-07-15 18:08 조회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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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류학 식인의 형이상학나의 타자론 사유 김유리 20260715

 

나는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아주 어릴 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도 생각이라는 것을 할까?’ 다른 사람 속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그가 생각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다른 사람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온세상에서 나만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뭐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아주 잠깐이지만 외로움까지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을 관찰하고 가끔 물어보기도 했던 것 같다. 나의 생각 탐구는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도 다 생각을 하니까 항상 자기 생각에 비추어 역지사지하라고 어른들에게 배웠다. 불행히도, ‘사람만생각을 한다고 교육받은 데서 머물기도 했다.

다음으로 내가 궁금했던 것은 다른 사람이 나와 생각이 같은지 다른지였다. 낯선 사람을 처음 만나 알아가기 시작할 때 나는 대개 이심전심으로 그도 나와 생각이 비슷할 것 같다고 여기는 편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관계가 지속되는 중에 생각의 차이를 발견하고 배신감을 느꼈다. 다른 경우에는, 생각 차이가 드러나면 올바른 내 생각을 그에게 가르치자, 또는 나의 틀린 생각을 고치자는 식으로 같아지려고 했다. 요약하면, 나는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온 것 같다.

살다 보니 생각이 같은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에는 남의 생각에 개입하거나 참견받지 않으려고 하며 다원주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이해관계가 상충할 때가 있으면 불가피하게 갈등에 빠지게 되었는데 다원주의만으로는 갈등에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설득도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는데, 그 이유는 각자 자기 생각을 확증해줄 증거만 편향적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이 그럴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성가시고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평소 생활의 바탕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2000년대 초,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초국적 자본주의에 맞서는 저항 운동이 불붙었다. 이 운동의 슬로건은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였다. 국가와 자본에 맞선 다양한 삶의 목소리들이 다보스 포럼반대편의 세계 사회 포럼에서 꽃피는 것 같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다양한 목소리들이 어떻게 합의해갈 것인지, 세계 민중과 대립하는 국가와 자본의 지배적인 목소리가 과연 토론과 논쟁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지금 남아있는 것 같다.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이 어디 없을까? 혼자서는, 지금까지와 같이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인류학적 방법에 귀 기울여 본다. 비베이루스 지 까스뚜르가 247쪽에서 한 문단에 걸쳐 인류학의 횡단하는 사고법을 실행한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먼저, “내 자신과 관련해서, 나는 [그들이 정확히 우리처럼사유한다]고 사유한다.” “원주민에 관련해서, 나는 다음과 같이 사유한다. [그들은 인간 모두와 인간 이외의 비인간적인 다른 주체들도 정확히 그들처럼사유한다]고 사유한다.” 대괄호는 내가 친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고 할 때 문제는 생각의 주체인 나가 아니라 생각하게 된 대상이다. 나의 사유 행위에 다른 생각이 들어올 수 있고 들어오면 달라질 수 있다. 다른 생각이란 다른 사람의 생각이다. 관점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저자와 원주민은 사유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런데 사유의 대상, 즉 개념이 다르다.

개념이 다르다는 것은 개념이 서술하는 세계를 다르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 그렇다면 개념이 다를 수록 다른 세계는 가능할 뿐 아니라 많이 있게 된다. 다른 세계가 가능하려면 언제나 다른 개념을 통해서 가능하다. 다른 개념이라는, 그다지 실천적이지도 유물론적이지도 않아 보이는 철학이 세상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다른 세계로 연결된 통로일 수 있다. 그리고 인류학은 다른 생각으로 들어가는 실천적이고도 철학적인 방법을 담고 있다.

다른 개념이 어떻게 다른 세상으로 표현되는지는 그리스 철학아마존 철학이라는 두 개의 형이상학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에서 타인은 친구로 개념화된다. 타인은 나의 친구, 따라서 나는 친구의 친구로 정의된다. 그래서 타인은 또 하나의 자기 자신이다. 그리스 개념이 만드는 세상은 자기 자신들의 각축장, 주체들의 경쟁터가 된다. 타인과 맺는 모든 관계가 우호적일 수 있을지는 자기가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에 달려 있다. 철학은 앎에 대한 사랑이다. 서구 철학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자 하는, 즉 자기애의 철학이다.

아마존의 형이상학에서 타인은 적대자이다. 세상은 전혀 우호적이지 않은 적대자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스 철학이 친구로 채워진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비추는 거울 앞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면, 아마존 철학은 자기 자신을 볼 틈 없이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맹렬하게 하고 있다. 타인은 적이고, 나는 적의 적이다. 적의 개념이 만드는 세계는 적대자의 시점이 빗발치는 화살처럼 쏘아지는 곳이다. 이 세계에서는 타인(적대자)의 사유를 진지하게 사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적의 훌륭한 적으로서 적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적의 사유를 어떻게 사유할 수 있을까? 인류학의 방법이자 아마존의 방법에 따르면 다른 사유를 횡단하는 방식으로 가능하다. 나는 어렸을 때 다른 사람 머릿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가능하다.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들어가는 것은 경험을 통해 이해하는 방식이다. 묻기, 읽고 쓰기, 사고실험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횡단으로써 두 사유를 매개하기는 아마존 샤머니즘의 일이자, 인류학이 스스로 부여한 과제라고 한다. 다른 사람의 사유를 진지하게 고려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기이다. 다른 세계가 점점 늘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다른 사유 경험의 이해 효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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